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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6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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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시론] 소설 ‘페스트’와 다큐 ‘코로나’- 정일근(시인·경남대 석좌교수)

  • 기사입력 : 2020-02-04 20:3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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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으로 한반도가 바짝 움츠러들고 있습니다. 봄이 고샅길을 돌아 발밤발밤 걸어오다 깜짝 놀라 뚝, 멈춰 선 것 같습니다. 흔한 비유가 되어버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해마다 되풀이되는 악몽 같아 두렵습니다. 올해는 봄을 아예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서둘러 봄꽃들이 피어난 것도 오늘의 일을 예감한 것은 아닌지요. 그대, 우울한 봄입니다. 불안한 봄입니다. 살아내기가 힘든 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새삼, 알제리 출신의 프랑스 소설가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알베르 카뮈(1913~1960)가 1947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페스트’(La peste)를 꼼꼼하게 읽어보게 되는 시간입니다. 페스트는 우리에게 ‘흑사병’으로 잘 알려진 병이지요. 쥐를 숙주로 하여 중세시대에 유행하였던 이 페스트는 유럽의 참혹한 재앙이었습니다.

    이 감염성 전염병으로 1347~1351년 사이 약 3년 동안 2000만 명에 이르는 희생자가 나왔습니다. 14세기에는 흑사병이, 21세기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세계를 위협에 빠트리고 있습니다. 되풀이되는 바이러스 재앙에 우리는 속수무책인 것 같습니다. 저는 소설 ‘페스트’를 통해 우리가 이 위기에서 잃지 말아야 하는 것을 배웁니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는 알제리 도시 오랑을 덮치면서 10개월 동안 그 도시 사람들이 겪는 사투를, 그의 소설에 담았습니다. 페스트라는 ‘절망적인 운명에 반항하며 공동 투쟁을 벌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알베르 카뮈의 소설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보여주는 ‘지금 그리고 여기’ 21세기를 사는 우리의 모습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소설은 도시 오랑에 페스트가 창궐하자 이를 구제하기 위해 분투하는 시민들의 모습을 그렸습니다. 절망 앞에 포기하지 않는 ‘인간성’에 대한 희망을 표현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오늘, 이번 사태로 우리가 만드는 자화상은 여러 곳에서 굴절되고 있습니다. 신종 코로나의 발병지인 중국 후베성이과 우한(武漢)의 현실은, 날마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지만, 세계는 자국 국민을 위해 문을 폐쇄하고 있습니다. 거대한 대륙인 중국은, 중국 국민은 비상구조차 없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카뮈의 소설이 가르쳐 준 교훈은 ‘인간애’이지만, 21세기에 보여주는 다큐 ‘코로나’는 인류애가 사라진 ‘잔혹한 생존기’로 명명될 것입니다. 우한 교민이 귀국할 때 아산과 진천이 처음 보여준 적대감은 원죄로 기록될 것입니다. 지금은 우호적인 자세로 변했다고 하지만, 우리 가슴속에 숨어 있는 이기심은 불편한 진실로 존재할 것입니다.

    또한 자가 격리와 검사와 치료가 우선인 환자가 지역사회의 여러 곳을 활개치며 돌아다닌 일이, 슈퍼 전달자로 밝혀질 경우 지탄의 주인공이 될 것입니다. 이 다큐 속에도 선과 악의 주인공은 존재합니다. 방역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헌신하는 분들이 선(善)의 주인공입니다. 자신보다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헌신하고 희생하신 분들도 주인공으로 이름 될 것입니다.

    소설 페스트와 다큐 코로나에는 같은 비극이 숨어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전염병은 모두 중국이 첫 발생지라는 것입니다.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흑사병은, 중앙아시아 타슈켄트 지역을 휩쓸고 흑해와 크림반도를 거쳐 이탈리아에 도달, 유럽 전역으로 전파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중국은 지난해 4명의 흑사병 환자가 발생했습니다. 중국은 쉬쉬하기만 했습니다. 사라진 전염병인 흑사병의 발병 속에 코로나의 발생이 예견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방역은 국제적인 연대로 진화해야 하며, 세계적인 공동감시가 필요하게 됐습니다. 후베이성 공포에, 봄이면 매화 소식을 빼곡하게 전하던 중국 인민일보는, 후베이성 ‘이창(宜昌) 매화’ 사진 한 장만 게재했습니다. 그것이 희망의 메시지이길 기대합니다.

    정일근(시인·경남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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