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4월 19일 (금)
전체메뉴

[촉석루] 경청하는 사회를 기대하며- 김하정(시인)

  • 기사입력 : 2020-05-28 20:03:09
  •   
  • 김하정 시인

    조신영·박현찬의 ‘경청’에서 경청의 단어를 한자로 풀이해 놓은 것을 보면 흥미롭다. 경(傾)은 마음을 기울이라는 뜻이며, 청(聽)은 왕 같은 귀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열 개의 눈으로 상대의 마음과 하나가 되라는 뜻을 내포한다. 이는 진정으로 상대를 이해하여 그 입장에 서보라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어떤가? 경청은커녕 자신의 뜻만 관철하려 애를 쓴다. 그런 현상은 TV 대담 프로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상대의 기를 제압하여 우위에 서려고만 한다.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는다. 소신을 굽히지 않고 그 뜻을 향해 자기주장을 펼칠 때에는 열정적인 것처럼 보이긴 해도, 결국 자신의 야욕을 위해 행동하는 잔인한 처세술에 불과하다.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종종 언어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높은 벽을 세우고 있다. 상대를 이기겠다는 대립의 오기가 불통으로 이어진다. 이런 모습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배우고 자란다. 학습 프로그램 중 자기 발표 시간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진지한 듯 보여도 결국은 자기 입장만 내세울 뿐이다. 듣는 것이 약하면 얄팍한 지식에서 머물러 상대를 설복시키기가 어렵다. 이청득심(以聽得心) 즉,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면 들어주는 지혜가 우리 모두에게 필요하다. 살아가면서 마음이 힘들거나 답답함을 호소하려고 심리상담소를 찾는 경우가 있다. 분노에 찬 마음을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기 때문이다. 자신의 하소연을 상담자가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문제가 거의 해결되는 기분이라고 한다. 어린 아이가 엄마에게 이유 없이 징징대는 것 같아도 그 속마음은 ‘엄마, 날 좀 알아줘’라는 무언의 동기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마음으로 들어야 소리 없는 말까지 듣는 법이다. 선입견으로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워두면 상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종종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상대를 심리학적으로 해석할 필요는 없어도 그가 말할 때 들어줄 수는 있다. 집에서 가꾸는 화초도 주인의 말에 반응한다. 길가에서 자라는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도 우리가 보내는 작은 손짓에 답을 보내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사람의 말을 왜 바로 듣지 못할까.

    김하정(시인)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