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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나에게 시간은?- 이경옥(창원여성살림공동체 대표)

  • 기사입력 : 2020-02-19 20:2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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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은 상대적이다. 하루는 해가 뜨고 지고를 기준으로 24시간으로 나누고 365일이면 1년이 된다. 흔히 가장 공평한 것이 시간이라고 하지만 각자 공평하지 않기도 하다. 10, 20대 젊었을 때의 시간은 하루가 참 길었다. 지루한 시간들이 넘치고 할 일은 없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학교도 다녀 바빴지만 왜 그런지 늘 지루한 시간이 많았다. 하루하루가 재미있기를, 흥미진진하기를 바랐으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고 무력감이 몰려왔다. 나의 포지션, 정체성, 삶의 목표를 설정하기에는 벽들이 너무 많았다. 늘 정리되지 않은 혼란한 상태였다.

    뿌리 없이 부유하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몸과 마음의 여유도 없었지만 물적 토대의 취약함과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가한 통제와 억압, 부당한 조건들에 억눌려 근근이 살았다. 이러한 현실이 너무 지루했고 잠시나마 도피성의 재미를 추구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세상에 혁명이라도 일어나 이런 세상이 확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도 했다.

    시간이 엄청 많았던 20대를 지나 30대 결혼과 출산, 육아 때문에 시간은 혼란 그 자체였다. 아이들이 언제 클까, 여유 있는 미래가 나에게 올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하면서 살았다. 직장일과 육아로 시간은 분 단위로 쪼개서 시간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빨리 지나갔지만, 미래에 다가올 시간은 너무 길었다.

    육아에서 약간 벗어난 30대 말쯤 명예퇴직이란 이름의 정리해고 이후 물리적인 시간이 늘어났다. 이때부터 여성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20대 중반부터 여성운동을 하면서 삶의 목표를 정하고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었다. 돌이켜 보면 부족한 점도 있었고, 스스로는 성찰하지 못한 채 타인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했다. 지금도 그런 잘못을 저지르기도 한다. 하지만 늘 성찰하는 삶을, 부족함을 알고 배우기를 멈추지 않고 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이 본질이고 정답이라고 확신하고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이들을 비난하면서 심판관 역할을 하는 그 순간, 우리는 성장을 멈추고 꼰대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여성들과 함께 나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하면서 오랜 기간 여성운동을 해 오고 있는 나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또한 정의와 평등, 자유를 위해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다는 것은 축복받은 삶이다.

    시간은 인간들의 편의성을 위해 약속에 의해 정해진 것이다. 존재하는 자의 시간들은 또한 각자 다르다. 한 개인의 삶 속에서도 자신의 시간은 상황과 생애주기, 관심에 따라 다르게 흘러간다. ‘언제나 올까’라고 상상만 했던 50대가 서서히 지나가고 있다. 10, 20대처럼 양적인 시간은 많지만 1년은 쏜살같이 달려간다. 모든 살아있는 생물들의 시간은 유한하다. 인간 또한 출생에서 죽음까지 유한한 삶을 살아간다. 젊었을 때는 시간이 무한한 것 같았고 죽음을 생각하지 않고 육체가 영원히 살 것 같이 살았다. ‘나이듦’이란 생명이라는 시간의 유한성을 절실하게 느끼는 시기이다. 육체적 쇠약함이나 체력적 한계를 느끼면서 아쉬움을 받아들이는 시기이다.

    이제는 물리적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그렇지만 상대적 시간은 무한정 남아 있다. 결국 시간은 인간이 만든 물리적이고 절대적 시간을 얼마를 살든지 간에 무한하고 영원한 시간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창조적으로 만들 수 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이 자신의 삶을 살 수 있고 영원한 시간 속으로 뛰어들 수 있는 시간이다.

    이경옥(창원여성살림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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