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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보며] 유권자와 약속(公約)을 잊지 마라- 이상권(정치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0-05-11 20:2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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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상권 정치팀 서울본부장

    승자의 환호는 패자의 피눈물을 담보한다. 승부의 세계는 냉혹하다. 철저한 승자독식이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또한 마찬가지다. 한 달 남짓 만에 낙선인은 대중의 기억에서 지워졌다. 당선인에겐 꿈같은 시간이다. 오는 30일부터는 놀고 먹어도 4년간 권력을 누리며 예우받는 자리가 기다리고 있다. 선거 때 잠깐 허리가 끊어지도록 머리를 조아리며 공언한 약속은 아스라하다. 유권자에게 배포한 선거 공보물은 재활용쓰레기로 실려간 지 오래다.

    하지만 지난봄 그들이 내뱉은 말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정책·공약알리미(policy.nec.go.kr)에 ‘당선인 공약란’이 있다. 경남 지역 16명 당선인 공약 면면은 화려하다. 사통팔달의 교통망 구축, 관광지 개발과 복지 약속이 넘친다. 4년 동안 이 약속을 모두 지킨다면 도민 삶은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21대 국회를 통해 정치 품격이 높아지고 경남이 엄청나게 발전할지는 미심쩍다. 그동안 내로라하는 정치인들이 쏟아낸 말의 성찬에도 형편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은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정치권은 선거 때마다 엄청난 예산이 필요한 소위 포퓰리즘 복지사업과 개발 국책사업을 쏟아낸다.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심산이다.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고민과 타당성 분석없이 경쟁적으로 공약을 남발한다. 후보는 감언이설로 국민을 현혹한다. 국민은 보수와 진보, 지역과 세대 갈등의 편가르기에 편승해 표를 던진다. 정치공학이란 그럴싸한 명분의 정략과 꼼수, 협잡으로 얼룩진 정치 최면이다.

    한국메니페스토실천본부가 지난 2월 20대 국회의원 공약완료율을 집계했다. 경남지역 의원 공약완료율은 30.62%로 충남(25.93%)에 이어 전국 최하위권이다. 그나마 공약완료율이 가장 높은 충북은 56.84%, 이어 부산 55.61%다. 전국 평균 공약이행률은 46.8%다. 국회의원 다수가 임기 내 공약의 절반도 못 지킨다는 얘기다.

    주된 원인으로 허술한 공직선거법을 꼽는다. 공직선거법 66조는 후보자가 선거 때 공약서를 의무 제출하고 추진 계획, 우선 순위, 이행 절차, 이행 기간, 재원 조달 방안 등을 반드시 게재하도록 했다. 선심성 공약을 막기 위해 주요 선거 후보자는 재원 조달 방안 등을 공약집에 명시하도록 지난 2008년 공직선거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그 대상을 대통령 및 지방자치단체장 선거 후보자로 한정했다. 국회의원 후보자는 빠졌다.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엔 손을 대지 않은 탓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총선 때면 ‘뜬구름 잡는’ 공약(空約)이 난무한다. 그렇다고 ‘묻지마 선거용 공약’을 법으로 강제할 수단은 없다. 사후에 이를 지켰는지 감시할 방법도 마땅치 않다. 결국 정책과 비전 경쟁은 뒷전이고 정쟁에 편승한 선거행태가 반복될 수밖에 없는 제도적 모순이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죽음을 기억하라’는 라틴어다. 옛 로마에서는 원정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의 행렬 뒤에서 노예들에게 이 말을 큰소리로 외치게 했다. ‘전쟁에서 승리했다고 우쭐대지 마라. 오늘은 개선장군이지만 언젠가는 죽는다. 그러니 겸손하게 행동하라’는 의미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을 국회의원 당선인이 새길 말이다. “유권자와 약속(公約)을 잊지 마라. 당신도 언젠가는 낙선한다.”

    이상권(정치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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