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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74주년 특집] 촌으로 간 청춘 ‘판타지 촌라이프’

남해 두모마을 유지황 팜프라 대표
집 짓고 농사 짓고 ‘같이의 가치’ 싹 틔우는 청춘

  • 기사입력 : 2020-03-01 21: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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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년들이 경남의 한적한 시골마을로 모인다. 그들은 자신이 살 집을 스스로 만들고 누군가의 땅을 빌려 농사를 짓는다. 어떤 이는 닭을 키워도 보고 또 어떤 이는 작은 공방을 마련했다. 마을 당산제에 참여하며 어르신들로부터 마을 전통을 배우고, 마을 농사를 돕고 또 마을 어르신들의 도움으로 한 해 농사를 완성한다. 쓰다 보니 장르가 판타지인가 싶다. 지은이는 청년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골머리를 앓는 경남의 한 군청 인구 담당 공무원쯤 되겠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판타지 소설이 아니다. 남해에서도 남쪽 끝, 화려한 관광지를 지나치고 산길을 달려 다시 다랑이 논밭을 끼고 바다와 맞닿은 땅으로 내려가면 만나는 마을, 그곳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는 이야기다. 이 환상적인 이야기의 시작에는 평등한 삶을 위한 변화를 꿈꾸던 한 청년이 있다. 남해 두모마을 팜프라 대표인 유지황(34)씨다.


    유지황 팜프라 대표가 남해 두모마을 팜프라촌에서 이동식 목조주택 코부기의 한 형태인 유리온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유지황 팜프라 대표가 남해 두모마을 팜프라촌에서 이동식 목조주택 코부기의 한 형태인 유리온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김승권 기자/

    ◇불평등을 고민하던 청년, 농사를 짓다

    그에게 ‘촌라이프’ 출발점에 대해 묻자 불평등과 삶의 이유, 사회 시스템에 대한 고민이라는 심오한 답을 내놨다.

    “23살 이집트로 떠난 여행에서 차 밑에서 생활하는 어린아이를 만났습니다. 그때부터 불평등에 대한 고민을 했던 거 같아요. 어떠한 기준으로 인해 삶의 모습이 이렇게까지 나뉘는가에 대한 고민. 이전에는 개인적으로 삶에 대한 고민도 많았어요. 삶의 이유를 스스로 계속 찾고 있었죠. 고민하며 다양한 삶과 세상을 들여다보니 그 어린아이의 삶도, 나의 내부적인 고민도 결국 문제는 사회적인 시스템에 있더군요.”

    불평등한 삶을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새로운 사회 시스템을 고민하는 것, 그 시작은 농사였다. 기아나 가난,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식, 주, 학이 필요하다는 결론에서 나온 계획이었다.

    26살 지황씨는 먼저 고향 통영에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대략 10가지 품종으로 한 해 농사를 지었더니 이내 땅주인은 나가달라고 했다. 청년은 버틸 재간이 없었다. 다시 농사를 시작하고 싶어도 땅이 없는 청년은 발 디딜 곳이 없었다. 당시는 농사를 짓고자 하는 이를 위한 지원이 전무하던 시절, 도저히 길을 찾을 수 없던 청년은 일단 이 땅을 벗어난다.

    “일본에 2주 정도 머물렀어요. 농촌, 인구감소, 청년 등에 대한 고민을 일본은 앞서 시작했고 이미 그 답을 찾아 나아가던 중이었어요. 농촌에 살기만 해도 약 100만원의 정착지원금을 줬죠. 일단 당장 생활이 해결되니 그곳 청년들은 농사를 돕거나 소일을 하며 자신만의 길을 찾고 있었습니다. 당시 일본은 청년에 지원과 투자를 해야 향후 그 청년들이 40~50대 경제 주체가 됐을때 위·아래 세대를 책임질수 있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죠. 청년들의 고민과 좌절이 결코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요.”

    지난해 9월 코부기 4호 워크숍을 통해 지어진 목조주택 앞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해 9월 코부기 4호 워크숍을 통해 지어진 목조주택 앞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위대한 프로젝트 팜프라의 시작

    유럽, 동남아 국가 등을 돌며 농사에 대한 시야를 넓혔고 농사 관련 서적은 안 읽은 것이 없었다. 이후 돌아온 경남, 다시 농사를 시작해 보려 해도 상황은 여의치 않았다. 농사를 짓겠다며 관공서를 찾고 전문가를 만나도 누구 하나 답을 내놓지 못했다. 더 이상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으니 스스로 길을 개척해보자는 결심이 섰고 그 시작은 집 짓기였다.

