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02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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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속으로] 스스로 '불온하다'고 하는 음악가 고승하

50년 음악인생 고승하 사단법인 아름나라 이사장
사투리도 아이들 글도 날 만나면 노래가 되죠

  • 기사입력 : 2019-12-26 21: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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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승하(71) 사단법인 아름나라 이사장은 인터뷰 내내 ‘나이가 많아서’ ‘불온한’ 이란 말을 썼다. 구두닦이 고학생에서 공장 노동자로 대학에서 음악전공 후 교사로, 민음협(민족음악인협회) 의장으로, 민예총(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 경남지회장으로, ‘철부지’ 멤버와 ‘아름나라’ 이사장으로 그의 이력을 따라가 보기로 했다.

    고승하 사단법인 아름나라 이사장이 건반을 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고 이사장이 아름나라 단원들과 발성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성승건 기자·경남신문DB/
    고승하 사단법인 아름나라 이사장이 건반을 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래 사진은 고 이사장이 아름나라 단원들과 발성 연습을 하고 있는 모습./성승건 기자·경남신문DB/

    고승하가 작곡한 노래는 2500여 곡에 이른다. 그런데 뒤늦게 음대에 들어가기까지 제대로 된 음악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타고난 것 같다.

    고승하는 1948년 김해군(지금은 부산시 강서구) 대저면 대지리 서연정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사업을 했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고승하 본인과 가족들의 기억에 따르면 초등학교 4학년 때 작사 작곡을 한 곳이 있다고 한다. 어머니는 학교에서 풍금을 칠 줄 아는 몇 안 되는 교사였고, 아버지 역시 작사 작곡을 했었단다. 고승하 이사장의 아들 역시 음악을 배운 적 없어도 현재 밴드에서 활동하는 음악가라니 음악적인 DNA가 이 가족에게는 있는 게 분명하다.

    고승하가 음악을 한 지가 올해로 벌써 50년이다. 그가 만든 어린이 합창단 ‘아름나라’는 올해 30주년이다. 이를 기념해 가수 김산을 비롯해 많은 후배 예술인들이 지난 11월 2일 ‘고승하 음악 50, 아름나라 30’ 헌정공연을 하기도 했다.

    대저국민학교에서 낙동중학교로 진학했고, 구포상고를 다니다 1년 만에 그만뒀다. 그리고는 돈을 벌기 위해 대구로 갔다. 구두닦이를 했는데 주변 불량배들이나 구두닦이 동료들에게 괴롭힘을 당한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그러던 중 그는 다시 학업을 이어야겠다는 생각에 대구 성광고등학교 야간부에 편입했고 학교를 마쳤다. 군대도 다녀왔다. 제대 후에는 우체국이나 농협에서 임시로 일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27살 되던 해에 마산 수출자유지역의 한 공장에 취직했다. 그때 손가락 끝이 잘리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 평생의 반려인 아내 김명숙씨를 만났다. 그가 다니던 삼양공업의 사가를 작사, 작곡하기도 했다.

    고승하는 어렸을 때부터 교회에 다녔고 풍금을 칠 수 있었던 덕분(?)에 교회 성가대 등에서 활동하면서 아이들과 음악극을 만들기도 하고 다른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하면서 음악과 늘 함께했다. 지휘도 하고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는 교회 유년부 교사도 했다.

    그런 그에게 학생들이 교사를 해 볼 것을 권했다. 교회 선생님에서 나아가 학교 선생님을 해보라는 강권이 이어졌다. 지금으로 치면 ‘고승하 대학 보내기 TF’가 꾸려졌고, 여러 사람들이 참고서를 가져오고 과목을 나눠 맡아 공부를 시켰다.


    “여럿이 둘러앉아서 사회 과목은 이걸 공부해라, 수학은 음…포기해라. 시험 치는 방법을 가르쳐줬고, 시험을 쳤는데 음대에 턱걸이할 수 있는 정도의 성적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33살의 나이에 79학번 새내기가 됐다. 창원대학교의 전신인 마산대학에 입학했다. “서른세 살이 대학생이 된다는 것은 가능성은커녕 생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죠. 그때부터 나이가 많다 보니 음악과 과대표가 됐고, 나이가 많아 과대표를 대표해서 대의원이 됐고, 나이가 많아 대의원회 의장을 시켜줬고, 그때 박정희 10·26이 일어납니다. 경남대학에서 데모를 하는데 내가 대의원회 의장이니까 마산대도 같이 참여를 하게 됐습니다.”

