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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경남신문 신춘문예 '수필' 당선작] 댓돌- 우광미

  • 기사입력 : 2020-01-02 07:5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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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곳은 성전의 들머리다. 저마다 순례길 같은 일상에서 지고 온 남루들을 벗어놓는다. 하루치의 자잘한 삶의 편린들을 정화시킨 후 비로소 맨발을 방으로 들인다. 또 날이 새면 어김없이 새로운 다짐을 찍으면서 나선다.

    돌은 연장이 되기도 하고 염원을 담아 얹으면 탑이 되기도 한다. 성벽의 돌처럼 우러러봐야 할 정도로 높이 쌓은 것도 있고, 보일듯 말듯 나지막이 집 담장으로 둘러진 경우도 있다. 그 쓰임새가 다양하나, 집채를 오르내리도록 만든 계단인 댓돌은 유난히 살갑다.

    비상하는 새들도 머무르며 쉼표를 찍듯이, 생각이 흐트러질 때엔 시골집에 와서 댓돌을 바라본다. 칼에 베인 시간처럼 빈집의 공허가 창백하다. 내 시간의 긴 침도 모 닳은 댓돌 위에 멈춰 있다. 각이 서 매사 반듯하던 젊은 날의 성정도 유연해졌는지 제 몸에 이끼꽃을 피웠다. 바닥의 애환을 알고 있는 듯 묵묵히 세월을 받아낸 낙수의 결마저 간직하고 있다.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고요에 든다. 이렇듯 자신을 잘 바라볼 수 있을 때는 멈추어 있는 시간일 것이다.

    해가 설핏해지자 산 그림자가 마당에 내려앉는다. 감나무 끝에 서성이던 바람이 댓돌 위로 먼 기억의 풍경들을 부려놓고 간다. 우듬지 까치 소리가 여명을 깨울 때부터 들리던 자분자분한 어머니 발걸음 소리. 뻐꾸기 울고 스무날만 지나면 풋보리를 먹을 수 있다던 외할머니 말씀이 문득문득 생각난다던 어머니. 보릿고개를 넘어가며 했다던 그 말이 어려움을 이겨내는 주문인 줄 알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힘겨운 시집살이에 속울음을 삼키며 친정으로 향하고픈 발걸음을 몇 번이나 여기서 바장였을까. “이별이 꼭 죽음뿐이랴.” 하시며, 집 나간 자식 흉몽이라도 꾸는 날이면 하얀 소금을 한 줌 댓돌 주변으로 뿌려 놓으시곤 했다. 아랫목 이불 속에 밥그릇이 따뜻하면 객지에서도 배곯지 않는다는 믿음, 신발이 가지런하면 어디를 가든 발걸음이 어긋나지 않는다는 믿음, 그것은 어머니 불변의 동종주술이었다.

    하루의 일과 중 무시로 눈보다 정갈히 씻은 시어른 고무신을 섬돌에 올리는 일은 빼놓을 수 없는 의식이었다. 가족의 밥이 되고 자식의 책이 될 벼를 돌보기 위해 산모롱이 돌아 물꼬 트는 아버지의 흙고무신. 안쪽 바닥에 우산대 달궈서 눌러놓은 낙인은 끝까지 닳지 않는 바코드였다. 덤벙대며 마루로 뛰어오르곤 하던 오빠의 운동화는 사선으로 놓이거나 한쪽이 뒤집히기 일쑤였지만, 어머니는 언제나 조용히 챙겨놓았다. 마치 댓돌이 나의 영역이라고 무언의 주장이라도 하듯이. 어떤 허물도 절대 발설치 않는, 주소를 잡고 떠날 줄 모르는 정착의 의지가 굳건하다.

    옆구리 맞대고 길게 늘어섰던 신발들. 그런 댓돌이 휑하니 비는 밤이 한 해에 꼭 하루씩 있었다. 음력 정초가 되면 날마다 무슨 금기가 그리도 많았던지. 그 중 신일(申日)에는 밤중에 귀신이 와서 신발을 하나씩 신어 보고, 그 중 딱 맞는 신 임자는 그 해에 병치레를 많이 한다고 했다. 그래서 초저녁이 되면 방 윗목에 신문지를 깔고 온가족의 신발을 나란히 늘여 세웠다. 늘 보던 신발을 방안에서 보면 색다르게 보였다. 아침에 나와서 말끔히 비어 있는 댓돌을 볼 땐 마치 새집에 온 듯이 낯설었다. 그만큼 댓돌은 신발이 놓여야 생명을 가지는 공간이다.

