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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뒷맛] '짜파구리·우짜'…왜 한국인은 섞어먹는 걸 좋아할까

  • 기사입력 : 2020-02-15 10: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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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줌마, 짜파구리 할 줄 알죠?" "짜파구리요?"

    한국을 넘어 세계인의 영화가 된 '기생충'의 한 장면이다.

    부잣집 사모님 연교는 가정부 충숙에게 당연히 이 정도는 알 거라는 투로 '짜파구리'라는 음식을 끓여낼 것을 주문한다. 그러나 충숙은 금시초문인 듯 허둥지둥한다.

    충숙이 짜파구리를 생소해한 이유는 인스턴트 짜장면 '짜파게티'와 라면인 '너구리'라는 두 가지 완제품을 섞어서 조리하는 신개념 음식이기 때문이었던 듯하다.

    휴대전화로 레시피를 찾아가며 다급히 만들어낸 한우 채끝살을 올린 짜파구리가 영화의 대성공과 함께 높은 관심을 끌고 있다.

    기생충 우리말 대사를 영어로 번역한 달시 파켓은 짜파구리를 라면과 우동을 합친 '람동(ramdong)'으로 표현해 탁월한 어휘 감각이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서구인에게 생소한 짜파게티, 너구리 같은 고유명사보다 잘 알려진 라면, 우동이라는 일반명사를 조합해서 두 가지 음식의 찰진 결합을 표현한 것.

    영화 속 디테일을 중요시하는 것으로 알려진 '봉테일' 봉준호 감독은 충숙이 짜파구리 만드는 법을 찾아보는 장면에서 그의 휴대전화 화면에 뜨는 레시피 블로그를 실제로 만들어 두었고 해당 블로그는 아직 존재한다.

    '왕(王) 선생의 특제 짜파구리'라는 제목의 글 하나만 등록된 이 블로그(왕선생의 MSG Cooking[http://blog.daum.net/o_dok])에 따르면 짜파구리는 짜파게티와 너구리 면을 함께 삶고, 볶은 채소에 두 가지 스프를 동시에 투하해 양념을 만든다.

    농심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주목받고 있는 영화 속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의 조리법을 11개 언어로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게재했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짜파구리 조리법 영상. [농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농심이 영화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을 계기로 주목받고 있는 영화 속 '짜파구리'(짜파게티+너구리)의 조리법을 11개 언어로 소개하는 유튜브 영상을 게재했다고 11일 밝혔다. 사진은 짜파구리 조리법 영상. [농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연합뉴스

    블로그 글쓴이가 셰프의 '킥'이자 화룡점정이라고 강조한 채 썬 오이를 올리면 인스턴트 짜장면 특유의 달콤한 맛과 라면의 매콤함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소위 '단짠' 매력의 짜파구리가 완성된다.

    기생충 성공에 따른 짜파구리 붐으로 반사이익을 얻게 된 농심에 따르면 짜파구리는 2009년 한 블로거가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끓인 내용을 올려 누리꾼 화제를 모으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짜장면과 라면이라는 유사하면서도 다른 음식을 섞어 제3의 음식으로 재탄생시킨 것으로 우리 식문화에서 유사한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카르보나라라고 하는 계란 노른자 또는 유크림을 바탕으로 한 이탈리아 소스와 입에 불이 나게 매운 한국식 고추 분말을 섞은 삼양식품의 '까르보불닭 볶음면'도 이와 비슷한 발상의 하나.

    또 주류 분야에선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마시는 '소맥', 백세주와 소주를 섞은 '오십세주'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짜파구리가 화제를 모으자 농심 제품 버전이 아닌 삼양의 짜짜로니와 오뚜기의 오동통면으로 만든 '짜동통'도 등장했다. 짜짜로니 대신 오뚜기 진짜장을 쓴다는 사람도 있다.

    음식평론가 황교익씨는 자신의 SNS에 "경남 통영 시장 할머니들이 오래전에 짜장면+우동의 융합, 즉 '우짜'를 시도했고 지금도 인기리에 팔리고 있다"면서 "'통영 원조 짜파구리'라는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라고 말했다.

    이같은 '1+1' 조합은 비빔밥이 나라를 대표하는 요리로 꼽히고, 섞어찌개라는 음식이 하나의 메뉴로 존재하는 한식 문화의 일면으로 풀이된다.

    외국 음식 문화에서도 '퓨전'이라는 이름으로 각기 다른 음식이 서로에 영향을 미치는 일은 있지만 두 가지 음식을 섞어서 즐기는 것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김치 타파스'처럼 아시아 재료를 서양식 조리법에 접목한다거나 바게트에 피시 소스와 고수 등을 넣는 베트남식 샌드위치 '반미'처럼 재료나 조리법을 빌려와 활용하는 경우는 많아도 짜파구리처럼 서로 다른 두 가지의 화학적 결합을 시도하는 경우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렵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비빔밥 문화를 가진 한국인의 디엔에이(DNA)가 섞는 데 능숙한 것 같은데 이는 '기생충'의 흥행요소와도 맞닿아 있다"며 "동서양 경계가 허물어지고 개개인의 기호에 상품을 맞추는 지금 융합이나 하이브리드라는 시대 정신이 통한 것이 바로 '기생충'이고 짜파구리"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기생충' 개봉 당시 짜파게티와 너구리를 섞어 조리하고 한우구이를 올린 짜파구리가 계층 문제를 음식에 빗댄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놨다.

    이와 관련, 봉 감독은 지난해 10월 미국 LA에서 열린 '기생충' 시사회에서 "과하게 해석해서 짜파구리에서 아래에 뒤섞인 두 면발은 가난한 지하 두 가족을, 위의 설로인(등심) 토핑은 부자 가족을 비유한다는 풀이까지 블로그에 나와 있던데 솔직히 난 그런 것까지는 몰랐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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