2019년 12월 1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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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지방신문협회 공동기획 新 팔도유람] 지붕 없는 미술관, 전남 고흥 연홍도

섬이 ‘예술 in 섬’
아기자기한 골목·한적한 해안 따라 ‘예술 힐링’
걸음 옮기는 곳마다 벽화·조형물 등 반겨

  • 기사입력 : 2019-11-15 08: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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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홍도 방파제에 설치된 철제구조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바람개비를 돌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연홍도 방파제에 설치된 철제구조물.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바람개비를 돌리는 아이들의 모습을 표현했다.

    지난달 중순, 취재차 찾은 고흥군 신양 선착장 주변은 평일인데도 수십 대의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연홍도를 둘러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의 자동차들인 듯했다. 얼마 후 버스 한 대가 선착장 입구 쪽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버스가 도착하면 배가 온다’는 한 주민의 말대로 섬에 정박해 있던 배가 선착장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배는 정확히 출발시간인 오후 2시30분에 맞춰 관광객들을 태우고 섬으로 향했다.

    연홍도 선착장에 도착하자 방파제에 세워놓은 거대한 흰색 조형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하여 ‘소라부부’. 소라껍데기 모형의 2개 조형물 옆에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자전거를 타거나 바람개비를 돌리는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상징하는 빨간색 철제구조물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빨강과 초롱, 파란색으로 산뜻하게 단장된 함석지붕과 다양한 벽화들이 방문객을 맞는다.

    마을 곳곳에 설치된 표지판도 예술품처럼 남다른 ‘포스’가 풍긴다. 선착장 주변 관광안내소 앞에 자리한 집은 벽 전체가 거대한 사진박물관이다. 주민들이 기증한 400여 장의 사진은 마치 오래된 흑백영화처럼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말 그대로 섬 전체가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지붕 없는 미술관’이다.

    연홍도 선착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조형물. 동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굴렁쇠를 굴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년시절의 추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연홍도 선착장에 내리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조형물. 동네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거나 굴렁쇠를 굴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유년시절의 추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연홍도 방파제에 설치된 철제구조물.
    연홍도 방파제에 설치된 철제구조물.

    마을 입구에서 만난 최완숙 연홍도 협동조합 사무장과 함께 본격적인 섬 투어에 나섰다. 연홍도의 매력은 아기자기한 골목길에서 엿볼 수 있다. 버려진 어구(漁具)나 폐품 등을 소재로 한 벽화나 정크아트에서부터 주민들의 옛 추억을 형상화한 예술품들이 곳곳에 숨어 있기 때문이다.

    가장 먼저 거금도 출신 프로레슬러 ‘박치기왕’ 김일, 아버지 고향이 고흥인 축구선수 박지성 등 연홍도와 인근 섬 출신 명사들을 그려 넣은 벽화들이 시선을 잡아 당긴다. 폐부표기구로 꾸민 ‘만수무강 경로당’을 끼고 마을 안길로 접어들면 말뚝박기놀이 하는 아이들, 조개껍질로 만든 꽃송이, 생선을 굽는 부엌, 물고기를 잡고 소라피리를 부는 아이들의 조형물에 매료돼 절로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골목길을 빠져 나와 연홍도 해안을 따라 걷다 보니 바다 건너 완도 금당도가 병풍처럼 펼쳐진다.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아름다운 풍경이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해안로 가장자리에는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30여 개의 설치작품들이 정겹게 자리하고 있다. 이들 작품을 따라 사진을 찍으며 ‘싸목싸목’ 걷다 보면 연홍미술관이 얼굴을 내민다.

