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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어처구니없음- 이강주(창원대 교수, 2020대한민국건축문화제 운영위원장)

  • 기사입력 : 2020-03-11 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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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 조선시대 인문지리서의 효시로, 한국 풍수지리학의 고전으로 알려진 택리지를 읽다 보면 편 가르기 전문가인 인간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누군가 김효원을 전랑(銓郞)에 추천한다. 그러나 심의겸은 그것을 반대한다. 김효원의 집이 한양의 동쪽에 있고 심의겸의 집이 서쪽이었기 때문에 두 사람을 따르던 일파들은 동인과 서인을 조직한다. 동인은 한양에 집을 둔 북인과 남쪽 지방에 집이 있는 남인으로 나뉜다. 인목대비의 폐모를 둘러싸고 북인은 다시 대북과 소북으로 쪼개어지고, 남인을 죽이는 문제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선다. 노·소·남·북의 삼백년 사색당쟁은 전랑의 추천권, 한 줌도 안 되는 탐욕이 그 시작이었던 것이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당쟁이 초래한 사회의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사대부의 자질은 자기 편에게만 통할 뿐이다. 이쪽 색목 사람이 저쪽에게 배척당하면 이쪽에서 더욱 귀히 대접한다. 아무리 큰 죄를 범했더라도 다른 색목에게 공격을 받으면 떼 지어 역성을 들어 죄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아무리 덕이 있더라도 같은 색목이 아니면 그 사람의 약점부터 들춘다.”

    사색당쟁은 정체성 정치의 전형이다. 정체성 정치는 노·소·남·북이 학연 지연 혈연 사상 젠더 등으로 바뀌어왔을 뿐 현재도 우리 사회를 강력하게 꿰차고 있는 정치 프레임이다. 어떤 정치인도 뜨거운 지지를 그렇게 ‘쉽게’ 받을 수 있는 이 프레임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체성 정치는 독이 든 사과다. 정치인 개인은 물론이고 사회도 망가트리고 국민을 반목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국론분열로 나라가 쇠약해지면 누가 가장 불행해질까. 두말할 것 없이 보통의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우리다. 그렇다면 당장 당쟁을 멈춰야 한다. 조상들은 당쟁을 멈춘 적이 있는가. 이에 대해 택리지는 짧게 언급한다. “밖으로는 왜적을 막고 안으로는 명나라 장수를 접대하느라 여러모로 바빠서 서로를 공격할 겨를이 없었다.” 내적 성숙보다는 바깥의 압력으로 당쟁을 멈출 수밖에 없었단다.

    정체성이 망동하면 정치의 본질, 즉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인간의 고귀한 노력이 설자리가 없어진다. 정체성 정치의 끝은 공멸이다. 상대방은 죽고 나만 사는 꾀가 있다고 믿는 것은 가장 허무한 속임수에 종노릇하는 것이다. 그러나 보고 싶은 것만 보고, 편을 가르는 것에 선수인 인간은 좀처럼 이 종의 신분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니, 어찌 그를 이성과 합리의 존재라고, 더욱이 만물의 영장이라고 추킨단 말인가.

    사전은 어른을 인간의 일을 책임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인간의 일을 의식주, 생육과 번성, 입신양명, 심지어 욜로로 축약하지는 말자. 오히려 보편적 권리의 원을 넓혀가야 한다. 자신이 살아 온 다양한 삶의 경험으로 길을 열어가는 행복한 사람,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이상적인 나를 찾는 자존감의 사람, 나와 다른 사람의 과제를 분리하는 지혜로운 사람, 다른 사람의 미움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유로운 사람, 수평의 인간관계를 추구하는 용기 있는 사람, 사람을 행위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로 기뻐하는 스피릿 넘치는 사람, 인생의 길잡이 별을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는 것으로 삼는 사람. 이런 분이 진정한 어른이시다.

    현재 우리는 우리 삶에 유례가 없는 팬데믹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학자들은 코로나19의 엔데믹(주기적인 반복 질병) 상황까지도 대비를 해야 한단다. 이러한 혼란에서 가장 안이하게 할 수 있는 것은 남을 욕하고 불평을 토해내며 큰 피해자인 양 엄살 피우고 찌라시성 음모론으로 방정을 떠는 것이다. 국민들이 모두 고통받고 있는 이 시기에 우리 입들을 닫고 자중하자. 우리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마스크와 지원금만이 아닌, 믿음직한 어른들이다. 그리고 이 어른은, 나이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여야 하지 않겠는가. 어처구니는 그때 나타날 것이다.

    이강주(창원대 교수, 2020대한민국건축문화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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