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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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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벚꽃-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0-03-22 20: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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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녘 꽃소식이 북상을 준비 중이다. 봄꽃은 엄동설한을 견뎌낸 경이로운 산물이다. 혹독함 속에서도 싹틔움을 준비한 인고의 시간을 간직한다. 봄꽃이 유달리 반갑고도 아쉬운 건 긴 기다림에 비해 꽃을 즐기는 시간이 짧아서 일게다. 짧은 만남이 오히려 화려함을 돋보이게 하는 역설이다. 지천에 흐드러진 벚꽃에 세상사 시름을 날릴 시간이 머잖았다. 연분홍 하늘거림은 겨우내 움츠린 마음을 송두리째 뒤흔드는 농밀한 유혹이다.

    ▼벚꽃은 한때 일제 잔재로 지목돼 수난을 당했다. 왕벚나무 원산지가 제주도라는 정부 발표로 오해가 풀리면서 곳곳에서 사랑받고 있다. 행여 비바람에 고운 자태가 일순 사라질까봐 가슴 졸인다. 꽃망울을 터트릴 적 설렘만큼 잎을 떨구는 모습 또한 장관이다. 한순간 천지를 뒤덮는 화사함으로 환희를 선사하고는 일거에 훌쩍 떠난다. 스치는 바람결에 거침없이 꽃비를 흩뿌린다. 짧고도 강렬한 만남은 긴 이별을 기약하며 작별을 고한다.

    ▼한 줄기 바람에 쓰러지는 꽃은 무상한 인생과 닮았다. 계절 따라 꽃이 피고지듯 세월 따라 인생도 성쇠를 거듭한다. 내년이면 다시 볼 꽃이지만 연륜을 더할수록 느끼는 감성은 다르다. ‘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줄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一片花飛減春 風飄萬點正愁人) 두보의 곡강이수(曲江二首) 한 구절이다. 상춘(賞春)은 아쉬움과 대면하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국내 최대 벚꽃축제인 진해 군항제가 취소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여파다. 1963년 군항제가 막을 올린 뒤 처음이다. 지난해만 400만 명이 다녀갔으니 많은 이들의 아쉬움이 크다. 꽃그늘 아래 피어나던 웃음꽃도 올해는 다소 시들할 듯하다. 해마다 피는 꽃이지만 먼발치서 바라봐야 하니 애잔한 마음 더한다. 춘흥이 반감하면 기다림은 더 간절해진다. 꽃은 또 그렇게 무심히 피어날 테니.

    이상권(정치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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