    큰 건물의 댓돌은 마당에서 기단으로 오르는 계단이기도 하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도와 주는 디딤돌이다. 불국사의 연화교에 디딤돌마다 연꽃이 새겨진 이유도 그 위가 부처의 세계라는 암시이다. 진흙에 뿌리를 내린 채 티없이 향기를 피우고, 물 위에 잎을 펼치고도 젖지 않는 연화처럼 청정한 세계로 걸어가라는 뜻이리라. 대궐의 조계(階)에는 용이 새겨져 있다. 용이 통치자의 권위를 내보이기도 하지만 구름을 몰고 다니는 신성한 존재이기도 하니, 백성을 다스리는 이는 우로(雨露)를 골고루 내려 풍족하게 한다는 다짐일 터이다.

    그에 반해 속계에 사는 서민의 집 댓돌은 조붓하다. 장식이 없고 밋밋하다. 화장기 없고 수수한 시골 아낙과 같다. 비록 열반을 향해 오르는 연꽃이나 세상을 다스리는 용 문양의 돌은 아닐지라도 댓돌의 적요는 본성이 지닌 포용력에 있다. 울타리 허술하게 치고 사는 서민들 정 붙이고 살아가는 속내야 어찌 연화장 세계나 대궐보다 덜하겠는가.

    유년시절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은 두 장의 흑백 필름이 있다. 팔남매의 막내인 나에게 기억될 정도면 할아버지는 수를 하신 셈이다. 한 장은 누워 계신 모습이다. 이불을 잔뜩 당겨 덮은 까닭에 얼굴만 드러났다. 얼굴보다는 숱 많은 수염과 한 번도 벗지 않던 탕건만 기억난다. 또 한 장은 댓돌에 앉은 모습이다. 흰 바지저고리를 입고 다리에 행전을 두른 채, 마루를 배경으로 댓돌 위에 앉아 계셨다. 그분에게 댓돌은 일생 다스려온 영토를 내려다보는 성루이자, 피안을 바라보는 차안의 나루터였을지도 모른다.

    댓돌은 밤이 되면 도량의 정례석처럼 정(靜)하다. 하루를 돌아보고 나쁜 기운은 별빛에 우려낸다. 고된 노동 후에 밥은 달고 잠은 깊은 법. 깊은 잠 속에서도 생의 무게에 신음하는 부모님의 숨소리마저 거두어 달빛에 씻어내는 정화수 막사발이다. 어제의 삶에 오욕이 달라붙었을지라도, 뉘우침으로 밤이 길었을지라도, 아침이 되어 신발을 꿰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부여해준다.

    시간과 공간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댓돌 위에는 지난 삶이 남아 있다. 돌아봄과 되새김의 시간들이 머무르는 곳이다. 하루의 노동을 끝낸 달뜬 걸음이든, 일용할 양식에 매인 비루한 걸음이든, 끝내는 댓돌에 닿아서 멎는다. 내려간 만큼 삶을 절실하게 살아가게 하는 바닥의 의미를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가장 낮은 자세로 좌정하고 있다. 가족들 차례로 떠나고 종내에는 어머니 혼자 오르내려도, 생각 속 신발만은 숫자가 줄어들지 않았던 댓돌이다. 이제 어머니의 신발도 정물이 되었다. 걷고 걷다 온 제자리.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간 날들이 채도를 잃은 가족들의 신발과 함께 저기 놓여 있다.

    이 모든 희로애락을 듣고 갈무리한 댓돌에 앉아 지난 세월을 되작여 본다. 걸을 때에는 나아가는 일에만 전념했다. 바라보았던 건 앞쪽과 남은 거리뿐이었다. 멈추어 돌아본다. 인지한다는 것은 관찰하고 그 깊이를 가늠하는 일이다. 신발을 잘 벗어 놓으려면 고개를 숙여야 하듯, ‘지금 여기’ 자신이 서 있는 마음자리를 잘 살펴야 할 것이다. 겸허한 마음을 지니고 하심(下心)을 닦는 일이기도 하다.

    마음 허허로운 날엔 댓돌에 올라 볼 일이다. 우리의 뒷모습이 저기 있다. 결코 지워지지 않는 가족들의 온기가 새겨져 있다. 시간을 거슬러 표정들이 살아나고, 귀 기울이면 속삭임이 들려온다. 모 닳은 댓돌은 우리집 호적등본이다. 칸이 부족해 너덜너덜한 우리 삶의 이야기가 깨알처럼 씌어 있다. 나 또한 언젠가는 하나의 정물로 들어앉을 것이다. 그날이 언제이건, 오늘도 이 제단을 조용히 쓸고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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