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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4월 24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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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스며들다- 이재성(시인)

  • 기사입력 : 2020-05-14 20: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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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성 시인

    작은 문틈 사이, 쌀쌀하던 바람이 뜨거워진다. 미세먼지를 걸러내던 공기청정기도 멈춘 아침. 초록이 더욱 선명해진다. 계절의 변화다. 커튼을 걷자 눈부신 날이 시작됐다. 유리창 넘어 새로운 날이 밝았다. 창을 하나 두고 벌어지는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선다. 분주한 출근길에 마주치는 마스크를 쓴 사람들. 100여일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 중인 코로나19 앞에 또다시 안전 안내 문자들이 울린다. 각 카드사는 발 빠르게 정부재난지원금을 신청하라며 문자를 보낸다.

    불안과 공포도 계속되면 무뎌지는 것일까. 의료진, 방역당국, 수준 높은 민주의식을 가진 많은 사람들의 희생으로 현 상황을 유지하지만, 완연한 일상으로 복귀는 미정이다. 기약 없는 일상에 놓을 수 없는 사회적 거리두기다. 익숙하지 않은 변화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생명과 직결된 문제 앞에 남 일이 아닌 피부에 닿는 현실 분위기는 자유를 밧줄로 묶는다.

    105번 버스가 도착했다. 점점 열기를 더하는 버스 안, 벗을 수 없는 마스크에 땀방울이 맺힌다. 정류장을 거칠 때마다 내리는 사람 없이 차오르는 밀집도. 1m 거리가 무너지기 시작한다. 순식간이다. 그럼에도 후끈한 차량 안 사람들이 불평불만을 잠시 주머니에 넣는다. 밀려드는 인파 속 자리 비켜주기가 보인다.

    작은 배려가 우리 일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 힘을 믿는다.

    체온을 재고 손소독제를 사용하는 일상. 우리 삶을 연결하던 네트워크가 물리적 거리두기로 인해 변화하고 있다. 그럴수록 지구 생태계는 회복을 하고 있는 관계 앞에 코로나19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으로 새로운 기준이 생긴다.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순 없는 것일까. 한편으로 이전의 세상이 좋았을까. 온라인으로 지구 반대편 친구의 소식을 순간에 접하고 있지만, 오랜 시간 한 지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오프라인을 본다. 새로운 변화 앞 매 순간 사회적 합의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버스가 잠시 멈추자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하는 창문들. 땀방울이 식는다. 시원한 바람은 한 박자 천천히 생각하게 만든다. 다시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의료진들을 응원하는 현수막, ‘힘내자, 극복하자, 이겨낼 수 있다.’ 무수한 응원의 말들이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SNS를 돌아다니는 다양한 코로나19 챌린지들에 많은 이들이 바라는 세상이 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관해 현실이 상상을 만든다. 그리고 상상이 현실을 만든다.

    환승센터에서 내리자 너무도 찬란한 하늘이 보인다. 저 멀리 초록이란 단어로 표현될 수 없는 다양한 초록들이 푸르다. 마스크를 쓴 채 깊숙하게 마셔보는 공기.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바이러스 넘어 돌아가지 않는 실물경제 지나 흔들리는 세계를 생각하다 아침을 여는 자영업자의 모습을 바라본다. 해 뜨고 해 지는 하루에 묵묵하게 선 그들의 모습이 새롭다. 시선의 각도가 바뀌자 현상이 다르게 보인다. 오늘 하루도 지나갈 것이다. 변화는 천천히 스며든다.

    이재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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