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2월 21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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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남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작] 누름 꽃- 이경미

  • 기사입력 : 2020-01-02 07: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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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자는 핀셋으로 붉은 조팝을 집었다. 조심스럽게 힘이 들어간 손이 반지에 붙은 엄지손톱만한 검은 오닉스 위에서 머뭇거렸다. 오닉스가 아침햇살을 튕겨 냈다. 여자는 햇살이 닿은 부분에 조팝을 살며시 놓고 꽃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아쉬운 듯 바라보다가 가막살나무 꽃이 가득한 화지 위로 눈길을 돌렸다. 욕실 스위치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초점을 잃은 시선으로 가만히 있었다. 숨소리도 들릴 만큼 집 안이 고요했다. 욕실 거울을 뚫어져라 보고 있을 아들이 떠올랐다. 초조했고 조바심 끝에 두려움이 밀려왔으나 붉게 물올림 된 가막살 꽃 한 송이를 천천히 집어 조팝 옆에 놓았다. 빨강이 과했다. 가막살 꽃을 집자 바싹 마른 꽃송이는 집히지 않고 밀려서 조팝과 포개졌다. 핀셋을 자꾸 들이댔다가는 꽃잎이 부서질 것 같았다. 마른 꽃들은 크게 숨이라도 쉬면 날아가거나 없어지고, 미세한 자극에도 상처가 나 부서지곤 했다. 여자는 반지를 들고 기울였다. 꽃들이 팔랑팔랑 화지 위로 떨어졌다.

    중얼거리는 소리, 세면대에 물 내려가는 소리, 물소리가 멈추고 다시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하진 않지만 뻔한 내용이고 욕이었다. 여자는 나직이 한숨을 쉬며 작업대로 쓰는 소반을 짚고 일어났다. 아들에게 새벽부터 도매시장으로 출근한 남편과 자신의 모습이 열심히 사는 태도로 보일까 해서 열어둔 방문을 닫았다.

    얼마 전 친구로부터 주문받은 반지 작업을 하고 있지만 집중이 안 되고 있었다. 욕실을 들락거리는 아들은 지난밤도 꼴딱 새운 것이 분명했다.

    다시 소반 앞에 앉은 여자는 자세를 가다듬듯 크게 호흡을 내뱉고 홍자색이 어리는 갈퀴 꽃 한 송이를 연잎 모양의 프레임이 붙은 반지에 대보았다. 물올림 된 빛깔도 꽃잎이 마른 모양새도 마음에 들었다. 올봄에 집 앞 천변에서 채집하여 채색 물감을 올리고, 꽃송이를 일일이 잘라서 오 킬로그램이 넘는 무게로 수일간 누른 것이다.


    여자는 자신의 손끝에서 나온 것들을 작품이라 생각했다. 언 땅을 알발로 견딘 풀꽃들, 계절마다 한마디로 말할 수 없는 빛깔을 품은 나무껍질이나 잎사귀는 자체만으로도 걸작품이었다. 알음알음으로 주문을 받으니 행여 자신의 손에서 자연이 망가졌다는 소리를 들을까 마음이 쓰였다. 그래도 고를 수 있는 기쁨을 주고 싶어 한 가지 주문이 들어와도 서너 가지 이상 만들곤 했다. 앞으로 벌고 뒤로 밑지니 장사라고 할 수 없지만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알 수 없어 좋았다.

    격한 음성이 방문을 비집고 들려왔다. 욕실을 나온 아들이 입에 담지 못할 험한 소리를 내지르고 제 방문을 세차게 닫았다. 정적이 흘렀다. 여자는 살며시 한숨을 쉬었다. 벌써 몇 시간째인지. 아들은 잠자는 시간 외에 이십 분이 채 안 되는 간격으로 욕실을 들락거렸다. 여자는 자세를 바꾸고 구도가 잡힌 프레임 위에 경화제를 한 방울 떨어뜨렸다. 물방울을 머금은 듯 꽃에 생기가 돌았다. 상처가 나지 않게 천천히 투명한 액체를 펴 발랐다. 꽃의 내구성을 높이고 여러 외부 요인에 견디도록 하기 위해 꽃잎 한 장 한 장을 공들여 발랐다.

    아들이 또 욕실로 들어갔다. 쟤가, 십 분도 안 됐는데. 여자는 미간을 좁힌 채 입술이 달싹거렸다. 얼굴에 미열이 올랐다. 소반 위에 반지를 내려놓고 일어났다. 아무래도 반지를 망칠 것만 같았다. 어차피 가게 문도 곧 열어야 하고 아들이 먹을 수 있게 뭐든 해놓아야 했다. 부엌으로 향하던 여자는 열린 욕실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세면대 위 거울 속에 굳은 표정의 아들이 제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몸이 어디 안 좋니?”

    창백한 낯빛에 불긋불긋한 눈 밑, 군데군데 좁쌀만한 여드름은 잠만 잘 자도 한결 가라앉을 것이고 마음먹기 따라 아무것도 아닐 수 있었다.

    “말 시키지 마. 엄마를 죽일지도 모르니까.”

    여자는 몸이 떨렸고 목구멍이 얼어붙는 것 같았으나 대수롭잖은 듯 반문했다.

    “얘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아, 시발 좆같이. 피부피부피부, 언제 좋아지는데.”

