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9월 19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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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봅시다] 경남-서울 상생발전 업무협약 1년 박원순 서울시장

“농산물 판매·교류 등 제도적 장치 마련해 상생협력”
어린시절 창녕서 왕복 30리길 걸어 통학… 지역 정체성 간직
‘농촌 없는 도시 없고, 지역 없는 서울 없다’ 시정운영 신념

  • 기사입력 : 2019-12-11 20:4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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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벽이면 아버지는 쇠죽 끓이는 무쇠솥 뚜껑 위에 신발을 올려놓았다. 꽁꽁 언 길을 걸어 왕복 30리를 오가는 중학생 아들의 발이 시리지 않도록 묵묵히 따뜻한 마음을 전했다. 어머니는 쌀통이 바닥을 보여도 찾아온 거지를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네 입에 밥 들어갈 때 다른 사람 입에도 밥숟가락 들어가는지 살피라’고 했다. 학교 문턱에도 못 간 부모였지만 최고의 스승이었다. 일곱 남매를 위해 하루도 거르지 않고 논밭에서 일하며, 소를 키우는 일상의 정직과 성실이 얼마나 고귀한 가치인지 몸소 보여줬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집무실에서 ‘경남-서울 상생발전업무협약’ 1년 성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집무실에서 ‘경남-서울 상생발전업무협약’ 1년 성과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창녕군 장마면에서 소 먹이고 꼴 베던 까까머리 소년은 검사, 시민단체 대표를 거쳐 인구 1000만 메가시티의 수장이 됐다. 박원순. 3선 최장수 서울시장이다. 창녕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한 그는 지역 정체성이 강하다.

    ‘지역 없는 서울이 있을 수 없다’는 시정운영 신념에도 고스란히 녹아있다. 지난해 11월 24일 경남도와 상생발전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서울에서 경남 농산물을 팔고 서울 어린이집에 공급하도록 연결하고 있다. 청소년 역사문화교류 사업도 진행 중이다. 지난달 26일 박 시장 집무실에서 경남도와 상생협약 1년의 성과 등을 들었다.

    -꼭 1년 전인 지난해 11월 경남도와 7개 상생발전업무협약을 맺었다.

    △경남도와 서울시는 2009년 상생 우호교류협약 체결 이후 10년 넘게 상생 파트너로서 제로페이(zero pay)부터 도농상생, 청소년 교류 등 다각도의 교류를 이어오고 있다. 최근에는 더 깊이 있는 교류를 위해 창녕 등 경남 7개 기초지자체와 협약을 체결하는 등 교류 보폭을 넓혀가고 있다. 아무래도 실제적인 협력은 기초지자체랑 하는 게 도움이 될 것 같아 광역시뿐만 아니라 기초지자체와도 하고 있다. 거제시와 도시재생, 홍보, 지역 농수산물과 관광, 도시재생, 예술, 체육 교류 등 우호 교류 협약을 맺었다. 2020년 고성공룡세계엑스포 명예대회장도 맡았다.

    -구체적인 성과와 진행 상황은.

    △경남도와 업무협약(MOU) 체결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협력이 이뤄졌고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경남은 농업지역이 많다. 그래서 농산물 팔아주는 일을 열심히 했다. 기억나는 것만도 6월경 폭락세가 컸던 양파·마늘 팔아주기 행사를 했고, 7월에는 장아찌 담그기, 남해 시금치, 창녕 양파 특판전도 했다. 8월에는 한일 관계 악화로 수출이 어려워진 통영시의 바닷장어 판매도 지원했다. 장어 4.5t을 판매해 8000만원의 매출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또 농가에는 판로를 지원하고, 서울시민에겐 건강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는 ‘도농상생 공공급식’을 진행 중이다. 김해시가 영등포구와 매칭해 어린이집 등 급식 식자재를 직거래하고 있다. 또한 거창군과 진주시는 청소년들이 각 지역의 생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청소년 역사문화교류 사업’도 하고 있다.

    -경남 출신 수도권 유학생 기숙사인 남명학사 서울관이 개관하기까지 서울시의 도움이 컸다는데.

    △서울에 대학이 많다 보니 경남뿐 아니라 상경한 청년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이 기숙사다. 대학이 기숙사를 충분히 제공하지 못해 서울시가 가능하면 돕겠다고 해서 시작했다. 2015년 9월 경남도와 서울시, 강남구 간 ‘경상남도 남명학사 건립 협약서’를 체결했다. 다행히 강남구 자곡동 개발지역이 본래 공공도서관 부지였는데 그걸 지구단위계획 변경을 통해 용도 전환했다. 저는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주민들이 기숙사를 혐오 시설의 일종으로 보고 반대한다. 다만, 남명학사 서울관은 신규로 개발되는 지역이어서 다른 곳에 비해 덜한 편이었다.

