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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풍수지리] 박사마을로 이름난 춘천 서면

  • 기사입력 : 2019-12-13 07:5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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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원도 춘천시 서면에 위치한 박사마을은 전북 임실군 삼계면 박사골마을과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과 함께 국내 3대 박사마을로 불리고 있다. 2003가구 3940명의 주민 중에 168명(2019년 현재)의 박사가 배출됐으며 1호 박사 송병덕(의학박사)을 위시해 국무총리를 지낸 3호 박사 한승수(경제학박사), 168호 박사 홍의식(컴퓨터음악박사)이 그들이다.

    사람의 운명은 그가 태어나 자란 산천의 기운에 의해 결정된다고 하는 ‘인걸지령론(人傑地靈論)’이나 당나라 복응천이 그의 저서 설심부(雪心賦)에서 주장한 ‘인걸은 산천의 기운을 받아 태어나는데, 산천이 생기롭고 형상이 좋으면 뛰어난 인재가 난다’는 이론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곳으로 ‘서면의 박사마을’을 꼽고자 한다.

    서면의 23개 이(里) 중에서 유독 방동리를 비롯한 금산리, 현암리, 신매리, 월송리에 박사가 집중적으로 배출된 데에는 그만한 연유가 있을 것이다.

    첫째, 금산천과 방동천 등의 하천들이 의암호에 합수(合水)되어 북한강에 합류하는데, 이때, 북한강의 형상이 5개 이를 환포(環抱·사방으로 둘러쌈)하고 있어 지기(地氣)를 대단히 좋게 한다. 뛰어난 땅심은 자연히 거주자에게 강단과 인내심을 가지게 한다.

    둘째, 마을에서 최종적으로 빠져나가는 물은 수구(水口·물이 빠져나가는 마지막 통로)를 관쇄(關鎖·문을 잠금)시키듯이 단단히 죄고 있어 외부로부터의 흉풍을 막음과 동시에 마을의 생기(生氣)가 새는 것을 방지하고 있다. 특히 방동리와 금산리는 조롱박 형상으로 수구가 좁아 생기가 더욱더 뭉쳐 있다.

    셋째, 마을 뒤는 산이고 앞은 물이어서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이다. 마을을 둘러싼 산은 ‘一’자 형상의 ‘일자문성사(一字文星砂)’와 책을 펼쳐놓은 형상의 ‘문필사(文筆砂)’로 유정(有情)한 모양새이며, 바람과 물결은 잔잔하여 아늑한 공간을 유지하고 있다.

    박사마을의 안쪽 깊숙한 산줄기 아래에 장절공(壯節公) 신숭겸 장군의 묘가 있다. 927년 9월 공산 동수(대구시 지묘동) 전투에서 후백제 견훤의 군대에 포위되자 왕건으로 변장하여 싸우다가 장군을 왕건으로 여긴 견훤의 군사에 의해 머리가 잘린 채 전사했다. 장군의 죽음을 애통히 여긴 왕건이 장군의 두상을 금으로 만들어 봉분을 셋으로 마련한 후 장군의 시신을 셋 중의 한 곳에 안치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원래 이 자리는 도선국사가 태조 왕건의 묘로 소점(所占)한 음택명당(陰宅明堂) 터였다고 한다. 곡장(曲墻·무덤 뒤에 둘러 쌓은 담)을 갖춘 장군의 묘역은 3기의 봉분과 함께 웅장함 그 자체였다. 봉분 뒤 용맥(龍脈·산줄기)이 너무 가파르지만 봉분 옆의 바위가 기(氣)를 뭉치게 한다. 용맥이 좌우로 요동을 치니 생용(生龍)임은 틀림이 없다. 주산(뒷산)에서 아래를 향해 볼 때, 가장 우측(봉분 포함)으로 생기가 뻗쳤으며, 장군의 영정을 봉안한 장절사(壯節祠)와 신도비(神道碑)까지 좋은 기운이 뻗쳐 있다. 게다가 묘역 앞쪽 좌우측에 있는 소나무들은 바람을 막아주는 비보목(裨補木)의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장군을 수호하는 용맹한 병졸 같아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터임은 틀림없다. 낙락장송(落落長松)이 병졸이다. 좌향(坐向)은 신좌을향(辛坐乙向)으로 남동향이며 좌청룡의 끝자락인 장군봉을 보고 있다. 주군(主君)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버린 장군의 우국충절(憂國忠節)에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박사마을에는 충장공(忠壯公) 한백록 장군과 정부인(貞夫人) 창녕성씨(昌寧成氏)의 합장묘도 있다.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원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옥포해전과 합포해전에서 승리했으며 1592년(선조25) 7월 미조항 전투에서 전사했다.

    용(龍·용맥)은 좌우로 요동을 치고 상하로 기복을 하면서 과협(過峽·안장처럼 잘록한 산줄기)을 형성해 아래로 내려가는데, 말쑥할 뿐만 아니라 기품마저 가지고 있으니 최상위 등급의 용이 분명하다.

    나무들이 위로 곧게 뻗은 것은 햇빛을 골고루 받았다는 증거이며 안산(앞산)은 ‘문필봉’을 보고 있다. 하지만 용의 형상에 비해 당판(봉분을 포함한 주변)이 너무 협소하다. 용이 안착해야 할 자리는 묘역 바로 아래이다.

    주재민 (산풍수지리연구소장)

    (화산풍수·수맥·작명연구원 055-297-3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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