    청년들의 고민은 도시에서도, 농촌에서도 ‘집’이었다. 집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정착이라는 게 사실상 불가능했다. 지황씨는 진주 정촌면에서 청년 스스로 집을 짓는 ‘코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자신의 집을 등에 이고 다니는 거북이처럼 청년들이 어디서든 생활할 수 있는 이동식 주택을 만들었다.

    “팜프라촌을 계획하면서 먼저 코부기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농촌정착 1번 과제가 집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진주에서 뜻을 같이한 친구들과 집을 지으면서 팜프라촌을 꾸릴 곳을 찾았어요. 그 과정에서 몇 번을 쫓겨났죠.”

    팜프라촌은 결국 지난해 남해에 정착했다. 경남에 남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정착지를 찾지 못해 고민하던 중 경북 의성군에서는 러브콜까지 왔다. 의성군 내 거주지역까지 결정했지만 행정 절차가 지연되는 동안 경남에 남아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그간 활동을 지켜봤던 분들의 도움이 모여 남해 두모마을 내 폐교에 터를 잡았다.

    “서울 청년청에서 지원을 받아 지난해 8월 팜프라촌 1기가 결성됐고 공동 프로젝트는 집 짓기와 농사 등 활동을 했어요. 남는 시간에는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도록 보장했고요. 너무 많은 것을 과제처럼 해내기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은 찾아가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죠.”

    팜프라 1기 중 일부는 경기도 양평 등 다른 지역에 자리잡았고 또 일부는 마을에 남았다. 또 누군가는 목수가 돼 전국을 누비고 있다.

    결국 팜프라의 목표는 많은 ‘라이프 체인저’를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지황씨는 말한다. 학교에서 사회로 이어지는 기존의 삶의 형태에 익숙해진 청년들이 자신만의 새로운 삶을 고민하고 자신만의 방식을 찾기 위해 여러 변화를 시도하며 결국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 그리고 그 사이 어디쯤에서 일련의 과정과 환경을 제공하면서 변화를 고민하도록 돕는 것, 그게 팜프라가 존재하는 이유다.

    ◇청춘, 남해에 살다

    2월 팜프라촌은 시금치 농사 마무리가 한창이었다. 시금치요리 레시피를 담은 책자와 함께 배송하는 남해시금치는 예상보다 주문량이 많았고 아직 농사가 익숙하지 않은 청년들은 결국 마을 어르신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보통 낮에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저녁 일찍부터 쉬는 어르신들이 밤 늦은 시간까지 청년들을 도왔다. 야간작업 중간에 만들어드린 밤참에 남이 차려준 밥상은 처음이라며 어머님들이 특히 즐거워하셨단다.

    팜프라촌 청년들이 남해 두모마을 어르신들과 시금치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
    팜프라촌 청년들이 남해 두모마을 어르신들과 시금치 수확작업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도시사람에게, 그리고 청춘에게 농촌·농사라는 단어는 너무도 막연한 얘기 같다. 이들의 막연한 두려움과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 지황씨는 ‘통역사’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한다. “문제는 의사소통인 거 같아요. 도시의 청년에게 시골의 말, 특히 경남의 언어는 너무도 어렵죠. 기본적으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다면 그 지역에 녹아들기가 어렵습니다. 경남에서 나고 자란 탓에 상대적으로 제게는 쉬운 언어였고 자연스럽게 농촌과 청년을 잇는 통역사 역할을 하게 된 거 같습니다.”

    ‘촌 사람’ 지황씨에게 촌라이프를 추천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었다. 지황씨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의 폭이 확대됐다고 답했다. “학교에서든 사회에서든 보통 비슷한 환경의 또래를 만나고 관계를 쌓는 게 전부지만 촌에서는 어르신들을 보며 나의 미래를 고민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결혼과 아이에 대한 그림도 그리면서 병원이나 교육 등 열악한 환경을 고민하게 되죠. 그 고민은 현재 어르신들의 불편이기도 하고요.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삶을 바라는 시각이 생긴 거죠.”

    유지황씨가 지난달 18일 경남도청에서 ‘판타지 촌라이프를 위한 팜프라’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유지황씨가 지난달 18일 경남도청에서 ‘판타지 촌라이프를 위한 팜프라’라는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김승권 기자/

    봄이 오면 다시 팜프라는 바빠진다. 올해 두모마을 유채꽃 축제를 위해 남해군과 의견을 나누고 있고, 올해는 시금치 유통망도 확장해 볼 계획이다. 마을 유채꽃을 활용한 화장품 등 제품 개발 계획도 머릿속에 있다.

    “아직은 환경이 열악합니다. 환경 개선에 대한 고민을 하면서 팜프라 운영 사례를 공유하고 또 기록으로 남기려고 해요. 꼭 팜프라라는 이름이 아니라도 청년들이 지역에서 삶의 변화를 시도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시스템이 생기길 바랍니다.”

    이지혜 기자 jh@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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