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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3·15의거 60돌 (상) 이젠 4·19 그늘에서 벗어날 때

3·15 희생자를 4·19 희생자라 부르는 이유는?
민주화 물꼬 튼 첫 유혈 시민혁명
4·19에 묻혀 제대로 평가 못받아

  • 기사입력 : 2020-03-12 20:5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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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1960년 옛 마산시민들이 독재권력의 부정선거에 분연히 일어나 항거했던 3·15의거가 올해로 60주년을 맞았다.

    당시 마산시민들은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되는 진정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이루고자 하는 뜨거운 열망을 보여 줬다. 3·15의거는 최초의 민주화운동, 민중운동으로 중요한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4·19혁명, 부마민주항쟁,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과 함께 5대 민주화운동의 하나로 오늘날 민주주의의 초석이 됐다. 이를 기념하고자 국립 3·15민주묘지가 조성됐으며, 지난 2010년에는 3·15의거 50주년을 맞아 대통령령으로 3·15의거가 국가기념일로 제정됐다.

    그러나 3·15의거는 근현대 최초의 독자적인 유혈 시민혁명으로서 역사적인 의의와 위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4·19 혁명의 한 과정으로 인식돼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의거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의 효시로 진정한 역사적, 국가적 의미를 부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비가 내린 지난 10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국립3·15민주묘지 ‘정의의 벽’ 조형물./성승건 기자/
    비가 내린 지난 10일 창원시 마산회원구 국립3·15민주묘지 ‘정의의 벽’ 조형물./성승건 기자/

    ◇‘유공자’로 못불리는 희생자들= 3·15의거 관련 유공자는 현재 4·19혁명 관련 유공자로 등록하고 있다. 3·15의거 유공자로 별도로 인정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3·15의거와 관련된 부상자 등 일부는 4·19혁명 관련 유공자로 등록되고, 부상치료자나 구속자 등 대다수는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현행 법률상 3·15의거 관련 유공자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제4조(적용대상 유공자)의 11호, 12호, 13호’ 및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 제3조(회원) 5호, 6호, 7호’에 근거하여 ‘1960년 4월 19일을 전후한 혁명에 참가하여 사망한 자, 부상을 당한 자와 이외 참가한 공로로 건국포장을 받은 사람’으로 분류돼 3·15의거로 인한 희생자·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 경남지부 또는 거주지 지부회원’으로 등록돼 예우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명예회복·보상 필요= 3·15 의거는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논할 때 그 근본이 되는 사건이었으며, 민주화 정신의 뿌리라고 할 수 있다. 마산 3·15의거가 없었다면 현재 대한민국의 성숙한 민주주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60주년을 맞은 지금이야말로, 3·15의거가 4·19혁명의 일부가 아닌 장대한 대한민국 민주화 물결의 시초라는 역사적 사실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해야 할 적기다.

    우리나라 민주주의 역사에 길이 남을 3·15의거에 대한 재평가와 위상 강화는 국가의 당연한 책무다. 이에 3·15관련 단체들은 새로운 법률 제정을 통해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및 ‘국가유공자 등 단체 설립에 관한 법률’에서 정한 4·19혁명 관련자의 공법단체와는 별도로 동법에 준하는 3·15의거 관련자 공법단체를 구성·등록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4·19혁명 그늘에서 벗어나야= 3·15의거는 우리나라 민주화운동의 효시다. 이를 계기로 4·19혁명을 불러왔고 이후 그 정신은 부마민주항쟁과 5·18광주민주화운동, 6월항쟁으로 이어졌다. 3·15의거는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으로서 가장 먼저 일어난 역사성과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3·15의거는 시민과 학생들이 대규모로 참여한 유혈 시민혁명이다. 대한민국 민주화의 물꼬를 튼 시민혁명이라는 역사적 사실로 확고히 자리매김해야 한다. 3·15의거가 대한민국 민주화의 근본이 되는 사건이고, 민주화 정신의 뿌리라는 점에서 당연한 위상을 가진다. 이에 3·15의거 희생자유족회 등 관계자들은 국가유공자법 개정 등 법적인 뒷받침은 물론 4·19혁명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자리를 찾기 위한 적기로 보고 있다.

    이에 김영달 3·15의거희생자유족회 사무국장은 “법으로는 1960년 4월 19일 전후를 기해서 사망을 한 사람이나 다친 사람에 대해 4·19혁명 희생자 또는 부상자라고 칭한다”며 “우리는 법적 단체명도 ‘4·19혁명 희생자유족회 경남지부’라고 정해져 있다. 안까운 현실이다. 3·15라는 말도 없다. 3·15의거의 진정한 의미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민영 기자 mylee77@kn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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