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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공수가 생각나는 아침- 이창하(시인)

  • 기사입력 : 2020-05-17 20:2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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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려 공민왕 때 이공수(李公遂)는 원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던 중 장거리 여행으로 지쳐 어느 길가에서 쉬게 되었다. 이때 이공수를 수행하던 하급관리가 어느 농가에서 수확을 위해 들판에 널어놓은 볏단을 거두어 지친 말에게 먹이고 있었다. 마침 그 장면을 이공수가 목격하게 된다. 그리고 그 하급 관리가 말에게 볏단을 다 먹이기를 기다려 그 관리에게 “곡식 한 단의 값이 베 몇 자에 해당하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관리가 “한 다섯 자 정도가 될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공수는 마침 자기가 가지고 있던 베 여러 필을 논둑에 두고 가겠다고 했다. 그러자 수행원들이 “이곳에 베를 두고 가더라도 주인이 도착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가져갈 수도 있을 텐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라고 하자 이공수는 “나도 그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라도 해야 내 마음이 편하겠다”라고 했다.

    얼마 전 모 시민단체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서 모금한 금액을 수천억 원을 다른 용처로 유용하고, 실제 할머니들에게는 수십만원씩 지급했다는 기사를 봤다. 앞에서는 일본의 만행을 성토하며 시민들에게 정의를 보여준다고 하면서 모금한 돈을 유용하고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는 보수집단의 트집으로 치부하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역설하고 있다.

    그러면 회계감사라도 받아보자는 사람들의 주장에 대해서 지금까지 어느 시민단체에서도 회계감사를 받은 적이 없으며, 이번에 만약 자신들의 집단에서 회계감사를 받게 되면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되므로 거부한다고 했다.

    정작 돈을 지출한 용처 중에는 술집에서 하룻밤 새 사용한 돈이 9000여만원이 넘는 액수에다 함께 마신 사람들도 한결같이 999명이며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중에서 다시 5000여만원은 다시 기부금 명목으로 돌려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용처를 설명하는 내용에 이미 고인이 된 위안부 피해자인 안모 할머니에게 수억을 주었다고 한다.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무슨 명목으로 그 많은 거금을 주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설명이 영 명쾌하지가 않다.

    시민단체라고 하면 대부분 이익집단이라기보다는 공공의 정의를 위한 봉사단체로 알고 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그 집단에서는 어떤 개인적인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될 것이며, 설혹 부득이한 사유로 이익을 취했다고 한다면 당연히 용처와 사유를 분명하게 밝히고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상태가 되어야 할 것이다. 피해 당사자인 할머니를 뒤에 두고 사회정의를 외치는 행위는 그들만의 이익을 위해 모두를 속이는 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최근 많은 시민 단체들을 보고 있노라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출발은 사회 정의감에서 시작되었지만, 결국에는 그 단체의 힘으로 자신들의 이익과 권력을 가지는 수단으로 전락한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온 시냇물을 흐리게 하는 행위로 다른 단체들까지 흙탕물을 뒤집어쓰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창하(시인)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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