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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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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부의 길] (1811) 제25화 부흥시대 121

“어디에 가고 싶어”

  • 기사입력 : 2020-04-10 08: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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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영은 보리가 외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꽃구경이라… 어디에 가고 싶어?”

    보리는 나이가 어리다. 봄이 되니 슬픔 속에서도 마음이 들뜨는 것 같았다.

    “교외요. 드라이브 시켜 줘요. 내가 맛있는 음식을 준비할테니 소풍가요. 회장님하고 데이트하고 싶어요.”

    보리가 재잘댔다.

    “그럼 충주나 가지.”

    이재영은 충주 제사공장을 살피면서 보리에게 드라이브를 시켜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네. 좋아요.”

    보리가 활짝 웃었다. 이재영은 보리를 안고 잠을 잤다. 보리는 잠을 자면서 이재영의 품속으로 자꾸 파고들었다.

    이재영은 토요일이 되자 보리를 데리고 충주로 향했다. 모처럼 직접 운전을 했다. 서울을 벗어나자 봄이 더욱 완연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차는 뽀얀 흙먼지를 일으키면서 신작로를 덜컹대고 달렸다.

    “꽃이 활짝 피었어요.”

    보리가 밖을 내다보면서 환하게 웃었다. 4월이 되면서 봄꽃들이 다투어 피고 있었다. 복숭아꽃과 살구꽃이 피고 벚꽃이 활짝 피어 바람이 일 때마다 꽃잎이 자욱하게 날렸다. 들판에도 꽃이 피고 산에도 꽃이 피었다.

    이천과 장호원을 거쳐 충주로 가는 국도였다.

    들에서는 사람들이 논을 갈고 밭을 일구고 있었다. 밭에는 보리와 밀도 파랗게 싹이 돋아났다. 마늘도 보였다.

    “회장님, 농사 지어 봤어요?”

    차창을 내다보다가 보리가 눈웃음을 쳤다. 보리는 전문학교 교복을 입고 있었다. 상큼하고 발랄해 보였다.

    “아니. 보리는 농사지었어?”

    “아니요.”

    보리가 고개를 흔들었다. 보리는 가족이 없다. 평양에 살았으나 1.4 후퇴 때 피난을 내려오다가 동두천에서 포탄에 맞아 가족들이 모두 죽었다. 때때로 넋을 잃고 허공을 우두커니 바라볼 때가 있었다.

    ‘가족을 생각하는구나.’

    이재영은 보리의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저렸다.

    보리는 가족을 모두 잃었다. 눈앞에서 가족들이 처참하게 죽는 것을 보았기 때문에 악몽까지 꾼다고 했다.

    이재영도 전쟁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 방공호로 사용하던 동굴에서 석 달을 숨어 살았었다.

    전쟁은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

    장호원 냇가에서 잠시 쉬었다. 신작로가 자갈길이었기 때문에 운전을 하는 것도 피곤했다. 차에서 내려 기지개를 하고 팔다리를 흔들어 운동을 했다.

    날씨는 화창했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고 햇살은 따뜻했다.

    글:이수광 그림:김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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