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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설 50년 마산자유무역지역, 희망 품고 다시 뛰자] (1) 노동자가 일군 합포만의 기적

나에게 자유무역지역은 변화, 가족, 청춘이다

  • 기사입력 : 2020-01-01 21:3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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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마산자유무역지역이 50돌을 맞았다. 반세기 역사가 축적된 이곳을 우리는 ‘합포만의 기적’이라 부른다. 1970년 팔도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이 수출탑을 쌓아갔다.

    1980년대 노동자 인권 보장, 노동권 확보 요구가 빗발치면서 당시 마산수출자유지역 후문은 한때 ‘민주광장’으로 불렸다.

    1990년대 국가 전체 무역수지 흑자의 약 65%인 86억 달러를 달성해 외환 위기를 극복하는 데 기여했고, 선진국의 기술과 경영 노하우를 국내에 확산시키는 ‘글로벌 파이프라인(global pipeline)’ 역할도 충실히 해냈다.

    합포만의 기적은 하나의 성공 모델이 되어 전국 6개 자유무역지역이 탄생하는 발판이 됐다. 지난 2014년 수출 비중이 압도적이던 노키아의 철수로 일각에서는 침체기에 접어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산자유무역지역에는 여전히 100개가 넘는 기업, 5500여명의 노동자가 새 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다. 본지는 4차례에 걸쳐 마산자유무역지역의 지난 역사를 돌아보고, 새로운 50년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본다. (1) 노동자가 일군 합포만의 기적 (2) 창설부터 구조 고도화까지 (3) 마산자유무역지역을 지키는 기업 (4) 도시형 첨단산업 수출기지로

    1980년대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한국태양유전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경남신문 DB/
    1980년대 마산자유무역지역 내 한국태양유전 노동자들이 작업을 하고 있는 모습./경남신문 DB/
    게시판에서 구인 광고를 보고 있는 사람들.(연도 미상)
    게시판에서 구인 광고를 보고 있는 사람들.(연도 미상)
    1989년 4월 마산자유무역지역 후문에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경남신문 DB/
    1989년 4월 마산자유무역지역 후문에서 노동자들이 임금 인상 등을 요구하며 집회를 열고 있다./경남신문 DB/

    (1) 노동자가 일군 합포만의 기적

    1970년대 전국에서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긴 출·퇴근 행렬은 마산자유무역지역의 번영을 상징하기도 했다. 1987년에는 고용 인원이 3만6000명을 넘었다. 약 80%가 여성 노동자였다.

    열아홉, 희망을 품고 마산으로 온 노동자들은 이제 쉰 살을 훌쩍 넘겼다. 그들은 마산자유무역지역에서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30년이 넘은 일이지만 그들은 오롯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한국태양유전, 한국TC전자에서 일했던 여성 노동자 3명을 만나 그때의 이야기를 들었다.


    ◇박경선(53·한국태양유전 근무)

    경선씨는 1987년 한국태양유전에 입사해 2017년 희망 퇴직했다. 열아홉, 두려움에 울며불며 출근했던 회사에서 꼬박 30년 2개월을 보냈다. 인생의 절반이 넘는 시간을 자유무역지역과 함께 했다. 그는 고향 거제를 떠나 언니, 오빠와 마산에 터전을 잡았다. 언니는 자유무역지역 한국동광에 다녔다. 당시 형제, 자매가 자유무역지역에서 함께 일한 ‘가족 노동자’는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박경선
    박경선

    경선씨가 입사한 1987년, 마산에 민주화 바람이 몰아쳤다. 산업 현장에는 노동권 확보 투쟁이 이어졌다. 마산자유무역지역도 예외가 아니었다. 한국태양유전에는 그해 8월 노동조합이 처음 생겼다. 경선씨는 당시 여성 노동자들이 투쟁의 선봉에 섰다고 했다. 한국태양유전은 전자제품의 쌀이라 불린 저항기, 유도자, 축전기를 만들었는데, 섬세함이 요구되는 작업 특성상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당시 사무실에 대학 나온 언니들이 노동 운동에 앞장섰죠. 저도 노보를 만들고, 서울 상경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그런 행동들로 회사 관리자들에게 밉보이기도 했고, 견디기 힘든 시기도 있었어요. 점차 자유무역지역 대부분 회사가 노조를 설립했고, 노조가 안정기에 접어든 시기에는 오히려 당당해질 수 있었죠.”

