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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6월 13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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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권수의 한자로 보는 세상 (829) 삼시섭하(三豕涉河)

세 마리 돼지가 황하를 건너다. 글을 잘못 읽고 해석하다.

  • 기사입력 : 2020-05-26 08: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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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자(孔子)의 제자인 자하(子夏)가 진(晉)나라로 가다가 중간에 위(衛)나라에 들렀다. 위나라에서 역사책을 읽던 사람이 자하에게 진나라 소식을 전해 준다고, “진나라 군대의 돼지 세 마리(三豕)가 황하를 건넜습니다.”라고 했다. 자하가 “돼지 세 마리가 황하 건넌 것을 역사에 무엇 때문에 기록하겠소? 일진(日辰)이 기해(己亥)인 날짜에 황하를 건넜단 말이겠지요.”라고 답했다. 자하가 진나라에 도착해서 물어 보니, 진나라 군대가 기해일에 황하를 건넌 사실이 맞았다. 모양이 비슷하니, ‘기해(己亥)’라는 글자를, 그 사람이 잘못 ‘삼시(三豕)’로 봤던 것이다.

    옛날에는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아 대부분 붓으로 베꼈다. 고문헌 가운데는 붓으로 베낀 필사본이 많다. 새로 발굴되는 자료들은 거의 다 필사본이다. 그것도 오늘날 주로 쓰는 정자로 되어 있지 않고, 초서체(草書體)로 된 것이 많다. 그 밖에도 사전에도 안 나오는 이체자(異體字), 별자(別字), 속자(俗字), 약자(略字) 등등 다양한 글씨로 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에서 1960년대부터 한학자들을 초빙해서, 초서로 된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등을 해서로 옮겨 간행했다. 거의 한 글자의 오류도 발견하기 힘들 정도로 정확하다. 그 이후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초서를 정자로 옮겨서 계속 간행하는데, 간행한 책을 보면 갈수록 오자가 늘어난다. 최근에 나온 책은 더욱 더 심하다.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국학진흥원 등에서도 새로 발굴된 초서로 된 자료들을 정자로 옮겨 간행하는데, 오자가 적지 않다. 한문 전공자의 초서나 이체자 판독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것을 증명한다.

    오자로 잘못 옮긴 자료를 근거로 논문을 쓰거나,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경우가 있는데, 근본적으로 잘못돼 아무런 가치가 없다. 글자 한 자 잘못되면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조선일보에 풍수에 관한 글을 연재하는 분이 국무총리 공관 언덕에 새겨져 있는 초서 네 글자를 잘못 읽고서 글을 썼는데 허황한 글이 되고 말았다. 네 글자는 ‘안득불녕(安得不寧)’이 아니고, ‘안득불애(安得不愛)’다. 그래서 그 해석은 “어찌 편하지 않음을 얻겠는가?”가 아니고, “어찌 (이런 곳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리오?”이다. 그 분이 잘 몰라 자기보다 낫다 싶은 어떤 한문에 능한 교수에게 문의해 본 모양인데, 그 교수가 잘못 알고 가르쳐 주었다.

    한문을 잘 해석하려면, 문리(文理)도 중요하지만, 초서, 전서(篆書)는 물론, 이두(吏讀), 백화문(白話文)까지도 잘 해야 하고, 전통사회의 관습이나 예절 인맥 관계 등등에도 능해야 한다. 이런 문제는 지금 한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얻는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고, 학교에서 배우는 것 이외에 혼자 독실하게 공부해야 한다. 엉터리 의사가 엉터리 진단을 해서 사람의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듯이, 실력이 없는 학자는 엉터리 주장을 해서 혹세무민하기가 쉽다. * 三 : 석 삼. * 豕 : 돼지 시. * 涉 : 건널 섭. * 河 : 물 하. 강 이름 하.

    동방한학연구소장

    ※소통마당에 실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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