    아들이 여자의 어깨를 확 밀어붙이며 욕실을 나갔다. 정수기에서 냉수를 받아 벌컥벌컥 마시고는 빈 유리잔을 식탁에 탁, 소리가 나도록 내려놓더니 의자에 털썩 앉았다. 식탁 밑으로 죽 뻗어 있는 털이 부숭부숭한 두 다리를 힐금 본 여자는 무슨 말이든 해야 함을 느꼈다. 하지만 막막했다.

    어머니가 이 지경을 보면 뭐라고 할까. 어린 아들을 안은 어머니가 떠오르자 여자는 가슴이 죄는 듯하고 숨이 막혀왔다. 하지만 자신마저 이성을 잃어선 안 되겠다 싶어 호흡을 가다듬고 나직이 말했다.

    “그게 속에서 나오는 거라, 맘이 편하면 차차 없어지는 거야.”

    “지랄 마, 저주받았어, 저주받은 피부라고.”

    아들이 두 주먹으로 식탁을 내려치며 말했다. 야! 여자는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왔으나 이성을 잃지 않으려는 안간힘 때문에 눙치듯 맥없이 발음되었다.

    “성질난다고 다 부술 거야? 유리 깨지면 어떡하려고.”

    이럴 때엔 자리를 피해라는 심리상담사의 말이 생각난 여자는 싱크대로 가서 말간 행주를 빨아 짰다. 아들은 어린 티를 갓 벗은 수사자가 으스대듯 현관 신발장에 딸린 거울 앞으로 가 목을 빼고 얼굴을 들이댔다. 땀구멍 하나하나를 볼 참이었다.

    토기를 느낀 여자는 싱크대에서 헛구역질을 몇 번 한 뒤 입을 헹구고 곧바로 반지 앞에 앉았다. 원칙대로라면 한자리에서 끝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들었다 놓았다 해서 좋을 게 없으나 어쩔 수 없었다. 이미 손댄 것만이라도 마무리 짓고 일어나야 했다. 아들의 행동으로 봐서 어떤 상황으로 이어질지 모를 일이었다. 표면 장력이 강한 경화제는 방울진 채로 굳으려 했다. 여자는 반지를 고정한 집게를 조심스럽게 돌려가며 다시 맑은 액체를 꽃 위로 펴 발랐다.

    얼굴이 이 모양인데 장기라도 팔아서 해줘야 되는 거 아냐? 불평을 늘어놓는 사이사이에 또 육두문자가 들렸다. 여자는 이맛살을 찌푸린 채 떨리는 손으로 작업을 이어갔다. 반지가 흔들리는지 손이 흔들리는지 붓질이 제멋대로 됐다. 더 나은 작품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고 여러 날을 미뤘지만 오늘도 맑고 고요한 날은 아니었다.

    여자는 겨우 마무리한 반지를 햇볕이 드는 창가에 두고 대파 한 뿌리를 씻었다. 속이 메슥거렸다. 남편이 입맛 없다며 나가버려 끓이다만 국 냄비에 다시 불을 올렸다. 쿵쿵 발소리를 내며 아들이 제 방과 화장실과 현관을 오갔다. 흙수저로 태어나…… 쓰레기…… 알바 인생…… 토막토막 들리는 소리가 불평 수준을 넘었다.

    여자는 아들 눈에 식칼을 띄지 않게 하느라 개수대 안에 도마를 놓고 대파를 썰었다. 모조리 죽이고 싶다고 툭툭 내뱉던 아들의 말투가 예사롭지 않았었다. 파는 썰어지지 않고 찢겼다. 대중없이 칼질된 파를 김이 오르는 국에 던지듯 넣고 가스 불을 껐다. 국물이 바닥에 튀었다. 튄 자리를 걸레로 대강 닦은 여자는 욕실 구석에 그것을 패대기치고 안방에서 집히는 대로 옷을 갈아입었다. 부모라고……. 아들은 여드름도 고쳐주지 못하는 데 부모냐는 소리를 하는 중이었다. 제대 후 피부과에 갖다 준 돈이 얼마인지, 지금 쓰고 있는 피부과에서 산 화장품이 몇 가지인지 아랑곳하지 않았다. 피부 문제가 아니었다.


    집을 나온 여자는 두 다리가 자꾸 허청대는 것을 느끼며 반듯하게 걸으려고 애를 썼다.

    아들의 분노에 맞장구를 칠 수도, 조목조목 원인을 짚어가며 옳고 그름을 가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생의 비의를 어떻게 입으로 다 풀겠는지. 아들은 제 가슴을 쥐어뜯는 어린 짐승 같았다. 그 분노를 이해할 길 없어 여자는 남편과 함께 육 개월 전에 심리 상담사를 찾았다. 전역한 지 일 년이 되어 가지만, 군 복부 중 탈영할지 모른다는 전화를 몇 번 걸어온 것도 꺼림칙했다. 상담사는 그동안의 임상경험을 근거로 들면서 원인을 제대로 알기 위해 본인이 꼭 왔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날 저녁 부부는 컴퓨터 게임 중인 아들 옆에서 틈이 나기를 기다렸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들이 그렁그렁 한 눈을 부릅뜨며 개소리하지 말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런 델 내가 왜 가야 하는데! 생각 없는 니들이 가야지. 일그러진 아들의 얼굴을 보며 여자는 진짜 전쟁이 시작됐음을 느꼈고, 한편으론 꿈을 꾸는 중인가 싶어 자꾸 입술을 깨물었다.

