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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석루] 근심 없는 세상, 후세에 물려주다- 김덕환(경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 기사입력 : 2020-06-03 20:0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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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덕환 경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홍의장군으로 잘 알려진 의병장 곽재우 선생의 호는 망우당(忘憂堂)이고, 선생이 만년에 은거해 근심을 잊고 신선처럼 생활하던 정자가 망우정(忘憂停, 창녕군 도천면 우강리)이다. 이때의 심경을 선생은 「강사우음(江舍偶吟)」 시에서 “근심 잊은 신선이 근심 잊고 누웠으니, 맑은 바람 밝은 달이 한가로이 마주보네(忘憂仙子忘憂臥, 明月淸風相對閒)”라고 읊었다. 선생은 평생토록 절의를 사모했지만 산속의 승려처럼 은거하여 영화를 마다하고 봉록을 버린 채 그간의 모든 근심을 잊고자 했다. 왜적의 침입에 조국의 산하가 무참히 짓밟히자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나라를 구하였지만, 이후에 계속되는 집권자들의 정쟁에 환멸을 느끼고 부패한 정치적 현실에 거리를 두면서 근심 없는 신선세계를 동경했던 것이다.

    과연 선생은 신선이 되어 근심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여러 문헌에는 선생이 신선이 되기 위해 곡기를 끊고 솔잎을 먹으며 도교식 양생법을 수행했다는 기록이 보인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근심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는다(君子不憂不懼)”라고 하였다. 유가적 관점에서 보면 부단한 자기수양을 통해 인(仁)의 경지에 도달해 천명을 체득하면 근심하지 않는 ‘불우(不憂)’의 경지에 이를 수 있으며, 그것은 바로 도를 행하기를 즐거워하는 ‘낙이망우(樂以忘憂)’로 이어진다. 그렇다면 선생은 이러한 유가의 수신(修身)을 완전히 포기하였던 것일까? 「유소명(有召命)」 시에서 “편안하게 지내려니 군신의리 저버릴까 두렵고, 세상을 구하려니 신선되기 어렵구나(安身恐負君臣義, 濟世難爲羽化仙)”라고 한 것을 보면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한 선생의 고충을 읽을 수 있다.

    망우정은 여현정(與賢亭)이라고도 불린다. 선생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뜻이 담긴 정자를 대신해서 잘 관리해 줄 사람으로 외손인 이도순(李道純)을 택하여 물려주면서 요임금이 순임금에게 왕위를 선양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선생은 세상의 근심을 잊고자 한 것이 아니라 근심 없는 세상을 만들어 달라는 뜻을 후세의 현자들에 기탁한 것이 아닐까? 제10회 의병의 날을 맞이하여 선생의 거룩한 뜻을 가슴에 새겨본다.

    김덕환(경상대 중어중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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