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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장유유서가 그립다- 김미숙(시와시학 회장)

  • 기사입력 : 2020-02-10 20:3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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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런 말 하면 ‘꼰대’라고 할 게 분명하지만 나는 전혀 기분 나쁘지 않다. 나 꼰대 맞다. 요새 꼰대라는 말이 혐오 단어로 읽히는 것도 뭔가 비틀린 원인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험으로 안 것들을 아직 경험 부족인 젊은이들에게 조금 나눠주겠다는 게 꼰대라면 나 분명 꼰대다. 꼰대가 뭐? 듣기 싫으면 안 들으면 그뿐이다.

    요즘 나이깨나 좀 든 사람들은 젊은이들의 ‘꼰대’라는 말을 질색한다. 낙인찍듯 말하는 그 어감과 뉘앙스를 겁내서 할 말 못하는 어른들도 많다. 솔직히 내 생각은 다르다. 이 나이 들어서도 꼰대 소리 못 듣는다면 그게 더 문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잇값’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꼰대의 사전적 의미는 (1)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先生)’을 이르는 말. (2) 학생들의 은어로, ‘아버지’를 이르는 말. (3)학생들의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이다. 어원을 찾아보면, ‘꼰대’는 번데기의 영남지역 사투리인 ‘꼰대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다. 주름이 많은 것을 비유로 노인을 가리키기도 하고,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는 말처럼 아는 체하면서 자꾸 가르치려는 사람이라는 뜻도 된다. 근래에는 자기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을 타인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꼰대질’을 하는 직장 상사나 나이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의미가 변형된 속어라고 되어 있다.

    따지고 보면 꼰대라는 말에는, 가르치려는 잔소리가 듣기 싫은 젊은이들의 반발 심리도 들어있다. 개성 강하고 자신이 알만큼은 다 안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 새로운 시대에 꼰대들의 낡은 지식 따위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요즘 젊은이들. 그러나 정말 그런가.

    꼰대를 어른으로 공경하던 예전의 사회는 지금과는 많이 다른 모습 아니었던가. 우선 장유유서의 질서가 존재했다. 아버지를, 선생님을, 형님을, 선배를 공경하면서 공손하게 대하다 보면 시간이 흘러 자신이 그런 대접을 받는 위치에 있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런 질서에는 폭력성이 배제된다. 폭력이 끼어들 틈이 없기 때문이다. 요즘은 위아래도 없고 무시로 폭언과 폭력과 저질스런 언어가 난무한다. 어른을 꼰대로 몰아붙이는 가운데 꼰대가 되기 싫은 어른들은 자취를 감추거나 현실에 눈을 감았다. 그 와중에 기존의 아름다운 질서는 붕괴되고 말았다. 요즘에는 어른스럽게 훈계하거나 가르치려 하면 젊은이들로부터 욕설이나 주먹질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어른이 입을 다물어서 우리 사회가 얻은 것은 무엇인가. 질서가 무너지면서 정치가 시끄러워지고, 교육이 소란스러워지고, 사회 전체가 이성을 유지하지 못해 감정적으로 내닫는 것이 내가 보는 현실이다. 요즘 들어 장유유서가 더 그립다. 장유유서는 그저 어른을 공경하는 것만이 아니다. 공동체가 선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떤 질서가 필요한지 경험을 통해 체득한 지혜를 다음 세대로 전달해주는 것이다. 이런 말이 꼰대의 말이라고 손가락질한다면 하라! 나는 즐거이 꼰대가 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쓰다가 말미에 확인하기 위해 다시 찾아보니 아차, 꼰대는 나이 많은 남자를 가리키는 말이라 되어 있다. 나는 여자다. 꼰대는 절대 될 수 없다. 나 역시 꼰대보다는 어른이 되고 싶다. 어른스러운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나를 꼰대라 부르는 젊은이가 있다면 정중하게 가르쳐주고 싶다. 여성은 꼰대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것을. 젊은이들이 모르거나 틀릴 때는 가르쳐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다만 잔소리가 아닌 진심과 정중함으로.

    김미숙(시와시학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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