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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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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돌봄, 자리 잡은 만큼의 햇살- 하성자(김해시의원)

  • 기사입력 : 2019-12-15 20:3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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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이 꼬박꼬박 졸고 있다/ 하늘에서 나무에서 강에서/ 자리 잡은 만큼의 햇살을 받고서/ 긴 피로의 섶을 졸음으로 박음질하고 있다/ 어설픈 시침질 자국인 양 구불구불한 논두렁이/ 길모퉁이 들국화를 본 잡아/ 들판을 깁고 나간다/ 흔들의자에 어머니/ 그리움이 자수처럼 도드라진다’. 2004년 가을에 쓴 시 ‘자리 잡은 만큼의 햇살’은 나의 첫 시집 제목이기도 하다.

    원거리 운전이 자신 없었지만 용기를 내어 직접 차를 몰아 밀양에 갔던 날이었다. 어쩐지 풍경이 낯선 것 같아 길을 연한 시골집 마당에 차를 세웠다. 내린 순간 그야말로 샛노란 들판과 파란 하늘의 고즈넉함에 사로잡혀버렸다. 반짝임이 출렁거릴 때 구불구불한 논두렁은 경계가 아니라 풍성한 들판을 마련하는 시접 같았다. 마당 가 흔들의자에 할머니는 자리 잡은 만큼의 햇살을 받고서 꼬박꼬박 졸고 계셨다. 부엌문을 밀고 나온 아주머니가 무슨 일이세요? 한다. 홍시 감을 맛보라는 인심에 염치 불구하고 툇마루에 앉았다.

    치매에 걸리신 친정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아주머니는 마당 앞을 지나 왼쪽 길로 가면 큰 길이라고 했다. 알곡 같은 분과의 만남을 뒤로 하고 나선 길모퉁이에 한 무더기 들국화가 향기로운 가을을 내뿜고 있었다. 그날 밤 이 시를 썼다.

    탄생과 함께 선택의 여지없이 시작되는 일생이다. 평생 겪게 되는 수많은 일들, 치매란 증상도 그 중 하나일 수 있다. 치매를 대하다 보면 즐겁거나 괴롭거나 이때가 일생의 호시절이란 것을 깨닫게 되고 현재 삶을 긍정적으로 성찰하게 된다. 신의 옷자락을 붙잡고서라도 피해야 할 증상이지만 그럼에도 피할 수 없을 때, 흔들의자에 그 할머니처럼 따스한 햇살도 받고 사랑어린 돌봄도 받으며 그 일생이 존중받을 수 있어야 한다.

    치매예방과 치매환자 돌봄을 추구하는 사회복지 정책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치매 없이 사시다 올해 10월의 마지막 날 여든 생을 마무리하신 어머니, 어머니는 어떤 그리움을 외로이 수놓으셨을까. 후회만큼 엄마가 그립다.

    하성자(김해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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