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20일 (토)
전체메뉴

[가고파] 봄은 오건만- 이종훈(정치부장)

  • 기사입력 : 2020-02-02 20:33:31
  •   
  • 옛 선비들은 추위를 이겨내기 위해 ‘구구소한도(九九消寒圖)’를 그렸다고 한다. 일 년 중 밤이 가장 긴 동지가 되면 꽃봉오리 여든한 개가 달린 매화나무를 그려 창문에 붙여놓고 하루 한 송이씩 붉게 칠했다. 9일마다 추위가 덜해지며 이를 아홉 번 반복하면 봄이 온다는 믿음이 담긴 81송이의 매화를 그리면서 겨울을 나곤 했다. 꽃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절기상으로는 경칩과 춘분의 중간쯤인데 창문을 열면 진짜 매화가 붉게 피어올라 있었다.

    ▼구구소한도는 문자로도 그린다. ‘정전수유진중대춘풍(亭前垂柳珍重待春風)’은 각 9획의 글자 9개로 되어있다. 매일 글자를 한 획씩만 그리면 한 자를 그리는데 9일이 지나간다. 또 다른 구구소한도는 아홉 개의 네모 칸이 있고 네모 칸의 하나하나에는 각각 아홉 송이의 매화가 그려져 있다. 흐린 날은 매화 위쪽을, 맑은 날은 아래쪽을, 바람 부는 날에는 왼쪽을, 비가 오는 날에는 오른쪽을, 눈이 오는 날에는 한가운데를 칠하면서 81일 동안 날씨가 기록돼 영농 자료로 많이 활용했다고 한다.

    ▼봄은 단 한 번도 시간을 어긴 적 없이 저절로 우리 곁에 다가오는데, 손가락 꼽으며 봄을 기다리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가 보다. 벌써 도심 공원 목련꽃 봉오리가 ‘뭉클’하면서 봄 소식을 전하고 있다. 달력도 내일이 입춘이라고 따스한 미소를 보낸다. 세상은 시끄럽고 하루하루가 어려운데 어김없이 계절은 바뀌고 또 봄은 찾아온다. 봄의 전령사라고 하는 복수초는 피었고, 곧 산수유 등 다른 봄꽃들도 만발할 것이다.

    ▼붓을 들어 지금부터라도 ‘구구소한도’를 그려볼까. 서민들 ‘생활 기상도’에는 하루라도 맑은 날이 있을까 싶다. ‘정치 기상도’를 살펴봐도 매화 아래쪽에 색칠할 수 있는 날이 없을 것 같다. 정치권은 여전히 제 살길만 찾고 있고, 경기는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서민 속도 모르고 꽃망울 펑펑 터뜨릴 거 생각하니 야속하기만 하다. 구구소한도에 마침표를 찍는 4월 그때쯤이면 웃음꽃 활짝 핀 세상을 만날 수 있을까.

    이종훈(정치부장)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이종훈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