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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배려! 작지만 여기서부터- 권영민(창원문성대 건축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0-03-25 20:2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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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를 조금이라도 배운 사람이라면 공감하는 사실은 분열의 늪에 빠져서 영속한 역사는 없었다는 것이다.

    감히 한마디 하자면 우리가 이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치적 배경이 원인으로 탓하지 않더라도 동서남북이 갈라져 그 틈새는 지역감정과 정치적 이념의 차이, 선전선동의 선입견이 비집고 있고, 리더십 부재와 인물난으로 정치판에는 수준 미달인 자들이 득실거린 지 오래 이고, 상대의 주장에 귀 기울이지 않고 반대부터하고, 자기주장만 옳다고 여기며 떼쓰기가 다반사이다. 정치를 비웃고 불신한지 오래며 잘하겠다는 말만 믿고 속아 온 세월에 강산이 몇 번은 변했다.

    국가의 정체성과 가치관은 공유되지 않고 보수 진보가 다르고 동서남북 세대마다 다르다. 이런 상황에도 객관적이고 정직하고 리더십 있는 지도자는 온데간데없다. 사회 일각에서는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주의에 몰입해 양보와 타협, 혁신적 사고와 이해는 물론이고 시민의식조차 팽개친 지 오래다.

    정치는 국민을 편하고 올바르게 만들어 가는 것인데 앞서는 정치가 이러한 데 따르는 국민이 바르게 본받을 일이 없다.

    과거의 전철을 되밟아만 가고 있다. 시왕지래(示往知來) 지난 과거를 돌이켜 볼 줄 알아야 미래를 알 수 있다. 도전의 환경에 제대로 응전하지 못하는데 살아남은 역사가 있었던가!

    집단과 지역, 단체와 조직의 목적에 부합되지 않으면 확성기와 온갖 협박 문구가 새겨진 현수막이 난무하고, 자신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으면 과대포장과 유언비어를 섞어 대중을 선동하고 호도하기까지 한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 짐승과 마찬가지다. 부끄러워할 줄 모르면서 이 사회는 도덕이 무너지고, 무너진 도덕을 대신하여 사치와 허영으로 자신을 과대 포장한다.

    또한 이를 따르는 자들이 있으니 도덕이 바로 서게 될 일이 드물게 된다. 장관이 되고 판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려는 자가 법을 한두 개 어긴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정치한답시고 나대는 자가 잘못이 명백한데도 버젓이 고개 쳐들고 활보한다. 그들 옆에는 일신의 영달을 노리고 아첨하는 자가 무리를 이루어 눈과 귀를 가린다. 스스로 민망한 일이라 하면서도 고치지 않는다. 부끄러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잘못을 외면하는데 이조차 알리 만무하다.

    나라를 경영하는 자들의 잘못을 비판하면서도 대안조차 제시 못 하는 야당이 큰소리를 치며 자만하는 모습에 절망하고, 화합하자면서 분열을 조장하여 권모술수로 이익만을 쫓아가면서 부끄러움은 잊은 지 오래다.

    서로 기회만 엿보면서 솔선하지도 않으면서 남을 부추기는 게 일상이고, 서로 남 탓만 해대는 게 특기가 됐고, 자신의 잘못은 줄이고 타인의 잘못은 침소봉대하는 게 관행처럼 됐고, 이 핑계 저 핑계 서로 제 잘났다고 가식이나 부려대면서 자나 깨나 뒤엉켜 갈등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 와중에 욕하면서 닮아가는 꼴을 보고도 이념에 따라 절대 선악이 갈라져 무리를 이룬다. 이 지경에도 사회 지도층 어느 한 사람 혜안을 가지고 화합과 포용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자 없는데 세상의 큰 흐름과 변화에 제대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까. 나조차 나라 걱정을 하게 된다.

    배려는 인성의 근간이 된다. 사람 간, 이념 간, 지역 간, 이해 간 등 모든 관계 간(間)에 도리를 바로잡는 것이 우선 아닐까 생각한다. 너무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지내 온 것은 아닌지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배려! 작지만 여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지 싶다.

    권영민(창원문성대 건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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