    경선씨 고향인 거제에서는 고교 졸업 후 부산 공단과 마산자유무역지역이 주된 취업 경로였다고 했다. 부산이 임금이 다소 높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노조 설립 이후에는 마산자유무역지역을 선호하게 됐다고 한다.

    경선씨가 자유무역지역에 있던 30년은 ‘변화’로 규정할 수 있다. 한국태양유전은 초기 일본 원재료를 수입해 되파는 간단한 무역 형태였다. 통신의 발달로 기업 간 신뢰가 쌓이면서 삼각무역, 중계무역이 활성화됐다. 수출입 업무를 맡았던 경선씨도 해마다 바뀌는 관세법, FTA 규정을 공부해야 했다. 먹지를 활용한 타자기, 286 컴퓨터도 최신화되었고 세관 업무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었다. 경선씨는 자유무역지역의 변화와 함께 성장했다.

    경선씨가 근무한 30년 동안 여성에 대한 인식도 점차 바뀌었다. 당시 여성은 오래 회사에 다녀도 평사원에 그쳤다고 한다. 경선씨는 회사 내에서 여성 최초로 일본어 시험 등 진급 시험을 통해 주임, 계장을 달았다. 말 그대로 ‘유리천장’을 뚫은 셈이다. 경선씨는 2017년 희망 퇴직했다. 과장, 부장까지 도전하고 싶었지만 후임들에게 30년간 정든 자리를 내어 주었다.

    경선씨에게 마산자유무역지역, 한국태양유전은 살아 움직이는 사람과 같은 존재다. “자유무역지역에서 슬픔과 기쁨을 나눴고, 함께 철이 들었습니다. 떠올리기만 해도 눈물이 솟을 만큼 아끼는 친구 같은 존재입니다. 문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숨 쉬고, 말하고, 울고 웃는, 살아 펄떡거리는 사람이요.”


    ◇조정숙(58·한국TC전자 근무)

    조정숙
    조정숙

    함안이 고향인 정숙씨는 1983년 한국TC전자에 입사해 7년을 근무했다. 미국계 기업인 한국TC전자는 스테레오, 무전기 등을 생산했다. 정숙씨는 2남 3녀 중 셋째였다. 정숙씨 세 자매는 마산자유무역지역과 특별한 인연이 있다. 세 자매 모두 한국TC전자에 근무한 공통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산호동이란 낯선 곳에서 첫 직장생활을 한 정숙씨는 웃지 못할 추억이 많다. “옛날 자취방은 거의 다 연탄을 땠어요. 늦게 마치는 날 집주인에게 연탄불 좀 봐달라고 말해도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았죠. 하루는 연탄가스를 마셔 삼성병원에 실려 가기도 했어요. 저뿐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겪어본 일이에요.”

    정숙씨가 기억하는 마산자유무역지역의 상징은 노동자의 출퇴근 행렬이다. “‘떠밀리듯’ 출근했어요. 마산삼각공원에서 산호동 육교 건너서까지 사람들이 빼곡했죠. 출퇴근 광경이 당시 상황을 말해줬죠. 말 그대로 호황이었어요. 특히 여성들이 워낙 많아 오히려 남성들이 부끄러워할 정도였어요.” 당시 한국TC전자는 조립, 가공 공정이 주를 이루면서 80%가량이 여성이었다.

    정숙씨는 설렘 반, 두려움 반으로 마산으로 왔다. 고교 졸업 후 낯선 도시 마산으로 모인 사람들은 동료에게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고 했다. “여성 노동자들은 스스로를 언니, 동생으로 자처하면서 서로를 마치 가족처럼 돌봤죠. 가족 같은 동료애가 없었다면 젊은 나이에 이 낯선 곳에서 하루 버티기도 힘들었을 거예요.”

