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8일 (목)
전체메뉴

[가고파] 유머니즘- 조고운(사회부 기자)

  • 기사입력 : 2020-02-11 20:24:37
  •   
  • 그는 유머러스하기까지 했다. 영화 ‘기생충’으로 전 세계 영화계를 휩쓴 봉준호 감독 이야기다. 2020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네 차례나 시상대에 오른 그는 매번 재치 넘치는 수상 소감으로 세계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오스카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잘라서 (함께 후보에 오른 감독들과) 5개로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오늘 밤은 술 마실 준비가 돼 있다. 내일 아침까지 말이다” 등 시상식대에서 보여준 그의 유머는 그의 영화만큼이나 품격 높았다.

    ▼유머는 상대의 마음을 얻는 가장 확실한 도구다. 재치 있는 말 한마디는 어색한 분위기를 유연하게 만들고, 불편하거나 어려운 관계도 무장해제시키는 힘이 있다. 영화 ‘기생충’에서 유머 코드가 빠졌다면, 봉 감독이 시상식에서 상투적인 감사 인사만 전했다면 어땠을까. 좋은 작품과 감독이라는 평가는 받았을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전 세계 영화팬들이 감동하고 열광하진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유머 있는 사람을 선망한다. 그러나 유머를 잘 구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상황에 적절한 유머는 분위기를 반짝이게 하지만, 맥락에서 조금만 엇나가도 어색하고 민망해지기 일쑤다. 하물며 상대방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다. 남을 조롱하거나 비하하는 막말, 그리고 일방적인 아재개그도 유머의 나쁜 예다. 남을 화나게 하거나 감동을 시키는 일보다 웃기는 일이 더 어렵다는 이야기에 절감할 수밖에 없다.

    ▼좋은 유머란 무엇일까. 책 ‘유머니즘’에서는 “유머는 스킬이 아니다”고 말한다. 저자는 “유머란 자신을 상대화할 수 있는 용기, 주어진 상황을 낯설게 바라보는 관점, 타인의 마음을 섬세하게 읽어내고 그 움직임을 포착하는 직관”이라고 정의한다. 이 문장에서 봉 감독과 그의 영화가 떠오른다. 오늘 우리는 봉 감독을 계기로 어떻게 더 나아질 수 있을까. 그 답을 유머와 휴머니즘을 합한 신조어, ‘유머니즘’에서 고민해 본다.

    조고운(사회부 기자)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조고운 기자의 다른기사 검색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