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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0일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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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좋아요 어법- 나태주(한국시인협회 회장)

  • 기사입력 : 2020-04-30 20:3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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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근 몇 년, 청소년들을 만나고 젊은이들을 만나서 이야기하는 기회를 많이 가졌다. 아니, 젊은 사람들을 만나는 것 자체가 날마다의 생활 자체이기도 했다. 거의 날마다 전국의 중학교나 공공기관을 찾아다니면서 문학강연을 했기 때문이다. 젊은이들, 특히 10대나 20대 젊은이들을 만나 이야기하는 동안 새롭게 느끼고 배운 것이 있다. 그들의 어법이 매우 분명하고 깔끔하다는 것이다. 주저함이 없고 굴절하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마구잡이라는 말은 아니다. 말하자면 자신감 같은 것이다.

    이것은 매우 반갑고 좋은 현상이고 하나의 바람직한 변화이다. 그만큼 그들의 내면세계가 클린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여유로움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예를 들어 ‘좋다’는 말도 그렇다. 예전 사람들은 직접 대고 좋다고 말하지 않았다. 약간은 미온적이고 보류하는 쪽의 표현이라 할까. ‘좋은 것 같아요’, ‘그런 것 같아요’ 정도로 에둘러 얼버무렸다. 그러나 요즘 친구들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그냥 곧바로 ‘좋아요’라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것도 번번이 그렇게 말하고 주저하지 않는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바로 이거야.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어법이야. 그만큼 우리의 삶의 형편이 좋아지고 젊은 사람들의 세상이 밝아진 것이다. 이러한 어법 하나에도 우리의 소망이 들어있고 내일에의 가능성이 숨쉬고 있음을 본다.

    나의 시 가운데 이런 짧은 시 하나가 있다. 〈좋아요/ 좋다고 하니까 나도 좋다.〉 ‘좋다’란 이름의 작품이다. 언뜻 보면 뭐 이런 글이 무슨 시인가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것은 분명히 시이고 또 많은 사람들이 좋아해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시를 한 번 들여다보자. 시의 제목까지 합쳐서 총 15개 글자로 구성되어있다. 그런데 ‘좋다’는 뜻의 단어가 역시 제목까지 합쳐서 네 번이나 나온다. ‘좋다’란 말이 아닌 말은 ‘하니까’와 ‘나도’ 두 개의 단어뿐이다. 시 전체가 ‘좋다’란 단어가 변형되어 반복되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독자들은 이 시에 나름대로 감동이 있다고 반응한다. 지금 우리는 서로서로 좋다는 느낌을 많이 가져야 하고 또 그렇게 말하면서 살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그렇다. 아니다, 싫다가 아니고 그렇다, 좋다이다. 그래야 한다. 긍정이고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처음 내가 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우리집 손자 아이 때문이다. 세 살쯤 되었을까. 마침 아이가 말을 배울 때였는데 우리 집에 오면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만화영화를 자주 보았다. 아이가 좋아라, 보는 프로그램 가운데 붉은색 커다란 부리를 가진 앵무새가 나오는 영화가 있었다. 그 앵무새는 툴툴거리기를 잘하고 화를 내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 영화를 자주 보아서 그랬을까. 아이에게 말을 걸면 제일 자주 하는 말이 ‘싫어요’였다. 그러면 안 되는데… 나는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할아버지가 부르는 데도 ‘싫어요’라고 말하는 저 아이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떻게 말을 할까.

    그런 생각을 바탕에 두고 쓴 시가 바로 ‘좋다’란 시이다. 그렇다면 이 시를 한번 ‘싫다’는 말을 넣어서 바꾸어 읽어보자. ‘싫어요/ 싫다고 하니 나도 싫다.’ 대번에 분위기가 달라지고 세상 모습까지 뒤집히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렇게 말 한마디가 중요하고 무섭다. 이제 우리는 부디 좋다는 말을 자주,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나아가 긍정적인 말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하겠다. 좋다는 말이나 긍정적인 말을 자주, 많이 하면서 살다 보면 우리들의 삶이나 세상이 조금씩 좋아지고 긍정적인 것으로 바꾸지 않을까.

    정말로 그건 그렇다. 상황이나 삶이 긍정적이고 좋아서 좋고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좋다는 말, 긍정적인 말을 자주 하고 자주 들어서 상황이나 삶이 좋은 것이 되고 긍정적으로 바뀌는 세상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바라고 원하는 세상이 아닐까.

    나태주(한국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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