    -지난 5월 서울-지방 상생 선언을 했다.

    △농촌과 도시는 하나다. 농촌 없는 도시가 있을 수 없고, 지역 없는 서울이 있을 수 없다. 서울은 대한민국 수도이자 지방자치단체의 맏형이다. 서울이 세계적인 도시가 되는 과정에서 지방 도시의 희생과 헌신이 있었다. 이제 서울시가 갚아야 할 때다. 공존과 상생의 선순환 시대를 열기 위한 사회적 사명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에서 상생 선언이 출발했다. 2400억원 정도의 예산을 투입한다.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인 불공정, 불평등, 불균형 3대 과제를 해결하는 게 핵심이다. 수도권에 집중된 경제력, 인구, 인프라의 지방과 격차를 좁히는 데 중앙정부만 아니라 서울시가 협력하자는 취지다.

    -법조인, 시민운동가, 그리고 행정가로 끊임없이 변신했다. 인생에서 중요한 변화의 순간에 결정을 내리는 기준은.

    △그러고 보니 많이도 옮겨 다녔다. 노마드(nomad·방랑자) 인생이다.(웃음) 하지만 제 본질과 사명, 비전 속에 분명하게 중심을 잡고 있는 건 바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이다. 기업가 정신이란 게 비즈니스맨과는 약간 다르다. 늘 새로운 위기나 도전과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길에 나서는 사람이 기업가다. 항상 도전하는 사람이다. 저는 어떤 일을 시작해서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해 거기에 묶여 있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당시 검사 직업을 그만두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27살에 검사가 됐다. 청년으로서 검사는 아주 매력적인 직업이다. 한데 막상 해보니까 그 자체의 의미도 있지만, 훨씬 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일이 있겠다 싶어서 1년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시민운동에 뛰어들어 ‘참여연대’를 했는데 당시 최고의 권력기관이었다. 낙선운동, 소액주주 운동을 했다. 참여연대가 정상에 섰을 때 ‘아름다운 재단’을 만들었다. 아직도 깨지지 않은 비영리단체의 전설이다. 정상에서 다시 내려왔다. ‘희망제작소’를 만들어 최고의 싱크탱크라는 평가받을 때 그만뒀다. 이명박 정부 때 4대강 사업으로 강이 다 썩고 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그때 정치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이 저에게 정치를 시킨 것과 다름없다. 늘 어렵고 새롭고 큰 국가·사회적 어젠다가 있을 때 그것에 도전하는 게 삶이라고 생각한다.

    -지난 지방선거 때 경남도지사 출마를 권유받은 것으로 안다.

    △김경수 지사를 포함해서 여러 사람이 심각하게 출마를 요청했다. 경남이 서울과는 또 다른 지역상황이 있어 고민했던 건 사실이다. 그런데 적어도 한 지역을 10년은 해야 뭔가 큰 변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은 보궐선거였지만 서울시장을 두 번 해서 제 철학과 원칙이 완전히 정착됐다고 보기 힘들었다. 시민이 나를 버리지 않는 한 제 철학을 완성해 서울이라는 도시를 세계의 어떤 도시 못지않게 비전 있는 도시로 정착시키는 게 사명이라고 판단했다. 저는 중간에 끝낸 적이 없다.

    -임기가 끝나는 2022년 대통령 선거가 있다. 출마 유력후보로 거론되는데.

    △제 인생의 행로를 보면 처음부터 뭘 해야겠다고 의도적으로 뛰어든 적은 없다. 기업가 정신, 도전정신으로 늘 해왔다. 어떤 직책이나 직위가 목표가 아니라 뭔가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무엇인지가 우선이다. 무엇이 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다음에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이 깊지만, 서울시장을 하면서 무엇이 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았다. 민생이 어렵고 경제가 어렵다. 저에게 주어진 과제를 해결할 민생의 시간이지 정치의 시간은 아니다.

    글·사진= 이상권 기자 sky@knnews.co.kr

    ☞박원순 서울시장은= 1956년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에서 2남5녀의 6째로 태어났다. 영산중을 졸업하고 상경해 경기고를 다녔다. 서울대 사회계열에 입학했으나 긴급조치 명령 9호 위반으로 1학년 때 제적당해 단국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 제22회 사법시험에 합격, 대구지검 검사를 거쳐 변호사로 개업했다.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며 사회운동가로 변신했다. 아름다운재단, 희망제작소 등 시민단체를 창립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무상급식 주민투표 결과에 책임을 지고 중도사퇴하자 보궐선거에 출마, 2011년 10월 나경원 당시 한나라당 후보를 꺾고 당선됐다. 2014년 정몽준·2018년 김문수 후보를 누르고 3선에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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