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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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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나무꾼과 선녀의 부부 갈등- 이인경(인제대 교수)

  • 기사입력 : 2020-01-14 20:2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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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목욕하러 온 선녀의 날개옷을 훔쳐 장가들게 된 나무꾼의 이야기에는 여러 버전의 결말이 있다. 선녀가 두 아이를 데리고 천상으로 올라가고 지상에 홀로 남겨진 나무꾼이 외롭게 죽었다거나, 나무꾼이 두레박을 타고 천상으로 올라가 선녀와 재회해서 잘 살았는데 지상의 어머니를 만나러 내려왔다가 되돌아가지 못하고 수탉이 되어 죽고 말았다는 비극적 결말이 흔하다.

    이런 비극이 왜 일어났을까? 이들의 결혼생활이 배우자를 향한 소통, 공감, 배려가 빠진 채 출발했기 때문이다. 날개옷을 숨김으로써 선녀를 유괴한 나무꾼의 약탈혼은 그 시작부터 매우 이기적이었다. 사슴 역시 목숨을 구해준 나무꾼에 대한 보은을 자신의 희생이 아닌 애꿎은 선녀의 희생으로 대신하였다. 낯선 지상세계에 남겨져 강제로 아이 낳고 노동하며 살게 된 선녀의 입장에서, 사슴이나 나무꾼은 자신을 기만한 악한들이었을 것이다. 날개옷을 되찾은 선녀는 미련 없이 나무꾼을 버리고 승천한다. 그러나 천상에까지 쫓아온 나무꾼을 선녀는 다시 받아주는데, 아이들이 다시 만난 아빠를 무척 반가워했기 때문이다. 남편을 향한 배신감보다는 선녀의 모성애가 강렬했던 것이다. 한편, 어머니를 만나러 땅으로 내려온 나무꾼은 어머니가 끓여준 뜨거운 팥죽을 먹다가 천마를 놓쳐서 천상으로 되돌아가지 못하고 수탉이 되어 하늘을 향해 울다가 죽고 만다. 나무꾼은 결국 어머니에게도 큰 불효를 저지른 셈이다.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는 날개옷을 주지 말라’라고 사슴은 신신당부한다. 왜일까? 학생들의 대답은 대개 이렇다 “애가 세 명이면 두 손으로 안고 가기도 어렵고 너무 무거워서 하늘로 날아오를 수 없으니까요.” 내 생각은 이렇다. 셋은 옛이야기에서 관습적으로 ‘많다’거나 ‘충분하다’는 뜻으로 사용된다. 부부가 많은 자녀를 낳고 양육하려면 매우 긴 세월이 필요하다. 성장 배경과 문화적 배경이 서로 너무도 달랐던 선녀와 나무꾼 부부에게는 배우자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끈끈한 애정을 키워갈 충분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그렇게 긴 세월을 함께하며 양육해온 자녀의 수가 많을수록 부부에게는 더욱 강한 유대감과 자식을 향한 책임감이 생겨난다는 점이다.

    이인경(인제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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