    문자 알람이 울렸다. 재료상을 들러 오느라 늦겠다는 남편의 문자였다. 여자는 가게에 도착해 청소를 하고 컴퓨터를 켰다. 매장 분위기를 위해 깔아둔 음악 사이트를 클릭했다. 잔잔한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이내 영화 ‘마요네즈’의 OST 임을 알았다. ‘엄마와 딸, 더 이상의 강적은 없다!’ 영화 포스터에 박힌 문구 때문에 결혼을 앞둔 여자는 혼자 영화관으로 갔었다. 영화 속 엄마는 딸보다 감성적이고 나약했다. 생소한 모녀의 모습이 영화의 설정 같아서 보는 내내 불편했지만 생전의 엄마가 준 스카프를 목에 감고 애틋한 순간을 기억하는 주인공이 클로즈업되는 결말은 공감이 갔다.

    여자가 근 이틀간의 산통 끝에 낳은 아들을 안고 퇴원을 했을 때, 여자의 어머니는 결혼 전의 여자와 살던 단칸방을 내놓겠다고 했고, 여기 와야겠다, 선언하듯 말했다. 반대하지 못했던 건 그 영화의 결말에 대한 공감 때문이었다.

    제법 큰 안방과 누우면 문턱에 발목이 닿는 작은방 하나, 세탁기로 꽉 차버린 욕실, 싱크대와 잇닿아 있는 2인용 식탁이 전부인 여자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어머니는 생기가 넘쳤다. 생기는 아들에게로 오롯이 쏟아졌다. 직접 끊어 온 천 기저귀에 아들의 오줌이 한 방울만 묻어도 삶아 빨았다. 어머니의 손목 인대는 늘어났고 여자가 처음부터 강권했던 일회용 기저귀를 그제야 사용했다. 여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더 퍼라, 남자 밥을 그렇게 담는 법이 아니다, 국그릇이 이게 뭐냐, 나물 접시가 작다. 퇴근이 늦은 남편이 식사를 하려면 어머니는 아들을 안고 나와 식탁을 둘러보며 지적했고 남편 옆에 앉아 아들과의 일과를 소상히 나열했다. 어머니로서는 밥만 축내지 않는다는 뜻인지 모르겠지만, 하루를 회상하는 얼굴에 번지는 웃음과 조곤조곤한 말씨가 더없이 행복해 보였다. 여자는 어머니의 낯선 모습이 흐뭇하면서도 자신이 남편에게 해줄 말이 점점 없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티비 앞으로 기어가는 아들을 본 남편이 와, 이제 잘 기네요, 하고 감탄사를 터트렸다. 어머니가 힘이 잔뜩 실린 음성으로 대답했다. 자네는 하루만 보면 넘어갈걸. 남편이 함빡 웃으며 고맙습니다! 하고 아들을 안았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아들이 남편을 쳐다보았다. 귀엽다는 듯 쪽, 소리가 나게 아들의 볼에 입을 맞춘 남편이 비행기 태우는 놀이를 하기 위해 자세를 잡았다. 아서라, 아서! 어머니가 황급히 남편의 다리에 앉은 아들을 안았다. 멀뚱멀뚱한 눈으로 어머니와 남편을 번갈아 보던 아들이 목젖이 보이도록 울었다. 해줄게. 당황한 남편이 두 팔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 아빠가 해 줄게. 어머니가 노기어린 얼굴로 아들을 꼭 안았다. 아기라도 알 건 다 안다, 저를 편하게 해줘야 좋아하는데 불편하니 울지. 몸을 돌린 어머니가 안방으로 가며 말했다. 금방 낳았을 때도 안아보라고 줬더니 답삭 안질 못하더니만. 얘는 기질이 아주 고운 애야, 잘 다뤄야 해. 내가 잘 키울 테니 자네는 돈이나 많이 벌게. 어머니는 아들을 들까불거렸다. 어유, 내 새끼, 이쁜, 내 새끼. 너는 높은 사람 돼서 진짜 비행기 타고 오대양 육대주를 누비거라아. 사랑스러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음성에 까르르 아들의 웃음소리가 터졌다.


    그때부터 잘못된 거라고 여자는 휴대폰을 집어 들며 생각했다. 벨이 울리고 있었다. 철물점 노인이었다. 아픈 짐승을 두고 나오듯 께름칙한 기분으로 집을 나왔는데, 기어이 아들이 뭔 일을 저지른 모양이었다.

    “입구에 공동 현관문이 깨졌는데 혹시 알아요?”

    노인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차분했다. 사 남매를 모두 출가시킨 노인은 일층에서 아내와 소일거리로 철물점을 운영하는데 바로 위층이 아들 방이었다. 여자는 얼버무리듯 대답했다.

    “제가 나올 때는 멀쩡했는데요.”

    “박살이 나 있네.”

    분을 못 이겨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치던 아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공공기물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아들이 이성을 잃은 건 아니라고 믿고 싶었다.

    여자는 CCTV를 한번 봐야겠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윈도 너머 텅 빈 인도가 햇살에 하얗게 빛났다. 주변에 대형 쇼핑몰이 몇 군데 생기고부터 행인이 뜸했다. 도로 건너편에 노인 몇 명이 약국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들이 공동 현관문을 박살 냈다면 철물점에서 종일 장기 두는 노인들로 소문이 퍼지느라 동네가 들썩일 것이었다. 여자는 고개도 못 들고 철물점 앞을 지나는 자신을 떠올렸다. 하지만 여자를 짓누르는 실체는 딴 데 있었다. 사회 부적응자들의 시작이 이런 식이 아닐까, 이러다가 경찰서를, 경찰서에서 교도소를…… 꼬리를 물고 떠오르는 건 어디선가 본 사건 사고 장면들이었다. 여자의 입에서 끙, 앓는 소리가 터졌다.