    고승하는 마산YMCA가 자신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YMCA에서 ‘정의’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정치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죠. 레크리에이션 강사를 맡으면서 동시에 약간의 불온한 노래들을 작곡하기 시작했습니다.” 시인 최명학의 시집에 있던 여공일기(하나님 보러 갈 짬이 없어요…), 밥의 예수(전태일) 등에 곡을 붙였는데 그의 표현대로라면 ‘불온한 노래’의 시작이었다.

    대학은 무사히 졸업했고 공립교사 임용시험을 통해 음악교사가 됐다. 1983년 10월에 남해상고(공립)에 발령 났고, 4개월 뒤에 마산여상(사립)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되고 싶었던 교사였지만 그의 교직은 그리 길지 않았다. 89년 7월에 학교를 그만뒀다.

    박노해 시인의 〈노동의 새벽〉 시집에 있던 ‘아름다운 고백’에 곡을 붙여 ‘고백’이란 노래를 만들었다. 노래의 파급력은 컸다. 서울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그의 노래가 불리고 있었다.

    고승하가 작곡한 것이 알려지면서 유명인사가 됐고 정태춘 등과 교분을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민음협 의장이 됐다. 1990년이다.

    한 해 전인 1989년 고승하는 ‘회원동 어린이들’을 만들어 동요운동을 시작했다. 1991년에 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로 이름을 바꿨다.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동요를 작곡했다. 아이들이 쓴 글에 곡을 붙인 것이다. “내가 만든 동요가 불온한 색깔을 갖고 있었나 봅니다.” 선생님 사랑해요(해직교사를 위한 노래), 전쟁,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환경, 반전, 통일 주제를 담은 노래를 만들었고, 전국적으로 행사를 다녔다. 동요였음에도 대학축제 무대에 자주 올랐다.

    ‘아름나라’라는 이름도 우연의 산물이다. 레퍼토리 1번이 ‘가자 아름다운 노래로’였지만 아이들이 ‘아름나라’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중창단 이름이 됐다. 고승하에게서 시작된 아름나라는 창원, 진해, 김해, 사천, 남해 그리고 부산, 대구, 광주에 이르기까지 이제 전국 30여 곳에 둥지를 틀었다.

    “아름나라는 눈부신 재주를 뽐내는 천재보다 폭넓고 건강한 삶을 즐길 줄 아는 건강한 아이들을 키우는 어린이 문화운동의 또 다른 이름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보고 듣고 느끼고 깨달은 것을 아이들 손으로 쓴 글과 말이 노래가 됩니다.”

    그러다 2000년에는 ‘철부지’가 만들어졌다. 남기용과 전정명, 고승하가 함께하는 철부지는 동요를 부르는 어른들이었다. 빨간 옷에 멜빵바지로 기억되는 철부지.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이라는 단체에서 활동하면서 철부지 멤버들을 만나게 됐죠. ‘철부지’라는 이름을 다는 순간 어떤 어설픈 짓을 해도 면죄부를 준다는 생각에 반바지를 입어도 되고, 길거리에서 음식을 사먹어도, 아무 곳에나 앉아서 기타를 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죠.”

    아이들과 할아버지. 그리고 동요. 일 년에 평균 50회, 많을 때는 일 년에 200회 가까운 공연을 하며 전국을 누볐다.

     동요 부르는 어른들 '철부지' 공연 모습/경남신문 DB/
    동요 부르는 어른들 '철부지' 공연 모습/경남신문 DB/

    “2005년에 할머니 몇 분이 철부지 노래하는 것을 보고, 레퍼토리가 동요부터 가곡, 가요까지 다 하니 철부지를 같이 하자고 했고, 할머니 공연단 ‘여고시절’이 만들어졌죠.”

    여고시절 멤버의 한 사람인 김용희씨가 사재를 기탁했고, 그 돈으로 지금의 사단법인 아름나라가 만들어졌다. 어린이예술단 아름나라, 여고시절, 철부지. 이렇게 3팀이 활동했다. 최근에는 아름나라 노래를 부르는 엄마들의 모임 ‘동요맘’도 함께하고 있다.

    “이 길은 그만둘 수 없는 길입니다. 앞으로 계속할 겁니다.” 고승하는 동요를 통해 사회적 약자들의 이해를 대변했다. 경상도 토박이의 말글과 음악적 특징들을 살리는 노래를 만들어왔다.

    그는 “사투리로 된 노래를 만들었다고 해서 주목해주는 사람들이 잘 없었지만 나중에라도 모여서 지역특색을 가진 노래들이 되길 바란다”며 “이런 것들을 자료화하는 작업을 좀 했으면 좋겠다. 많은 이들이 함께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차상호 기자 cha83@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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