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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칠십년도 더 됐는데 인자서 뭐할라꼬”- 김영진(경남도의원)

  • 기사입력 : 2020-03-04 20:2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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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마 전 남해의 독립운동가를 찾아서 독일마을 근처를 돌다 만난 한 어르신의 말씀이 귓전에 아프도록 남아 있다. 이 여정은 올 1월 행정기관으로부터 받은 경남의 독립운동가 생가·주거지 안내판 혹은 기념물 설치 현황 자료를 길잡이 삼았는데, 모든 시·군을 돌아야겠다는 생각은 다름 아니라 자료의 허술함 때문이었다.

    우선은 관에서 이런 조사를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데 놀랐고, 둘째는 생가·주거지의 잘잘못 이전에 현황이라고 보내 온 경남 독립운동가가 486명인 점에 혼란스러웠다. 독립유공자와 독립운동가를 구분하지 않고 있는데다 도내 독립유공자 숫자만 해도 1000명이 넘는데 그보다 많아야 할 독립운동가가 486명에 그쳤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자료의 신빙성을 눈으로 확인하겠다는 다짐에 이른 것이다.

    그렇게 해서 지난달 8일은 의령·합천·거창, 13일은 진주·사천·남해, 19일엔 밀양·양산을 돌면서 자료에 나온 생가터와 표지석, 기념물 유무를 일일이 확인했다.

    생가 터가 있다고 한 곳은 버젓이 다른 건물이 서 있었고, 주거지는 밭으로 바뀌어 있고, 표지판은 누군가가 걸린다고 치워버렸다. 분명히 있다고 기록돼 있는데 없는 것이 부지기수다. 틀려도 너무 틀려서일까. 처음에는 사실과 너무 다른 현실에 분개하다가 어느 순간, 이전이야 어떻든 이번에 바로잡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자료 속에 누운 활자가 아니라 ‘사람’을 만났기 때문이리라. 연락도 없이 찾아갔는데도 거창 전사옥 순국선열의 자제분 전재일님, 남해 최봉기 애국지사 따님인 최명순님을 만났다. 짧은 시간에 이야기를 했으면 얼마나 했을까. 그저 습관처럼 흘러나오는 눈물에서, 연신 눈물을 찍어내는 옹이 진 손가락에서 신산한 삶이 그대로 투영됐다. ‘빨갱이 자식’이라고 손가락질 받고 살아온 고된 세월, 아버지 어머니의 삶을 외면할 수도 싸안을 수도 없는 자기부정의 시간들.

    “우리 아버지는 만다꼬 독립운동을 해서 우리를 이리 모질게 살게 했으까예.”

    문재인 대통령은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사라져야 한다”고 했다. 내 나라를 사랑하는 일이 나와 가족을 핍박받게 하고 결국 후손까지 고단하게 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 경남도에서 가장 존경받아야 할 인물로 독립운동가가 제일 첫 줄에 서야 할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독립운동가 면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생가와 주거지 확인이 어렵다면 마을 사람과 그 마을을 오가는 사람이 영예롭고 존경할 수 있도록 도로 표지판과 이정표라도 설치돼야 한다.

    남해 방문 때 생가 터도 후손도 찾지 못해 망연자실 서 있었더니 그 어르신이 말씀 하셨다. “칠십 년도 더 됐는데, 인자서 뭐할라꼬.”

    그렇다. 늦어도 너무 늦었다. 내가 그곳을 찾은 것도 너무 늦었고, 경남도도 늦었다. 그리고 언제 시작해도 늦다. 그러니 이제라도 시작해야 한다. 그날은 제대로 답을 못했지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나라도, 지금이라도 시작하겠다고. 우선은 ‘기록’부터 말이다.

    김영진(경남도의원)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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