    아들의 태도가 변하고부터 여자는 사회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심리 유형에 관심이 갔다.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사람 중에는 평범하고 좋은 환경, 말하자면 특이한 문제가 없는 부모 밑에서 자란 경우도 허다하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사흘이 멀다고 술 냄새를 풍기며 어머니를 구타한 아버지의 기억 때문에 여자는 최상의 환경을 아들에게 만들어 주고자 나름대로 고민하고 노력했다. ‘내 아이 어떻게 키울까’, ‘영재로 키우는 창조적 놀이’, ‘사춘기 공부’등 양육에 관련된 서적들을 아들의 성장 시기에 맞춰 읽었으며 무엇보다 아이의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해 예체능과 창의학습에 관련해 아이에게 좋다 싶은 것은 해주었고 반응이 아니다 싶으면 선뜻 방향을 바꿔 주었다. 그랬기에 아이가 관심을 보이는 교구나 프로그램이면 지출이 과해도 과한 줄 몰랐다. 그로 인해 남편과 언성이 높아진 적도 있었지만 큰 소리가 나면 여자가 먼저 침묵했다. 말하자면 여자는 자신이 겪었던 어린 시절이 아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하느라, 제 아버지를 닮아 자식도 어미 괄시한다는 말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지 않도록 하느라 마음을 놓지 못했다. 하지만 이십 대를 갓 넘긴 아들이 언제부터 나한테 신경 썼다고, 도대체 해 준 게 뭔데, 시바, 돈도 못 버는 주제에! 했을 때, 여자는 아이 앞에서 그때그때 떨어지던 어머니의 음성이 생생했다. 훈육을 감당하려는 젊은 부부의 입을 다물게 한 음성.

    그런 것 벌써 가르치지 않아도 때 되면 다 안다. 애가 얼마를 살았다고 그런 걸 가르치려 드느냐. 어린 것한테 얼굴을 붉히다니. 걔도 눈치가 빤한데 니들이 잘해야지. 애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내가 보는 데서 애 혼내지 마라. 자식 중한 줄 모르는 게 인간이냐. 함부로 애한테 말하지 마라. 하나 있는 아들한테 못 해줄게 뭐가 있냐.

    남편이 매를 들고 아들 방에 들어간 그날도 그랬다. 울며 뭐라고 웅얼거리는 아들의 목소리에 방문 손잡이를 두 손으로 붙들고 있던 어머니가 고함을 질렀다. 열어라, 문 열어! 너들 하는 짓이 돼먹지 않아도 유분수지, 걔가 다 살았어? 왜 방에 가둬놓고 소 잡듯 하냐. 그러나 이번만은 가만히 계시라고 미리 어머니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기에 남편은 못 들은 듯 아이에게 더욱 언성을 높였다. 어머니는 더 큰 소리로 노발대발했다. 니들, 여태껏 산 니들은 뭐 잘한 거 있냐,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나 방 한 칸 준 것 밖에 더 있어? 내가 걔를 어떻게 키웠는데, 먹이고 입혔다고 부몬 줄 알아? 짐승도 그 정도는 해. 빨리, 애 안 내보네? 어머니는 목소리가 갈라지도록 소리치며 방문 손잡이를 흔들었다. 여자가 옆에서 애 안 잡으니 걱정 말라고 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방문이 열렸다. 두 팔을 벌린 어머니가 한달음에 들어가 구출하듯 열세 살 아들을 껴안았다. ‘오대양 육대주’가 어머니 입에서 여지없이 나왔고 자신의 방으로 아들을 데리고 가서 눕혀 놓고 몸을 주물러주었다. 아들이 어릴 적부터 힘든 기색만 보여도 그래왔기에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자는 지금 저러는 건 아닌데 싶었지만 현관으로 가는 남편에게 어쩌겠냐고, 우리가 이해할 수밖에, 하며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문을 열어주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방문에 귀를 댔다. 아들이 어머니에게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니 애비처럼 그릇이 적어선 안 된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여자는 방문을 벌컥 열었고 애한테 할 소리냐고 고함을 질렀지만 이내 눈을 내리뜨고 방을 나왔다. 반쯤 몸을 일으킨 아들의 동그란 눈과 어머니의 벌어진 입을 보자 아들이 무엇을 더 볼 것이며, 어머니의 입에서 어떤 말이 나올지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여자는 아들을 어머니와 한방에 재운 지난날을 후회했다.

    매장 안으로 불쑥 전단지 몇 장이 날아들었다. 빨갛고 파란 글씨로 일수, 달돈이 박힌 그것을 남편 몰래 지갑에 넣어 둔 적이 있었다. 어머니가 유난히 오래가는 감기로 입원하는 바람에 유방암이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서였다. 암은 다행히 초기였다. 얼마간 치료를 받고 증세가 호전된 어머니는 감기를 이긴 사실에 경도되었는지 그럴 리가 없다고 퇴원을 원했다. 의사는 좀 더 두고 보자며 퇴원을 말렸고 여자도 충분한 회복을 들먹이며 그러자고 달랬다. 어머니는 주변 환자들에게서 귀동냥한 암에 좋다는 것을 먹게 해 주든지, 퇴원을 시켜 주든지! 하며, 쩌렁한 음성으로 으름장을 놓았다. 의사는 병원의 지시에 전적으로 따라야 한다고 일침을 주었으나 병원에서 병을 키우겠다며 어머니는 의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그 모습에 여자도 의사도 두 손을 들었다. 이듬해에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도 신경 쓰였지만 여자는 근 일 년 반 동안 암에 좋다는 것을 달여서 날랐다. 어머니의 얼굴에 화색이 돌고 몸이 좋아지는가 싶었다. 하지만 가을볕이 한풀 꺾이는가 싶은 그날, 어머니는 감은 눈을 뜨지 못했다. 아들의 늘어난 과외비와 병원비로 사채를 쓰기 직전이었다.

