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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번/뇌/초- 허만복(경남교육삼락회장)

  • 기사입력 : 2019-12-11 20:2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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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의 스님들은 석가모니가 출가할 때 삭발을 했기 때문에 삭발을 한다고 한다. 불가에서는 머리카락을 번뇌초, 또는 무명초라고 하는데, 스님들이 매끈하게 삭발을 하는 것은 속세에서 무성하게 자라는 무지와 번뇌의 풀, 즉 머리털을 자라지 못하게 하는 깊은 뜻이 있다고 한다. 탐욕과 자만으로 가득 찬 자신을 버리고, 맑고 깨끗한 깨달음을 얻어 중생을 이롭게 하겠다는 숭고한 뜻이 내재되어 있다고 한다.

    요즘 사람들은 스님이 아니라도 매일같이 수염이나 머리털을 청결하게 한다는 것은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닌데, 수행자에게 삭발은 수행하는 데 청결이나 위생문제에 많은 도움을 주었을 것 같다. 6·25를 겪은 세대는 전염과 기계충 때문에 거의 빡빡머리로 자라 왔지만, 머리카락이 짧으면 보기도 좋지 않고, 겨울이면 추위 때문에 여간 고생이 아니었다. 그래서 요즘은 스님이나 특별나게 개성이 있는 사람이 아니면 삭발한 모습으로 나다니기가 어렵고, 머리카락이 반 인물을 한다고, 머리카락으로 남녀 구별하기도 어려운 세상이 되었다. 옛날에는 행실이 좋지 못한 부녀자에게 머리카락을 자르는 벌을 주었고, 교도소의 죄수도 삭발하는 시대가 있었다. 한때는 영화 ‘왕과 나’의 주연인 러시아 태생 ‘율 브린너’의 빡빡머리가 매력 포인트가 되어 유행이 되었던 시대도 있었다.

    오늘날은 삭발이 정치인과 근로자, 심지어 학생들까지 요구 조건의 수단으로 특허품이 된 것 같다. 정쟁이 맞서거나 노사 간의 갈등이 잘 풀리지 않을 때는 최후의 수단으로, 마지막 타협 후에도 해결이 안 될 때는 삭발을 하게 된다. 근래에 와서는 집단으로 남녀 구별 없이 삭발을 해, 무언의 투쟁과 곁들여 단식까지 하는 것이 예사가 되었다.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여야 또는 노사 간 갈등으로 시작되는 삭발행사의 공통점은 태극기와 애국가, 플래카드를 대의명분으로 앞세우고 공개적이긴 하지만, 스님들의 ‘번뇌초’, 즉 삭발 행사의 아주 숭고하고 엄숙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요즘의 삭발은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많이 왜곡된 것 같다.

    얼마 전 매스컴을 보고 깜짝 놀란 것은 삭발도 이젠 일반화된 것 같았다. 서울의 모 고등학교 학생들이 정치 편향 교육 때문에, 일명 정치 교사와 교육감 사퇴를 주장하는 TV삭발 장면에서, 기성세대의 모습들이 당장 어린 학생들까지 파급된 것을 보고, 요즘 학생들이 너무 영악하다는 생각과 미성숙된 우리의 자녀들이지만 기성세대보다 앞서 간다고 느꼈다. 거기에다 지금 한창 논쟁이 되고 있는 복잡한 선거법 중 투표권의 나이를 만19세에서 만18세로 낮추어 신성한 학습의 장을 정치판으로 만드는 것은 숙고, 또 숙고를 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꼭 그렇게 하려면 차라리 학령을 낮추든가 아니면 학제를 개편하여 선진국과 밸런스를 맞추면 인생을 좌우하는 수능과도 관계가 없을 것 같다. 몇 년 전 초등학교 전교어린이회장 선거에 학교 근처의 짜장면집과 선물 가게가 성시를 이루었다는, 에피소드가 아닌 사실을 예사로 듣고 넘어 가서는 안 될 것이다. 누가 우리의 귀엽고 착한 자녀들에게 번뇌와 탐욕을 일찍부터 갖게 하는지 기성세대들은 다 같이 뉘우쳐야 할 것이다.

    허만복(경남교육삼락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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