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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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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배 불법 개조 ‘고출력 엔진’이 발단

기선권현망 엔진출력 350마력 제한
고출력 엔진 편법 장착해 조업 활동
어민 “엔진 봉인 관리 제대로 안돼”

  • 기사입력 : 2020-03-08 21: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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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속보= 경남도가 일부 멸치잡이 배들의 불법 개조에 대해 사실 확인에 나섰지만 정작 불법개조의 원인인 고출력 엔진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어민들은 모든 문제의 발단이 고출력 엔진 편법장착인 만큼 이에 대한 강력한 조치가 선행돼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5일 7면 ▲남해안 멸치잡이배 불법개조·증축 횡행 )

    경남도와 통영시 등 해당 지자체는 지난 4~6일 3일 동안 일부 멸치잡이 선단들의 불법 개조·증축에 대한 사실조사에 나섰다. 이번 조사는 불법 개조·증축된 8개 선단의 정보가 실린 익명의 진정이 검찰과 경남도 등에 제기된 데 따른 조치다.

    경남도는 9일 나머지 어선들에 대한 조사를 마무리한 뒤 관계기관과의 협의를 거쳐 조사결과를 확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는 분위기다. 그동안 불법 개조 선단들이 멸치를 싹쓸이하면서 발생한 업계의 내부 갈등이 이번 진정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고 있다.

    ◇어획강도 높은 기선권현망 어업= 기선권현망 어업은 떼로 몰려다니는 멸치를 잡기 위해 고안된 어법이다. 어탐선이 멸치어군을 찾아내면 두 척의 본선이 그물을 끌고 가면서 멸치를 잡는다. 자루처럼 생긴 그물 양쪽에 기다란 날개를 단 모양의 그물을 쓴다. 길이는 600m 내외가 보통이다. 1㎝ 크기의 작은 멸치까지 잡기 때문에 그물코는 방충망보다 더 촘촘하다. 잡은 멸치는 바로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가공·운반선이 호스펌프로 빨아 당겨 삶은 뒤 육지에 있는 어장막으로 운반해 말린다. 한시도 쉬지 않기 위해 2척의 가공·운반선이 번갈아가며 잡은 멸치를 삶아 나른다.

    이같은 방식의 기선권현망 어업은 일반 어업보다 어획강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남획을 방지하기 위한 각종 제한 규정이 뒤따르는 어업이다. 멸치만 잡아야 하고 그물을 끄는 본선의 크기는 40t을 넘을 수 없다. 특히 본선의 엔진출력은 350마력으로 제한돼 있다.

    ◇편법 장착한 고출력 엔진이 화 불러= 그러나 10여 년 전부터 일부 선단들이 750~800마력까지 힘을 낼 수 있는 일본 M사와 Y사의 고출력 엔진을 장착하면서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이 엔진들은 조속기(엔진속도 조절기·가버너)를 350마력에 맞춰 놓고 납으로 봉인한 상태로 해양교통안전공단의 예비검사를 통과한 것들이다.

    현행 규정을 훨씬 웃도는 출력이지만 350마력만 쓸 수 있도록 제한을 걸어 봉인했기 때문에 아무 문제없다는 것이 해양교통안전공단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문제는 고출력 엔진을 장착한 선단들이 실제 바다에서는 조속기 봉인을 풀고 최대 출력으로 조업에 나선다는 점이다.

    750마력인 일본 M사의 엔진을 350마력으로 조절한 뒤 조속기를 봉인한 상태. 원 안이 봉인된 조속기다.
    750마력인 일본 M사의 엔진을 350마력으로 조절한 뒤 조속기를 봉인한 상태. 원 안이 봉인된 조속기다.

    어민들은 조속기 봉인은 눈속임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양교통안전공단 측이 사실상 고출력 엔진을 장착할 수 있도록 눈감아 줬다는 지적이다.

    한 선주는 “기존 350마력 엔진보다 더 비싼 고출력 엔진을 굳이 봉인을 걸어가며 장착하는 이유가 무엇이겠냐?”며 “봉인을 풀고 최대 출력으로 조업할 것이 뻔히 보이는데도 봉인했다는 이유로 불법을 눈감아 준 것부터가 잘못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부익부 빈익빈’ 업계 갈등만 증폭= 고출력 엔진을 장착한 배들이 멸치를 싹쓸이하면서 기선권현망 업계 내부에서는 위화감이 쌓이기 시작했다.

    기선권현망 어업은 좁은 해역에 떼로 몰려다니는 멸치의 특성 때문에 조업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는 어업이다. 한 해역에 많게는 20여개 선단이 경쟁하며 조업한다.

    이같은 상황에서 고출력 엔진을 장착한 선단과 일반 선단은 어획량에서 차이가 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어로장 A씨는 “고출력 엔진을 장착한 선단은 더 큰 그물을 끌 수 있어 일반 선단보다 1.5~2배 어획량을 올린다”고 말했다.

    고출력 엔진은 업계의 위화감을 넘어 선박의 불법 개조·증축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350마력 엔진에 맞춰 건조된 선박에 출력이 두 배 넘는 엔진을 장착하자 당장 배 크기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자연스럽게 불법 개조·증축으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또 더 큰 그물을 끌 수 있게 되면서 600m 내외이던 그물이 지금은 1㎞까지 늘어난 상태다. 가공·운반선도 더 많은 양의 멸치를 처리하기 위해 멸치 삶는 솥을 두 줄로 걸 만큼 크기가 커졌다.

    ◇고출력 엔진 전수조사부터 해야= 어민들은 봉인을 이유로 고출력 엔진 장착을 허가해준 것부터 석연치 않을 뿐 아니라 조속기 봉인마저도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해양교통안전공단의 한 관계자는 “정기검사나 기관(엔진)검사 때 봉인해제 여부를 확인하고 있지만 봉인 자체가 엔진 납품업자 등이 쉽게 풀고 다시 복구할 수 있을 정도로 조잡한 수준이어서 풀었다 다시 복구한 것인지는 알기 힘들다”고 말했다.

    경남도의 이번 조사에서도 해당 선박의 크기와 불법 개조·증축에 대해서만 살펴봤을 뿐 고출력 엔진의 장착 여부나 봉인 해제 등은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어민들은 고출력 엔진이 모든 문제의 발단인 만큼, 이에 대한 전수조사를 선행해 고출력엔진 자체를 퇴출시켜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 선주는 “권현망 어선들이 출력 높은 엔진으로 지난 10여년 이상 멸치를 남획해 온 것이 사실”이라며 “업계의 자정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고출력 엔진을 장착할 수 없도록 관련기관의 강력하고 근원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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