     여자는 망연한 표정으로 윈도 밖을 보다가 전단지를 쓰레기통에 넣었다.


    매장 안으로 중년 여인이 들어섰다. 진열대를 한 바퀴 둘러보더니 밖으로 나갔다. 어느새 오후 두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가게를 접긴 접어야 할 때가 왔나. 여자는 휑한 인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휴대폰이 울렸다. 아들이었다.

    “입구에 유리, 시바 슬쩍 찼는데 깨지네. 누가 전화 오면 물어준다고 해. 유리 같은 거 끼워 주면 되잖아.”

    “너, 어쩌자고 그런 짓을.”

    “내 돈으로 할 테니 걱정 마라.”

    아들은 제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일주일에 세 번, 하루 네 시간 근무하는 자리를 얼마 전에 구해 큰소리였다. 아르바이트로 몇 푼 번다고. 여자는 혼잣말을 하며 주먹으로 명치를 눌렀다.

    가게 뒷문으로 남편이 들어섰다. 안고 온 박스에서 신상품 가방들을 꺼냈다. 여자는 물건을 정리하는 남편에게 전화받은 내용을 말했다.

    “제가 알아서 하라고 해.”

    남편이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일없다는 투로 대답했다.

    “제 놈이 직접 해봐야 욱 한번 잘못하면 어찌 되는지, 돈이 얼마나 중한지, 알지.

    여자의 얼굴에 짙은 그늘이 번졌다. 남편과 아들 사이가 더 멀어질까, 또다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몰려올까 두려웠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아들이 친구와 서울로 간 그해 봄, 부부는 무작정 떠난 아들을 만나기 위해 네 시간 반을 자동차로 달렸다. 도착하니 저녁 먹을 시간이었다. 아들과 신촌의 한 고깃집으로 갔다. 석 달 만에 마주한 자리였다. 남편은 집에서 하던 데로 삼겹살을 구웠고 간간이 맥주를 한 모금했다. 아들이 너무 힘들다고 했다. 혼자서 밥해 먹고 개 쌍욕 들으면서 일하며 산다고, 누구보다 외롭고 피곤하다고 투덜거렸다. 여자는 익은 고기를 아들의 앞 접시에 놓으며 달래듯 말했다. 어쩌겠니. 누구나 외롭기 마찬가지야, 이겨내야 안 되겠니. 아들이 얼굴을 찡그렸다. 시발, 부모 잘못 만나 인생 족쳤는데, 이길 힘이 어디 있냐, 돈이나 달라고. 남편이 불콰한 얼굴로 아들을 봤다. 내가 왜 너한테 돈을 줘야 하는데. 자식을 싸질렀으면 책임을 져야 하잖아. 남편이 손바닥으로 아들의 얼굴을 쳤다. 네가 내 자식이냐. 아들이 벌떡 일어나 맥주병을 테이블 모서리에 내리쳤다. 남편이 허방을 딛듯 기우뚱하며 일어섰다. 그리고 테이블 옆에 열려 있는 문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그래, 짜식아, 한번 해봐라. 깨진 맥주병을 거머쥐고 남편의 뒤를 따라 밖으로 나가는 아들을 여자가 붙들었다. 아들이 여자를 밀쳤다. 비키라고. 여자가 소리쳤다. 말려주세요. 다가온 주인 남자가 아들을 붙들고, 앞치마를 한 청년이 아들의 손에 있는 것을 빼앗았다. 아들은 그들을 밀치고 나가 남편의 얼굴을 주먹으로 쳤다. 외마디 비명이 여자의 입에서 터졌고 남편이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여자는 아버지한테 이러면 안 된다고 아들의 팔을 잡다가 남편을 흔들어 깨웠다. 아들이 씩씩대며 내려다보더니 돌아섰다. 그날 밤, 셋은 노천카페에 다시 앉았지만 이내 일어나 아들은 자취방으로 가고 여자와 남편은 찜질방으로 갔다.

    가방을 진열하던 남편이 돌아봤다. 이마에 힘줄이 돋쳐 있었다.

    “지 잘못은 하나 없고 다 부모 탓, 세상 탓이잖아. 그런 자식한테 뭘 더 어떻게 해.”

    여자는 굳은 얼굴로 윈도 밖을 바라봤다. 남편은 무슨 말인가 더 하려는 듯한 표정이더니 집에 가보라고 했다. 혼자 있는 아들이 걱정되는 모양이었다. 여자는 말없이 가게를 나왔다. 남편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들인들 그러고 싶어 그런 것은 아닐 것이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소용돌이에 휘말린 듯 여자는 어지러웠고 속이 매슥거렸다. 어깨에 멘 가방이 흘러내려 바닥에 닿을 듯 건들거렸으나 앞만 보고 걸었다. 집으로 가는 골목을 가로질러 하천 쪽으로 향했다. 아들이 군대 있는 동안 명치가 뻐근할 때마다 걸었던 길이었다. 산책로를 따라 꽃길이 조성된 천변에서 채집할 꽃과 풀이 눈에 띄면 마음이 그나마 수습되곤 했다.