    연홍미술관은 연홍도의 오늘을 탄생시킨 산파 역할을 한 곳이다. 정식 명칭은 ‘섬 in 섬 연홍미술관’으로 큰섬(거금도)에 딸린 작은섬(연홍도)의 미술관이라는 의미다. 1998년 폐교된 연홍분교를 리모델링한 미술관은 전국에서 유일한 섬마을 미술관이다. 단층 건물인 미술관은 학교라기보다는 일반 건물처럼 보이는데 이는 2006년 교실 2동과 관사를 전시실과 숙소, 식당으로 개조한 덕분이다. 입구에 서있는 오래된 ‘책읽는 소녀상’이 과거 학교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8년 동안 주인 없이 방치된 폐교에 눈을 돌린 건 연홍도 출신 고 김정만 화백이다. 순천에서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여수순천사건을 겪은 그는 육군 대령으로 제대 후 어릴 적 꿈인 그림을 그리고 싶어 홍대에서 미술을 공부한 만학도였다. 고향에 내려온 후에는 산과 바다 등을 화폭에 담았고 자신의 작품을 지역과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 주기도 했다.

    현재 연홍 미술관은 여수 출신 선호남 화백이 운영을 맡고 있다. 선 관장은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로 연홍미술관을 개관한 김정만 화백과 고흥 민예총 사무국장 시절에 만나 연홍미술관과 인연을 맺었다. 2005년 연홍도에 둥지를 튼 그는 김 화백의 뜻을 기려 미술관으로 새롭게 꾸미고 회화작품 50여 점을 소장해 정기적으로 기획전과 레지던시, 단체 연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최 사무장은 “조형물을 따라 골목길과 한적한 해안 길을 걷다 보면 마음이 맑아지는 것처럼 힐링이 된다”면서 “연홍도의 매력은 다른 지역의 벽화 마을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과 섬의 옛 모습을 잘 살려낸 작품들이 많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파스텔 톤의 벽화와 감성 충만한 조형물은 인생사진을 찍기에 좋은 곳으로 소문이 나면서 근래 가족과 연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들 관광객은 걷기에 힘들지도,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도 않은 길을 걸으며 마음의 여유와 위로를 얻는다.

    특히 지난해 9월 KBS 2 ‘다큐 3일’에 연홍도의 72시간이 방송된 이후 전국 각지에서 온 관광버스 행렬이 줄을 잇는 등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주말에는 평균 500명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다.

    버려진 어구 등을 활용한 정크아트.
    버려진 어구 등을 활용한 정크아트.
    폐교된 연홍분교를 리모델링해 2006년 문을 연 연홍미술관.
    폐교된 연홍분교를 리모델링해 2006년 문을 연 연홍미술관.

    연홍도가 ‘지붕 없는 미술관’으로 화려하게 부활한 데에는 지난 2015년 전남도가 추진한 ‘가고 싶은 섬’ 프로젝트가 있다. 도는 막무가내식 개발이 아닌 생태자원 보전과 재생 등 섬의 가치를 키우는 ‘블루 투어, 블루 라이트’를 내세워 연홍도, 여수 낭도 등 6개 섬을 선정해 사업비를 지원했다. 그 결과 2014년 3522명에서 2017년 3만929명으로 관광객이 10배 넘게 늘어났다.

    사실 거금도, 나로도, 소록도, 연홍도 등 고흥의 크고 작은 섬에는 저마다의 볼거리와 사연이 있다. 한때 900여 명이 거주할 만큼 황금기를 보내기도 했던 연홍도는 현재 50여 가구에 80여 명의 주민들이 살고 있다.

    연홍도에서 즐길 수 있는 관광 코스는 세 갈래의 산책길이다. 연홍미술관에서 출발해 해변길을 거쳐 좀바끝으로 가는 코스(약 940m·40분 소요), 연홍미술관에서 연홍교회를 지나 마을회관까지 걷는 연홍도 골목길(약 1.16㎞·30분), 마을회관에서 섬 가장자리인 아르끝 숲길(약 1.76㎞, 40분)이다.

    또한 섬 뒤편에는 바다 건너편의 금당도, 동쪽 편으로는 이순신 장군의 절이도 해전지 및 몽돌해변, 연홍미술관과 50m 떨어진 곳의 100m 백사장도 대표적인 명소다. 연홍도와 신양을 오가는 도선은 동계(10월~3월)기준 하루 7회(오전 7시 55분, 오전 9시 45분, 오전 11시, 오후 12시 30분, 오후 2시 30분, 오후 4시, 오후 5시 30분) 운항한다.

    글·사진=광주일보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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