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04월 04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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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경쟁 권하는 사회- 조은길(시인)

  • 기사입력 : 2020-03-26 20: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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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로나19 여파로 지역의 대표축제인 진해 벚꽃축제가 취소되고 말았다. 개장 5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니, 아무런 예고도 없이 바꿔버린 세상에 사람이나 벚나무나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와중에도 코로나19로 힘든 분들을 위해 써달라며 쌈짓돈을 내놓고,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원봉사를 자처하고, 손수 마스크를 만들어 마스크를 구입하기 어려운 소외계층민들에게 무상으로 나눠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의 생명을 담보로 마스크나 세정제를 매점매석해 부당이익을 챙기고 검사대상자인데도 검사를 기피해 애먼 사람들의 목숨을 위협하는 사람도 있다니, 예나 지금이나 전염병보다 무서운 것은 지각없는 사람의 이기심인 것 같다.

    요즘 티브이 ‘미스터트롯’의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연일 쏟아지는 코로나19에 관한 우울한 뉴스는 딴 나라 이야기인 듯 환상적인 무대조명과 노래와 춤과 환호성으로 꽉 찬 이 프로가, 실상은 우리나라 사내들이 벌이는 트로트 진의 왕관 쟁탈전이다. 부와 인기가 보장(?)되는 왕관을 차지하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 일반인, 현역가수, 초등학생까지, 수많은 지원자를 물리치고 뽑힌 101명의 본선진출자들이 장장 3개월 동안 목이 터져라 노래로 싸워서 자신의 노래점수(한계)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결국 승자도 패자도 피가 마르는 인간파괴적인 경쟁방식이란 점만 빼면, 우리 전통가요의 멋과 흥을 재발견해 향상시켜주고 백세시대에 젊은이 위주의 발라드풍 유행가에서 소외됐던 장년노년층이 노래로 그들과 정서를 공유하게 하는 장점을 지닌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 변성기도 거치지 않은 10살 안팎의 어린아이가 탈락이 결정되는 순간 무대에 선 채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결국 울음을 그치지 못한 채 퇴장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한참동안 따라가서 공개하는 것이나, 심사자가 장난처럼 던진 사랑이 무어냐는 질문에 ‘사랑은 사람을 슬프게 하는 나쁜 것’이라며 자신이 부른 노래가사를 이해하지 못한 채 트로트 신동으로 등극하는 장면은, 트로트 신동 출신 가수가 이 경연의 중반도 못 넘기고 무대 뒤로 사라지는 모습과 겹쳐지면서, 이 프로가 과연 누구를 위한 프로인지 의구심이 들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프로 전의 ‘프로듀스101’에서 글로벌 아이돌 가수를 꿈꾸는 수많은 지원자를 물리치고 올라온 101명의 어린청년들의 등에다 1등에서 101등까지 순위표를 붙여서 인간피라미드를 쌓아놓고 시청자들의 인기투표로 피라미드를 오르락내리락하게 연출해 같은 꿈을 가진 또래들에게 씻을 수 없는 인격적 모멸감을 안겨주더니, 더 충격적인 것은 소정의 요금을 지불하며 참여한 시청자들의 인기투표 수가 제작진에 의해 조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아류의 경연프로가 시청률의 판도라상자가 되어 계속 생겨나고 있다니, 왜일까. 예부터 노래와 대결을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성향 때문일까. 자유경쟁사회에서 상처받은 자존감을 대리표출해주는 영웅이 필요했던 걸까. 먹고 먹히는 잔혹한 현실에 내성이 생겨 현실보다 더 자극적이고 더 잔혹한 것을 원하는 자극중독증에 걸려버린 걸까.

    모든 자살은 잠재적 타살이라는데, 세계 1위를 고수하는 우리나라 청소년자살 원인의 대부분이 경쟁스트레스 때문이라는데, 욕망과 한계에 시달리는 사람살이의 애한을 달래주는 마음의 해우소 같은 대중가요만이라도 잠깐의 흥미와 재미를 담보로 좌절과 상처를 양산하는 데에 이용되지 않기를 바라본다.

    조은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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