    수풀 속에 여린 야생화들이 앙증맞게 한들거렸다. 틈새에 민들레와 엉겅퀴가 우부룩했다. 꽃보다 잎사귀에 눈길이 갔다. 새의 깃이 찢긴 듯 가늘고 기다란 잎, 결각이 깊은 그것을 지그시 움켜쥐었다. 부드러운 촉감이 감겨오는 순간 손에 불이 붙은 듯 화끈했다. 내가 콱 눌러졌으면 좋겠네, 흔적도 안 남게. 언젠가 다듬은 꽃들을 누름 작업하고 있는데 아들이 말했다.

    여자는 불현듯 심리상담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들은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자에게 할 수 있는지 전문가의 말을 듣고 싶었다. 몇 번의 통화음이 있은 뒤 연결된 상담사는 단번에 여자를 알았다. 여자의 얘기를 한동안 듣더니 부드러우면서도 또렷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아들이 자존심 때문에 말은 안 하지만 학교나 서울에서 피할 수 없는 참혹한 일을 겪었던 것 같다. 그로 인해 부대에서도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을 겪었다고 모두 이렇지는 않다고 했다. 양육에서 조모로 인해 삼자의 위치로 밀려버린 부모가 아들 입장에서는 문제 부모로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부모에게 자신을 투사, 방어하고 부정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모든 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얼굴 여드름 집착도 왜곡된 자기 사랑이니 만큼 자기 부정의 한 형태로 부모에게 투사하는 것이다. 애착형성 과정인 유아기 때 조모로부터 ‘오대양 육대주’ ‘큰 그릇’ 등이 설명 없이 주입되다 보니 현실과 계속되는 괴리를 그때그때 능동적으로 해결하지 못했고 그게 쌓여서 나타난 현상이다. 여자 역시 부모 적응에 장애가 유발된 것이기에 혼란스러웠을 것이라고 했다. 말하자면 정서적 유대가 형성되는 영유아 시기에 부모와 안정적이지 못한 점이 아들의 퇴행에 근본 원인이라 볼 수 있어요. 상담사는 막힘없이 설명을 풀어냈다.

    여자는 퇴행, 근본 원인이란 말에 과일 접시나 한 끼 식사가 담긴 쟁반을 들고 키보드 소리가 요란한 아들 방에 들어가는 어머니를 떠올렸다. 게임에 열중한 아들의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는 것이 어머니의 유일한 낙이었다. 코밑이 거뭇한 녀석이 대 놓고 하는 막말에도 에그 자식도, 그 한 마디로 넘어가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이었다. 아들에 대한 어머니의 무조건적 용납이 여자 눈에도 문제로 보이긴 했다. 그래도 아들이 행복하게 크면 그만이지 않은가? 하지만 나중에 다 자라서 문제로 불거지면 어쩌지? 이런 이중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적이 적지 않았지만 그게 어떤 문제로 불거질지 알 도리가 없었다.

    전화를 끊은 여자는 엉겅퀴 꽃숭어리를 틀어쥐었다. 뜨끔한 통증이 손바닥을 통해 온몸으로 번졌다. 역한 풀냄새가 코를 찔렀고 입안에 흙이 으적거렸다. 움켜쥔 손끝에 애기똥풀이 한들거렸다. 순연한 빛깔과 여리여리한 모양이 저무는 햇살에 도드라져 보였다. 초등학생인 아들과 과제물로 채집할 때 보지 못했던 풍경이었다. 엄마의 지극한 사랑, 몰래 주는 사랑이라고 공책에 꽃말을 꼭꼭 눌러쓰던 아들과의 한때가 아득하게 느껴졌다.

    여자는 감각 없는 두 손을 비볐다. 비비면서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눈가가 반짝했다.


    방사형으로 금이 간 빌라 입구의 유리 문은 손만 닿아도 왕창 내려앉을 것 같았다. 다행히 유리면 바깥쪽 쇠창살이 소용돌이 모양으로 촘촘했다. 여자는 허리를 굽혀 문 안팎으로 떨어진 파편들을 발로 벽 쪽에 대강 모은 뒤 계단을 올라갔다.

    집 안은 고요했다. 방문은 모두 닫혀 있고 식탁도 나올 때 그대로였다. 여자는 연이어 들려오는 키보드 소리, 폭탄 터지는 기계음을 아들 방문 앞에서 잠시 듣다가 노크를 하려는 순간 애기똥풀과 엉겅퀴를 쥐고 있음을 알았다. 천변을 나오다가 지는 햇살에 광택이 나 보이는 둥그런 꽃잎이 눈에 어른거려 꺾어왔다. 꺾다 보니 제법 되었다. 벌써 시들하여 널찍한 병에 물을 받아 안방으로 가서 담그고 아들 방문을 두드렸다. 기척이 없었다. 다시 방문을 몇 번 두드리고는 열었다. 커튼이 내려진 방안은 후끈했다. 웃통을 벗은 채 꾸부정한 자세로 모니터를 보고 있는 아들에게 여자가 말했다.

    “현관 앞에 유리 조각이 많던데 좀 쓸어야겠다.”

    “쓸어라.”

    “아니, 네가 쓸어.”

    여자가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쓸어라. 아들이 대답했다. 여자가 다시 말했다. 네가 쓸어. 컴퓨터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 아들이 방해 말라며 꽥, 소리를 질렀다.

