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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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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천왕봉에 올라 남명선생을 떠올리다- 박우범(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장)

  • 기사입력 : 2020-01-05 20:5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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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릴 적 지리산은 뒷동산 놀이터였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최대의 국립공원, 민족의 영산을 내 놀이터인 양 향유하며 정기를 키워온 것은 행운 중 행운이다.

    지금에 와 지리산의 중심에 있는 내 고향 산청은 경남의 대표적인 역사, 문화, 관광자원의 보고이며 웰니스(wellnes) 관광 1번지가 되고 있다.

    여기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이 있다. 남명 조식 선생이다. 선생이 산천재(山天齋)를 지어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강학(講學)에 힘썼던 곳이 지리산 이곳, 산청군 시천면이다.

    선생이 살았던 시기는 사화기(士禍期)라 할 만큼 사화(士禍, 선비들이 정치적 반대파에게 화를 입는 일)가 빈번했다. 선생은 두 차례 사화를 목도한 탓에 벼슬에 나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오로지 학문과 제자 양성에 힘썼다. 이 시기 재야학자의 면면과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지만 선생의 결이 다른 것은 개개인의 ‘깨어있음’을 개인 안에 머무르게 하지 않고 밖으로 표출되는 궁극의 실천을 강조했다는 점, 세계의 출발점인 ‘나’를 둘러싼 안팎의 조화를 멋들어지게 이뤄냈다는 점이다. 내면과 외면, 몸과 마음, 생각과 실천, 자아와 세상을 연결시키기 위해 한쪽으로만 머무르는 인간의 습성을 타파하려 애썼다.

    ‘칼 찬 선비’. 재야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도 부당한 사회 현실과 정치적 모순에 대해서는 서슬 퍼런 일침을 마다하지 않았고 대안도 함께 제시했다. 칼에 적힌 ‘내명자경(內明者敬) 외단자의(外斷者義)’(안으로 밝히는 것은 敬, 밖으로 결단하는 것은 義)라는 새김은 선생이 얼마나 부단하게 당대의 현실과 싸웠는지 알 수 있게 한다. 늘 몸에 지닌 방울(성성자, 惺惺子) 소리로 순간순간 깨어있음을 강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선생의 실천정신은 제자들의 임진왜란 의병활동으로 오롯이 이어졌다.

    올해 경남의 경제성장률은 전국 14위, 지역내 총생산도 충남에 자리를 내준 4위로, 도세가 약해졌다고 한다. 오랜 경기침체, 주력산업의 위기, 인구 절벽, 지속가능성의 위협 속에서 재도약을 위해 발버둥을 치고 있지만 제자리걸음인 것 같다.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 같은데도 실제 현장에서 만나는 도민들 이야기는 다르다.

    혹 경남도정이 한쪽에만 안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상에 매료되어 현실의 세밀한 풍경에는 눈과 귀를 닫은 것은 아닌가? 생각에만 파묻혀 실천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돌아볼 때이다. 우리는 부모 세대 덕분으로, 당신들이 그토록 원하는 자유로운 번영의 시대를 살고 있다. 남명선생이, 선생의 제자들이 그러했듯. 지역사회에 울리는 경종에 듣고 보고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2020년 경자년(庚子年). 쥐는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부지런함으로 먹을 것을 조금씩 모아 쌓아 두는 습성이 있다. 힘든 여건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쥐의 미덕처럼 경남도와 도민 한명 한명이 모아 두었던 역량과 저력을 한껏 펼치기를 고대하며, 선생의 일갈(一喝)을 대신한다.

    “손으로는 물 뿌리고 비질하는 방법도 알지 못하면서 입으로는 하늘의 이치를 담론한다.”

    박우범(경남도의회 문화복지위원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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