    정숙씨는 당시 ‘구직난’보다 ‘구인난’이 심했다고 했다. 노동자를 찾기 위해 수출 후문에는 항상 회사 구인공고로 빼곡했고, 게시판 앞에는 직장을 찾는 사람들이 늘 있었다고 한다. “수출 정문, 후문 게시판은 회사 구인 공고가 가득했고, 특히 접근이 쉬운 후문 게시판 앞에는 사람들이 항상 구름처럼 붐볐어요. 회사 채용 담당자들이 게시판 옆에 차를 대고 있다가, 현장에서 노동자를 채용하기도 했어요.” 한국TC전자는 노사분규 등 이유로 1989년 자유무역지역에서 퇴거했다. 당시 한국TC전자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그때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30년 넘게 월별, 분기별 모임을 이어오고 있다. “제게는 가족과 같은 곳입니다. 서로 의지해 살아왔기 때문에 더욱 기억에 남아요. 회사는 없어졌지만, 그때 거기 있던 사람들이 모여 추억을 얘기할 수 있는 것도 자유무역지역이 준 하나의 선물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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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영숙(55·한국태양유전 근무)

    손영숙
    손영숙

    10770. 영숙씨는 지금까지 사번을 기억하고 있다. 그는 고교 졸업 후 1984년 한국태양유전에 입사해 7년 7개월을 근무했다. 의령이 고향인 영숙씨의 작은언니는 한국TC전자, 큰언니는 한일합섬에서 일했다. 영숙씨는 회사에서 수출 업무를 담당했다.

    영숙씨가 기억하는 자유무역지역은 산업 현장이자 교육기관, 가정이었다. 초기 자유무역지역에는 중학교 졸업 후 회사를 다니면서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는 이들이 많았다. 돈도 벌고 공부도 했다. 산업체 특별학교라는 제도로 학교와 회사가 자매결연을 맺었고, 퇴근 때면 버스를 타고 학교로 향했다. 영숙씨는 당시 오후 5시가 수출, 로컬 물량이 나가는 출하 시간인데 야간 학교 버스 시간과 맞물리면서 매일 전쟁을 치른 일들을 회상했다.

    “중학교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와서 뒤늦게 야간 고등학교를 다니는 언니들이 많았어요. 버스를 타러 가는 언니들을 붙잡고 ‘이것만 좀 찾아주고 가면 안 되냐’고 애원하는 경우도 다반사였죠. 그때는 학교 가는 언니, 동생들이 작은 선물로 ‘사내 영업’을 해야 할 정도였어요. 결국 서로 이해하고 도와가면서 공부도 하고, 일도 했어요.”

    영숙씨는 중학교 때부터 자취를 하면서 부모님과 떨어져 있는 시간이 많았다. 영숙씨는 회사의 상사, 동료, 선배들에게 세상 살아가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돈보다 값진 경험이었죠.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자취를 하면서 부모님과 오래 떨어져 있었어요. 부장님, 과장님들을 부모님처럼 생각했고,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일했어요. 그 시대의 회사는 다들 같은 분위기였어요.”

    영숙씨는 1992년 임신 후 회사를 나왔다. 7년 7개월, 영숙씨 인생에서 그리 긴 시간은 아니지만 잊지 못할 기억으로 각인됐다. “그때 근무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50이 넘었지만 우리는 그 꽃다운 청춘의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있습니다. 즐겁게 일했고, 성취감도 느꼈고, 인생에서 가장 뜨거운 시기였죠. 자유무역지역은 우리에게 ‘청춘’이었습니다.”


    ▲숫자로 보는 마산자유무역지역

    1981


    ▲마산자유무역지역의 어제와 오늘

    1981
    1981
    1993
    1993
    2019
    2019

    박기원 기자 pkw@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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