    대놓고 여자에게 욕을 하기 전이었다면, 어머니가 여자에게 그랬듯이 아들의 입을 뻥긋 못하도록 여자도 할 수 있었다, 따귀를 걷어붙여서라도. 천변에라도 나가 뛰라고 등짝을 후려쳐 쫓아내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다. 여자는 아들의 뒤통수를 보며 소리 없는 한숨을 뱉고 방을 나왔다. 문을 열어 두고 싶지만 곧바로 닫힐게 빤해 조용히 닫고 안방으로 갔다. 아침에 만든 반지를 확인하고 맥이 풀린 손으로 반지 알을 매만졌다. 골몰하며 구도를 잡은 꽃송이가 틀어져 보기 싫었다. 언뜻 보면 모를 정도나 여자는 그 부분만 보았다. 이 작은 세계조차 벼르고 별렀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손가락에 반지를 꼈다. 들고 봤을 때와 달랐다. 한결 자연스럽게 보였다. 결과물을 완벽히 예측할 수도, 똑같이 표현할 수도 없는 자연에서 얻었기 때문이라 생각하며 마음이 조금 누그러진 여자는 반지를 낀 채 꽃잎이 오므라들어 새들한 애기똥풀을 다듬기 시작했다.

    네 장의 노란 꽃잎을 안은 꽃받침과 꽃자루, 잎사귀를 분리했다. 오전 열 시경 채집이 가장 신선하고 예쁜 꽃을 얻지만 꽃은 매 순간이 꽃인 거야,라고 자위하며 핀셋으로 꽃송이를 조심스레 집었다. 날깃날깃한 꽃잎이 찢어질 듯했다. 애가 탄 듯 여자는 한 손으로 살짝 집어서 다른 손바닥에 올리고 모양을 잡았다. 하얀 화지를 깐 건조 매트 위에 모양대로 꽃잎을 놓았다. 꽃잎 사이에 빽빽하던 수술이 쏟아지듯 흩어졌다, 여자는 핀셋으로 일일이 그것들을 겹치지 않게 배열하고 꽃송이와 줄기, 잎도 빼곡히 놓은 뒤 하얀 화지를 덮었다. 그 위에 건조 매트를 놓고 다시 화지를 깔고 꽃들을 다듬어 촘촘하게 분류해 놓기를 반복했다. 지난한 동작이었다. 작업 때마다 느끼듯이 누르고 눌러온 자신의 가슴과 다를 바 없는 형국이었다. 불쑥불쑥 어머니를 구타했고 느닷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하다가 어느 날 영원히 사라진 아버지. 그 아버지의 부재를 한탄하다가 여자 때문인 듯 ‘딸로 태어나서는’을 반복하며 돌아눕던 어머니. 아들과 어머니 사이에서 켜켜이 눌러진 순간들. 지금 그 모두가 손끝의 꽃이었다. 이내 흩어지고 시들어버리는 생화의 덧없음을 제거하고 살아있을 때의 색과 모양을 반영구적으로 드러내는 작업은 매번 다음이 기대되었다. 자신의 손에서 눌러진 꽃들이 무엇으로 어떻게 제 모양을 다시 드러낼지 설레고 궁금했다. 그러기에 액세서리나 생활 소품과 빚어져 완성되는 과정이 고달프기도 했지만 소중했다.

    여자는 문득 남편이 올 시간이 지났음을 알았다. 자정이 지나고 있었다. 평소 같으면 벌써 연락이 와도 몇 번은 왔을 시간이었다. 여자는 문자와 전화를 연이어 했다. 반응이 없었다. 초조했다. 어디? 여자는 다시 남편에게 문자를 보냈다.

    이러는 건 아니라고, 아들의 태도를 짚어줘야 할 사람은 남편이었다. 남편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전화조차 받지 않았다. 자신의 역할을 피할 모양이었다. 언제부턴가 머리 아픈 일은 피하고 보는 것 같았다. 가게 창고에 뒀던 낚시 장비를 들고 떠나는 게 상책이겠지. 머리 좀 식히고 올게, 하고 말을 안 한 것뿐이었다. 밤바다가 그렇게 좋다나 뭐라나. 하지만 오늘 같은 날 아들과 자신을 팽개치고 쏙 빠져 버리는 남편의 태도가 아들 못지않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재빠르게 두드리는 키보드 소리가 신경을 건드렸다. 여자는 서둘러 남은 꽃들을 건조 매트에 앉히고 마지막 매트 위에 압착 판을 올려 벨트로 힘껏 조인 다음 비닐로 밀봉하고 무거운 책을 올려 무게를 더했다. 아들 방에서 들려오는 기계적인 폭탄과 총알 소리를 뒤로하고 현관을 나왔다. 빌라 입구의 유리 문이 흉물스럽게 번쩍였다. 빌라 주민들의 원성을 사기 전에 수리를 해야 하지만 아들의 무책임한 태도를 어쩔 것인지. 남편은 어쩌자고 안 나타나는지. 여자는 발밑에서 부서지는 유리 조각 소리에 이맛살을 찌푸리며 골목으로 나왔다. 맞은편 원룸 건물 창이 드문드문 환했다. 세상의 어둠에서 안온하게 보호받고 있는 불빛 같았다. 아들 방 창문에도 더없이 정갈하고 다정한 불빛이 흘러나왔다. 전역하고 온 아들이 빨리 안정을 찾으려면 방 분위기라도 바꿔 줘야 할 것 같았다. 자신과 달리 자유로운 영혼이길 바라며 여자는 연초록빛 블라인드를 골랐다. 하지만 아들은 이게 커튼이냐, 시바 눈이 그대로 부시는데, 하며 게임에 방해된다고 불평했다.

