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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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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부불검용빈후회(富不儉用貧後悔)- 이경민(진해희망의집 원장)

  • 기사입력 : 2020-01-08 20:3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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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새해가 시작됐다. 최근 언론보도에서는 세계가 ‘짠물소비’를 한다는 기사가 났다. 영국과 미국 등에서 밀레니엄 세대를 중심으로 ‘소비 안 하기 챌린지(No Spend Challenge)’가 일어나고, 세계 곳곳의 소비자들은 저성장, 저금리의 ‘제로 이코노미 시대’를 맞아 ‘절약이 최고의 재테크’라고 판단하고 있다. 앞의 칼럼 제목은 12세기 중국 송나라 유학자 주자가 교훈한, 인간이 살면서 10가지 후회하기 쉬운 주자십회(朱子十悔) 중 다섯 번째 글이다. 그 뜻은 부하게 잘살 때에 검소하지 않으면 가난해진 뒤 후회한다는 뜻이다.

    오늘의 경제적 현실은 어렵다. 안타깝게도 많은 자영업들이 주변에서 문 닫는 소리를 듣는다. 우리 모두는 경제의 주체로서 자신의 가계를 어떻게 꾸려나갈지 늘 고민하며 생활한다. 과거에는 소비를 절제하고, 분수에 맞게 지출하고, 물건을 아껴 쓰는 것을 미덕이라고 했다. 빚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지금은 금융기관에서 빚내어 투자하는 것이 일상이 됐다.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9년 6월말 기준에 가계부채가 1556조원이 넘었다고 한다. 국가부채도 2018년 국가회계결산에서 1700조원에 육박했다고 한다. 가계부채는 국민 개인들이 진 빚이고, 국가부채는 국가가 진 빚이다. 걱정스러운 것은 각 부채가 계속 급증한다는 사실이다.

    경제에서 흔히들 소비가 미덕이라고 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소득과 지출의 균형이다. 개인이든 국가든 경제 원리는 같다. 가계의 빚은 가정에 부담을 지우는 것과 같이, 국가의 빚은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부담을 지운다. 경제구조가 빚으로 움직이고 빚으로 잘산다면, 그것은 모래성에 사는 것은 아닌가. 더욱이 소득과 빚의 균형이 깨진다면 심각한 문제다. 요즈음 ‘하우스 오브 카드’(House of cards)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신용카드, 즉 빚으로 산 집을 뜻한다. 우스개로 “우리 집 거실은 국민은행 거고, 안방은 신한은행 소유고, 진짜 내 집은 화장실”뿐이라는 말이다. 빚 못 갚으면 파산이다. 국가의 파산은 엄청난 피해를 국민들에게 몰고 온다. 그리스나 아르헨티나, 최근에는 베네수엘라의 사례를 보았다. 국가는 가난해지고, 국민들은 엄청난 고통 속에 빠지는 것을 목격했다.

    대한민국은 6·25전쟁 이후 세계의 최빈국에서 산업화에 성공해서 세계가 놀라는 한강의 기적을 이뤘다. 지금은 세계 11대 규모의 경제다. 가끔 어른들로부터 과거 보릿고개와 같은 가난한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다. 인생을 살아본 사람은 안다. 가난을 벗어나 잘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가난했던 국가가 잘사는 국가가 되는 것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기적이라고 부른다. 경제성장은 하루아침에 안 된다. 우리는 70년의 세월이 걸렸다. 다음 세대는 대한민국이 얼마나 치열한 과정을 겪고 오늘을 이뤘는지 쉽게 잊을 수 있다. 그래서 옛말에 부자가 3대 가기 어렵다고 했는가.

    역사적으로 서구문명의 근간을 이룬 그리스의 찬란한 사상과 문화가 꽃필 수 있었던 것은 그리스 반도의 해상무역에서 비롯된 경제적 풍요 때문이었다. 한 시대의 문명은 경제가 바탕이 될 때 가능하다. 경제적 안정과 성장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제가 실패하면 국가 전체는 무너진다. 로마가 그랬다. 로마 멸망의 내부적 원인은 결국 경제를 붕괴시켰다. 경제는 인간 삶의 가장 기본적 토대다. 우리가 이룬 경제를 지키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가. 부를 잃고 후회하는 것은 소용없다. 가진 부를 소중히 여기고 겸허한 자세로 사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다.

    21세기의 산업구조는 과거와 다르다. 과거 산업화 시대처럼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되는 일은 아니다. 지금은 고도의 오랜 축적된 기술을 요구하는 기술집약적 산업이기 때문에 한 번 무너지면 회복하기가 어렵다. 새해 아침에 너무 무거운 말인가. 경제는 마음이다. 주자의 부불검용빈후회(富不儉用貧後悔)는 지금도 살아 있다.

    이경민(진해희망의집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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