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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봉테일- 김희진(정치부 기자)

  • 기사입력 : 2020-02-12 20:3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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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에 오르며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고 있다. 기생충에는 알 듯 말 듯한 장치가 몇 가지 숨어 있다. 반지하에 사는 기택네 집과 그 주변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재개발지역에 버려진 문과 창문, 방충망, 그릇 등을 주워 와서 소품으로 사용했고, 삼겹살을 구워 기름때를 입혔는가 하면, 부잣집인 연교네에는 2300달러짜리 독일제 휴지통을 갖다 놓았다.

    ▼영화 속 디테일은 봉준호 감독의 머리에서 만들어졌다. 그런 그에겐 ‘봉테일(Bongtail)’이란 별명이 있는데 그의 성 ‘봉(Bong)’에 ‘자세하다’는 뜻의 디테일(detail)을 붙인 말이다. 영화 살인의추억 미술·연출팀이 그의 유별난 세심함에 붙인 원망 섞인 경외심의 표현이다. 영화 속에서 형사 서태윤이 여중생에게 붙여주는 반창고를 1980년대 품질로 보이게 하려고 일부러 뗐다 붙였다를 반복했다거나 형사 박두만이 쓰는 수첩에 농협 로고가 찍혀 있다는 설정 등이 그 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필수품처럼 사용하는 아이폰도 알고 보면 디테일의 결정체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도 디테일하기로는 손꼽히는데, 그는 눈에 보이지 않는 내부 회로 배선까지 꼼꼼하게 챙기고 윈도우 창 디자인만 20여 차례 고치게 하면서 매킨토시 컴퓨터 개발에 3년을 썼다. 작은 것도 소홀히 하지 않은 덕분에 그는 혁신의 대명사가 됐고 유저들은 애플 제품을 사용한다는 자부심을 숨기지 않는다.

    ▼정작 봉테일 자신은 그 별명을 좋아하지 않는단다. 왠지 쪼잔해 보이고, 영화 전체보다 장면 하나하나가 얼마나 디테일한가 하는 것에 관심이 집중될 것 같아서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안다. 오스카를 손에 쥔 봉준호를 만든 게 바로 봉테일의 면모 때문이라는 것을 말이다. 현실에서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사회 분위기 탓에 하나하나 따지고 꼼꼼하게 챙기는 사람이 때로 눈총을 받기도 하지만, 봉 감독이 그랬듯이 각자 일에 충실하려면 디테일이야말로 결코 놓쳐서는 안 될 요소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김희진(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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