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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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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용의 달- 공영해

  • 기사입력 : 2019-12-26 08: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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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릉의 능선 위로 처용의 달이 뜬다

    다문화 은빛 희망 등을 밝힌 골목 안쪽

    누대를 지켜온 종가 몽골 댁이 몸을 푼다

    천 년 전 기침 소리 가득한 뜰 안에는

    대물림 순혈주의 흔들림이 없었건만

    먼 그날 처용을 맞듯 동인 앞섶 풀고 있다

    볼기에 푸른 반점 건강한 아기 울음

    무너진 기와지붕 다시금 들썩이고

    환하게 짐 벗은 달이 솟을대문 넘어간다


    ☞ 생명의 숭고함과 시조의 율격과 시적 은유가 삼위일체 되어 한 해의 만삭에서 몸을 풉니다. 기해년 첫 마음의 덕담을 먹고 자란 삼백예순다섯 날들을 읽습니다. 나라 안팎으로도 다사다난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촛불을 마주하고 숭고한 어머니의 은유를 읽습니다. 세상은 여전히 소란스럽지만, 어머니의 은유는 차가운 달의 이미지를 따뜻함으로 배가시켜 가난을 어루만집니다.

    시인이 겨울 허공에 띄워 올린 ‘왕릉의 능선 위로 처용의 달’은 새로운 신화를 탄생시키는 일입니다. 신화는 세상을 밝히는 등불입니다. 소외된 이들의 마음 골목까지 환히 비춰주는 둥근달입니다. 이국에서의 삶은 늘 불안하지만, 억척스럽게 대를 이어나가려는 몽골댁이 품은 달은 간절한 기도문이자 새로운 역사의 탄생이 아닐까요? 그러기에 우리들은 ‘먼 그날 처용을 맞듯’ 우렁찬 아기의 울음을 받아 적습니다. 행간마다 ‘무너진 기와지붕 다시금 들썩이고’ ‘환하게 짐 벗은 달’은 세상을 더욱 밝음으로 안내할 것입니다.

    이제 서서히 기해년이 저물고, 경자년 새해가 밝아옵니다. ‘시가 있는 간이역’을 애독하시는 여러분들의 가정에 평안과 만복이 깃드시길 기원드리며, 앞으로도 많은 사랑과 함께 마음을 정화할 수 있는 지면이 되었으면 합니다.

    시조시인 임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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