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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21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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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칼럼] 기억의 연대- 이재성(시인)

  • 기사입력 : 2020-06-04 20: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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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성 시인

    또 하루분 아침을 맞는다. 온·오프라인의 경계가 익숙해진다. 아침을 알리는 알람과 함께 스마트폰 AI가 “이 기사 어때요?”라며 말을 걸어온다. 어제와 오늘 사이를 정리한 뉴스가 방안을 울린다. 손을 들어 접속한다. 오늘의 날씨를 시작으로 공간을 넘어 손가락 하나로 세계 곳곳의 소식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전 지구적 코로나19 사태 이면,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가진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은 채 불타고 있다. 그중 ‘흑인 사망 시위나선 16살 소년 말리는 아저씨의 호소’가 눈에 띈다.

    동영상에 잔뜩 긴장한 듯한 10대 소년이 보인다. 소년의 맞은편에는 우람한 체구의 남성이 보인다. 남성은 소년에게 무언가 계속해서 이야기를 한다. “너희가 지금 16살에 할 일은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거야” 4년 전 ‘키스 스캇 사건(경찰의 흑인 총격 사망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며, 우리 세대들은 더 나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고 말한다.

    미국 백인 경찰의 과잉진압으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대한 항의 집회가 점점 과격한 양상으로 바뀌고 있다. 미국의 낮과 밤이 다른 시위대들 속 자신의 윗세대를 보고 자신의 다음 세대에게 절규한 30대 집회 참가자의 호소가 소셜 미디어를 통해 전해진다.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는 직면한 문제 앞에서 다양한 선택을 하게 된다. 직면이란 상황 속 시간의 압박과 함께 경험을 반추하게 된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미증유 일들이 현재란 이름으로 벌어지지만, 진화를 통해 누적되어온 인류의 DNA는 환경의 변화를 넘어 다양한 문화방식을 통해 흔적들을 기록했다. 코로나19 사태도 1947년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 작품과 연결시키며, 그 당시 인류가 대응했던 방식에 관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최대로 발전해온 현재 과학기술도 해결하지 못하는 바이러스 앞에서 사람과 사람의 관계, 관계가 모여 이룬 사회 담론의 해결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활자를 읽고 사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특히 자유, 민주, 정의의 가치가 현재 사건들로 비유되어 실감하게 만든다. 너무도 많은 정보와 기록들 앞에 현기증이 날 정도로 활자를 보게 된다. 그만큼 새롭게 문해력이 중요해지는 순간 인류의 기억은 잘 전달되고 있을까. 연결되어 있을까. 일련의 큰 변화의 물결들이 교육을 통해 다음 세대에게 전달되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에는 문제 맞추기에 불과했다.

    개인의 발견과 세분화된 현상 속 잊혔던 공동체의 가치는 시험문제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오프라인의 행동과 온라인의 정보가 교섭된다. 가치가 현실화된 사건을 스스로 찾는다. 사건들의 연결된 실마리를 타고 학습한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민주시민의식이 2016년 촛불혁명을 찾는다.

    그리고 6월항쟁,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4·19혁명, 3·15의거, 6·25전쟁, 3·1운동 등…. 역사는 기억으로 흘러왔고 우리는 그 역사를 현실로 다시 길어 올리고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기억에 손 내밀어 맞잡는 일이 필요하다. 우리는 더 나은 방법을 찾아 내일로 갈 것이다. 분명히.

    이재성(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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