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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소일(消日)-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19-12-01 20:3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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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공평하다.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고대인들도 시간은 절대적이면서도 상대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크로노스(cronos)는 수리적으로 절대적 시간 개념이다. 반면 기회의 의미를 부여하는 상대적 시간은 카이로스(kairos)다. 같은 양의 물리적 시간이라도 사람에 따라 찰나에 불과할 수도, 몇 배의 가치로 활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로마인은 사상 유례 없는 대제국을 건설했지만 정작 삶은 짧고 고단했다. 인구의 50%가 20세 전에, 80%가 50세 전에 사망했다. 원정에서 승리하고 개선하는 장군들은 노예들에게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를 외치게 했다. ‘당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뜻의 라틴어다. 이들은 죽음에 맞서기보다 숙명으로 받아들였다. 짧은 운명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부단히 사색하면서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경구다.

    ▼선인들은 게으름을 지극히 경계했다. 다산 정약용은 ‘도산사숙록(陶山私淑錄)’에서 ‘천하에 가르쳐서는 안 될 두 글자의 못된 말이 있으니 소일(消日)이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이덕무도 ‘사소절(士小節)’에서 ‘눈도 밝고 두 손도 멀쩡하면서 게으름 부리기를 즐기는 자는 툭하면 소일하기가 아주 어렵다고 말한다. 소일 즉 날을 보낸다는 두 글자는 석음(惜陰) 곧 촌음을 아낀다는 말과는 서로 반대가 되니 크게 상서롭지 못하다’고 했다.

    ▼12월이다. 물리적인 1년의 종착역이 머지않았다. 나이 듦은 인생의 지혜를 체득하는 긴 행로다. 젊은이의 철없는 일탈을 보고, 추하게 늙어가는 노인도 만난다. 마냥 손가락질할 것도 아니다. 어쩌면 모두의 지난 회한의 시간이며, 앞으로 마주할 자화상인지도 모른다. 품격있게 인생 나이테를 새겨야 한다. 황금 같은 시간을 소일하면 말년의 대가는 비참하다. 한 해 끝자락에서 더욱 크게 느껴지는 인생의 무게다.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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