    여자는 휑한 도로를 가로질러 계단을 내려갔다. 가로등에 어린 빛이 물길을 열듯 까만 냇물 군데군데가 반짝이며 흘렀다. 발길 닿는 대로 어디든,이라고 했지만 고작 여기였다. 인적이 없는 길은 남편과 나란히 걷던 때와 달리 보였다. 한쪽은 둔덕이 깊어 외지고 반대편 천변 가엔 키 큰 풀들이 짙은 그늘을 만들었다. 여자는 문득 계속 가야 하나 싶었다. 마을을 몇 개 지나면 산골짝에 닿는다고 어디선가 들었다. 내친김이었다.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건너편 둔덕 위로 자동차 불빛들이 나타나났다 사라졌다. 어딘가로 이동하는 불빛을 보고 있자니 세상이 자신을 따돌리느라 사라지는 것 같았다.

    몇 걸음 앞에서 뭔가 반짝 빛을 발했다. 여자는 멈칫하는 순간 괴한이 휘두른 둔기에 쓰러지는 상상을 했다. 자신의 죽음에 눈이라도 깜박일 사람이 있는지 떠올려 보았다. 아들도 남편도 각각 살길을 찾아가면 그뿐이라는 사실만 명징했다.

    “어디 가.”

    남편의 목소리가 느닷없이 들려왔다. 여자는 두리번거리다가 우람한 나무 아래에 시선이 멈췄다. 먹지로 눌린 듯 얼굴 윤곽만 보였다. 맥주 캔이 반짝, 빛을 발했다.

    “뭐 해.”

    “그냥.”

    여자는 남편의 대답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묵묵히 벤치로 가서 남편 옆에 앉았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맥주를 들이킨 남편이 참았던 숨을 토하듯 입을 열었다.

    “이렇게 살아야 하냐.”

    여자가 하고 싶었던 말이었다.

    “내용증명이 또 날아왔어.”

    남편은 힘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생각 밖의 일은 아니지만 기가 막혔다. 가게 인테리어를 다시 한 지 이 년이 채 안됐는데 건물주가 건물 노후를 들먹이며 신축한다고 나가달라는 문서를 보내왔다, 팔 개월 전에. 불편사항이 없다는 답변을 바로 보냈지만 얼마 뒤 법원에서 두툼한 봉투가 날아왔다. 명시된 날짜까지 가게를 비우지 않으면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 덧붙여 있었다. 여태 버텨왔던 세월이 한순간에 휘발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사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더 이상 어찌해볼 방도가 없네, 집이고 가게고 다 끝내고 싶다.”

    여자는 몸이 어디론가 떠가는 듯 어지러웠다. 다 헤어지자. 우리 흙수저맞고, 지 맘대로 하라고 해. 끝내자. 당신도 할 말 다 하고, 언제까지 참고 살 거야. 남편은 격앙된 음성으로 말을 쏟아냈다. 여자는 서울에서 본 남편과 아들의 모습이 떠올라 심장이 쾅당쾅당 뛰었다. 천변 건너편 가로등 빛이 가물가물하다 사라지고 가물가물하다 사라지를 반복했다. 얼굴이 달아올랐다. 여자는 벤치에서 일어나 걸음을 옮겼다. 남편이 터벅터벅 걷는 여자의 뒷모습을 보다가 슬그머니 일어났다. 부부는 각자 힘없이 집 쪽으로 걸었다.


    골목으로 새어 나온 불빛에 여자가 걸음을 멈췄다. 뒤따라오던 남편도 섰다. 아들이 빌라 현관을 쓸고 있었다. 둥그런 등허리가 발가숭이 적 아들의 순한 몸이었다. 여자는 콧등이 시큰했다. 사금파리 같은 파편을 쓸고 있는 아들의 등이 노란 애기똥풀 꽃잎처럼 둥글었다. 뱃속에서도 저렇게 둥글었겠지. 아들이 뱃속에 웅크리고 있던 그때 툭, 툭, 발질하다 잠잠하던 몸짓이 오롯했다. 어머니는 아들의 태몽을 꾸었다고 장황하게 설명했었다. 하지만 하루 반의 산통은 아들과 여자의 몫이었다. 현관 센서 등이 꺼졌다. 사악사악. 아들의 비질 소리가 일정하게 들려왔다. 저 꽃잎이 어디서 짓눌렸는지, 그을렸는지, 비바람에 휘어졌는지. 못마땅한 표정으로 거울을 들여다보는 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센서 등이 켜졌다. 아들의 얼굴 위로 어머니를 응시하는 여자의 얼굴이 겹쳐졌다 사라졌다. 습관처럼 여자의 얼굴에 미열이 올랐다. 뺨을 만졌다. 손가락에 낀 반지가 느껴졌다. 오닉스 위에 꽃송이가 선연한 붉은빛을 발했다. 단단하게 굳은 경화제의 촉감이 매끄러웠다. 센서 등이 꺼졌다. 따지고 보면 어머니의 삶이 지금 원망의 빌미가 될 수 없었다. 남편은 그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었다. 한 줄기 온기가 가슴에 흘러드는 듯했다. 여자가 반지 낀 손으로 남편의 팔을 잡았다. 언젠가 처연히 엄마, 하고 부를 아들을 기대하며 환한 쪽으로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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