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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형평사- 차상호(뉴미디어팀장)

  • 기사입력 : 2020-04-27 20:3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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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튜브의 알 수 없는 알고리즘으로 ‘알쓸신잡(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 클립 영상을 보게 됐다. 그렇게 몇 개의 영상을 연이어 보다보니 ‘형평사’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진주? 진주라면 경남인데 난 왜 들어본 적이 없었지. 무지하고 무관심했다. 영상을 보니 자연스레 어떤 사건이었나 찾아보게 됐다. 포털사이트에도 다양한 글이 있고, 경남신문에도 관련된 기사가 여러 건 있었다. 나만 몰랐나 싶기도 하고 더욱 궁금해졌다.

    ▼위키백과를 찾아보니 ‘1923년 4월 25일 경상남도 진주에서 강상호(姜相鎬)·신현수(申鉉壽)·천석구(千錫九) 등 양반 출신 사회운동가들과 장지필(張志弼), 이학찬(李學贊) 등 백정 출신 지식인들이 계급을 타파하고 백정에 대한 모욕적인 칭호를 폐지하며 교육을 장려하고 상호 친목을 도모하여 ‘백정도 참다운 인간이 되게 한다.’라는 목적 하에 형평사를 설립했다.’고 소개돼 있다. 1894년 갑오개혁으로 신분제는 법적으로 사라졌지만, 실제로는 백정 출신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여전했다고 한다.

    ▼형평사 운동이 촉발된 계기는 교회였다. 일반 신도들의 반대로 백정들과 따로 예배를 봐왔지만, 새 목사가 부임하면서 백정들도 일반인들과 함께 예배를 보아야 한다고 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일반 신도들이 예배를 거부하기에 이르렀다. 백정들은 학교에도 다니지 못했다. 백정의 자식들도 마찬가지였다. 신분의 굴레는 대를 이어 이들을 예속했고 ‘차별을 없애자’는 마음으로 백정들이 일어섰고, 양반 가문 출신의 지식인들도 나섰다.

    ▼양반들에 핍박받던 평민들이 천민을 핍박했던 역사. 인종차별에 반대하던 이들이 동양인을 더 핍박하는 뉴스는 지금도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지금. 우리는 그때로부터 얼마나 진보했는지, 얼마나 저울처럼 형평해졌는가. 진주성에는 형평사운동 기념탑이 있고, 망진산 봉수대에는 운동을 이끌었던 신현수 선생 송공비가, 석류공원 초입에는 강상호 선생 묘소가 있다고 한다. 멀지도 않은데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차상호(뉴미디어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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