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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8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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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 트럭에 실려가다- 정선호

  • 기사입력 : 2020-02-06 08: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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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도 좀 낫겠다

    이 봄날 트럭에 실려가고 있으니

    매화는 너의 가는 길 환하게 비추고

    개나리는 너의 살점처럼 피기도 하고

    네 무덤을 덮고도 있으니

    모든 초봄의 꽃들 받아가거라

    저승으로 가는 길 침묵하지만 말고

    실컷 하고픈 말 뱉으며 떠나거라

    길에 뿌려진 꽃들 사뿐히 밟아라

    먼저 간 너의 육신을 먹은 사람들

    좀 늦게 네가 가는 길 갈 뿐

    이 세상은 뉘 먼저랄 것도 없이

    온통 죽음을 기다리는 것들뿐이니

    천천히 식욕으로 가득 찬 세상을

    기쁘게 감사해하며 떠나거라


    ☞ 국제연합 식량농업기구의 2019년도 보고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8억명 이상의 인구가 기아(飢餓)에 시달리고 있고, 1초에 5명꼴로 어린이가 굶어죽어 간다고 한다. 모순(矛盾)되게도 매화가 환하게 피고 개나리가 흐드러진 봄날, 시인은 트럭에 실려 가는 돼지들을 바라보고 ‘먼저 간 너의 육신을 먹은 사람들 좀 늦게 네가 가는 길 갈 뿐’이라며 식욕으로 가득 찬 세상을 미안해하며 돼지의 영혼을 위로하고 달래는 노래를 부른다. 비록 귀에 들리지는 않지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봄꽃들의 환송(歡送)을 받으며 죽음이 아깝지 않도록 떠나라고 말한다. 사람들의 식욕을 위해 팔려가는 돼지라는 미물(微物)의 죽음까지 ‘생명’이라는 연장선상(延長線上)을 읽어내는 시인의 마음이 따뜻하다. 강신형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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