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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 흘리는 비석들- 서영훈(뉴미디어부장·부국장)

  • 기사입력 : 2019-11-19 20:4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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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남의 문화재 중에서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 하며 전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 보면, 아마 밀양시 무안면 홍제사에 있는 표충비가 상위에 오를 것이다. 설문조사 시기가 오늘, 내일이라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경남에는 수많은 국보와 보물, 또 이들 문화재를 품고 있는 대규모 사찰 등이 즐비하지만, 표충비만큼 짧은 기간에 전국적인 관심을 받는 문화재는 드물기 때문이다.

    표충비는 익히 알려진 대로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간 3000여명의 포로를 귀환시킨 사명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의 몸체 즉 비신은 검은색이며 그 높이는 2.7m에 이른다.

    이 표충비가 엊그제 1ℓ에 이르는 ‘땀’을 흘렸다는 기사가 경남의 여러 일간지는 물론이고 전국의 수많은 신문과 방송의 오프라인 판과 온라인 판에 떴다. 이런 기사는 한 해에도 두어 번, 아무리 뜸해도 서너 해에 한 번가량은 꼭 나온다.

    기사는 대부분 이 비석이 땀을 흘린 시기와 맞물려 나라에 큰일이 생겼다는 속설을 소개하고 있다. 멀리는 3·1운동과 8·15해방, 6·25전쟁, 가깝게는 김수환 추기경의 선종과 천안함 침몰, 박근혜 대통령 탄핵 등이 그런 것이다. 밀양 세종병원 참사 수일 전에도 많은 땀이 흘렀다고도 한다.

    오래전에 나온 기사나 엊그제 기사나 가까운 시일 안에 나라에 무슨 큰 변고가 일어날 것 같다며 암시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이 비석은 국가에 환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그 조짐을 미리 알려준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다’라는 홍제사의 표충비 안내문 그대로다.

    우국충정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사명대사를 기리는 비석에서 ‘땀’이 흐르는 것이니 그런 해석을 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뜻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객관적인 사실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올해 초 표충비가 있는 무안면과 맞붙은 청도면의 한 종중 재실 비석 표면에도 유사한 현상이 생겼다고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다. 두 기사에 첨부된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면, 모두 검은색 돌로 돼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표충비 안내문에는 ‘검은색 대리석’이라고 씌어 있지만, 한 석재 업자는 기자의 문의에 충청지역에서 주로 생산되는 ‘오석’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대리석이든 오석이든, 기자가 여러 해 전 함양 남계서원에 들렀을 때 묘정비에서 ‘땀’이 흐르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빗돌 역시 검은색이었다. 같은 땀인지 다른 땀인지 몰라도, 표충비만 ‘땀’을 흘리는 게 아니라는 말이다.

    어떤 매체는 결로현상이라는 전문가들의 말을 전하면서도 과학적으로 완전히 밝혀진 것은 아니라며 여운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매끈한 표면을 가진 비석에 물방울이 맺히는 이유를 밝히기 위해 각종 실험장비를 동원해 관측을 하고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할 필요성을 느끼기는 할까. 추운 날 주택 유리창에 물방울이 맺히고, 그런 날 난방이 되고 있는 버스에 오르면 안경이 갑자기 뿌옇게 변하고, 냉장고에서 꺼낸 맥주캔에 물방울이 맺혀 흐르는 이유를 몰라서 실험에 나서는 과학자들이 없는 이유와 매한가지 아닌가.

    재미를 위한 기사라고 여겨지지만, 이를 빌미 삼아 온라인에서는 온갖 저주의 글이 난무하고 있기에 잠깐 짚어 봤다.

    서영훈(뉴미디어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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