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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따뜻한 봄을 다시 찾자- 송봉구(영산대 인문학 교수)

  • 기사입력 : 2020-04-16 00:3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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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은 꽃이 피어 봄기운을 물씬 풍기고 있지만 사람들의 얼굴엔 아직 봄이 오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된 이유를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코로나바이러스19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의 전염력이 이정도 일 줄은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막상 경험해본 바이러스는 수많은 생명을 파괴하고 지금도 우리 주위를 맴돌고 있다. 사람들은 두려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가두어 버리고 말았다. 모든 사람을 바이러스를 가지고 있는 보균자로 생각하고는 자신만 살려고 하는 이기적인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게 해서는 바이러스를 이길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하면 공동의 적인 바이러스를 이기고 다시 살맛나는 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 해답을 옛 조상들의 슬기로운 삶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조선중기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조상들은 난리를 극복하기 위해서 모두가 노력했지만 그 중에서도 이순신 장군의 공동체를 위하는 정신을 우리는 잊을 수 없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을 그 자리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만들어 준 사람이 우리는 누구인지도 잘 알고 있다. 바로 서애 류성룡 선생이다. 선생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 임금을 도와 일본을 막아내는데 목숨을 걸고 자신이 배운 모든 지혜를 동원한다. 그리고 나중에는 다시 이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후손들에게 글로써 남긴다. 그 글이 유명한 〈징비록〉이다. 전쟁의 과정을 얼마나 상세하게 기록했든지 숙종 임금이 일본 사람들이 읽지 못하도록 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선생이 누구에게 배워서 이런 공동체 정신을 가지게 되었는지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는 것 같다. 바로 선생이 가르침을 받았던 분은 퇴계 이황 선생이다. 퇴계 선생의 핵심 가르침은 한 글자이다. ‘경(敬)’이다. 늘 깨어있는 것이다. 무엇을 상대로 늘 깨어있어야 하는가? 바로 자신만 살아남으려고 하는 욕심을 상대로 늘 깨어 있어야 한다. 선생이 이런 정신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힘든 과정을 이길 수 있었고 오늘도 후손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다.

    조선말기 양반들의 타락과 자연재해로 조선의 백성들은 고통 받고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현명하게도 이 고통을 이기기 위해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내었다. 바로 경주사람 수운 최제우가 만든 동학이다.

    동학의 가르침은 놀랍게도 고통의 원인을 누구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바로 각자 가지고 있는 자신만 살아남으려고 하는 욕심으로 돌렸다. 수운은 고통의 원인을 이렇게 한정했으므로 그 해결 방법도 스스로 공부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이기적인 욕심을 없애는 쪽으로 돌려버렸다. 퇴계 선생이 그 방법을 ‘경’이라고 해서 류성룡 선생에게 가르쳐 주었듯이 수운은 백성들에게 ‘21자 주문’을 만들어 늘 외우도록 해서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게 했다. 그 결과 백성들은 ‘사람을 한울처럼 섬기는’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위해 자신만의 삶을 버리고 공동체를 위한 삶에 자신들을 던진다. 그것이 동학농민혁명이다. 혁명은 실패했지만 ‘사람을 한울처럼 섬기는’ 새로운 세상을 건설하는데 한발 앞당겼다.

    오늘 우리는 조상들이 만났던 난리보다 더욱 힘든 코로나바이러스19를 경험하고 있다. 이것을 이기는 방법도 외부의 원인에서 찾으면 우리는 서로 갈등하여 함께 멸망하고 만다. 함께 멸망하지 않고 희망찬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서는 위에 예를 든 두 분의 삶에서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은 자기만 잘 살려고 하는 욕심을 상대로 ‘늘 깨어있는 삶’을 살 때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함께 살아남는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만약에 이런 길을 가지 않고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자신들만의 욕심을 채우려고 한다면 깨어있는 삶을 사신 조상들에게 부끄러울 것이고 후손들에게는 큰 고통을 더하게 될 것이다.

    송봉구(영산대 인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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