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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극한의 장진호 전투- 이경민(진해희망의집 원장)

  • 기사입력 : 2019-11-20 20:3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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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경민 진해희망의집 원장

    2014년 겨울 상영된 ‘국제시장’ 영화가 전국을 감동의 물결로 채웠다. 영화는 피란민들이 흥남부두에서 탈출하는 장면에서 시작해서 한국전쟁, 파독광부, 베트남전쟁, 이산가족까지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담은 영화였다. 1950년 추운 겨울 영화의 첫 장면과 같이 유엔군과 민간인 20만여 명이 흥남부두를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앞선 장진호전투 때문이었다.

    장진호전투는 유엔군 미 10군단 소속, 미 제1해병사단이 동해 원산에 상륙해서 압록강을 향해 장진호 북쪽으로 전진 중, 중공군 제9병단 예하 7개 사단 12만 명에 의해 기습 포위되어, 이를 돌파하기 위해 1950년 11월 27일부터 12월 11일까지 17일간에 치른 혈전의 철수작전이었다. 북한의 가장 추운지역 개마고원에 위치한 장진호 인근에서 중공군은 유엔군의 유일한 퇴로를 완전히 차단했고, 미 해병 1사단 1만2000여 명은 10배가 넘는 중공군의 포위망을 뚫고 철수작전에 성공함으로써 다음에 있을 흥남철수작전을 가능케 했다. 장진호 전투는 세계 3대 동계 전투 중 하나이고, 미 해병의 3대 전투 중 하나이다.

    미 해병이 10배가 넘는 중공군과의 전투에서 성공하지 못했다면 중공군에 밀려 장진호에서 126km 떨어진 흥남의 철수작전은 불가했다. 중공군은 미 해병과의 전투로 전열을 다시 회복하는 데 3개월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한다. 장진호전투는 후퇴작전이었지만 동북부 지역의 중공군을 거의 무력화시켰다. 또한 그만큼 해병 1사단과 유엔군의 병력 손실도 컸다. 해병 1사단과 유엔군은 미군자료에 1만7843명의 사상자 병력 손실을 가져왔고, 중공군의 경우는 중국자료에 4만8156명의 사상자 병력 손실을 가져왔다. 이국만리에서 그들의 희생은 컸다. 금년 9월27일 제4회 ‘장진호 전투영웅 추모식’을 당시 참전했던 고령의 용사들과 함께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거행했다.

    전투는 한국전쟁의 가장 혹독한 겨울 추위에서 벌어졌다. 특히 1950년 11월 14일에 시베리아의 한랭전선이 장진호 전체를 뒤덮었다. 전투 참가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영화 37도의 혹한으로 땅이 얼어 진지를 팔 수 없자 전우의 시체로 진지를 만들어야 하는 극한 속에서 산악전에 익숙한 중공군은 인해전술의 무차별적인 야간 기습공격을 감행했다. 추위로 소총의 윤활유가 얼거나 격발 핀의 용수철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 사격이 어려웠고, 수류탄도 불발됐다. 부상자를 위한 모르핀도 얼 정도로 냉동액체는 무용지물이었다. 부상을 치료하기 위해 천을 사용하는 것은 괴저와 동상의 위험이었다. 주로 사상자들의 수가 반 수 이상이 동상에 의한 손실이었다.

    2017년 번역 출간된 〈장진호전투〉(The Last Stand of Fox Company)는 해병 1개 폭스중대가 앞서 북진했던 2개 해병여단이 철수할 수 있는 장진호 덕동 협곡의 유일한 좁은 경사퇴로를 중공군이 포위한 전투에서 퇴각로를 사수했던 처절한 8일간의 전투를 상세히 묘사했다. 전투에서 중대원 347명 중 60여명만이 살아왔고, 그들도 이미 동상환자였다. 그들의 희생으로 해병 2개 여단 병력 8400명이 부상자들과 함께 철수가 가능했고, 마침내 해병사단과 나머지 유엔군 병력들이 장진호 아래 ‘하갈우리’ 평지에 일차로 집결할 수 있었다. 그들은 계속 흥남까지 106km를 남하하면서 끈질긴 중공군 총공세의 퇴각로 포위망을 뚫기 위해 사투를 계속했고, 드디어 12월 11일 저녁 최종부대가 함흥에 도착했다. 흥남에서는 12월 14일부터 24일까지 유엔군과 피란민 20만여 명이 해상에서 무사히 철수했다.

    장진호전투는 69년 전 지금 11월에 일어났다. 미국 워싱턴 한국전쟁기념공원에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글귀와 함께 기념 조형물은 장진호 전투의 해병용사들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현재의 삶에서 겸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의 희생 위에 있기 때문이다.

    이경민(진해희망의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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