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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코로나 속, 미술관에서 나만의 예술감상- 최정은(김해문화재단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장)

  • 기사입력 : 2020-06-15 20: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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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 정 은 김해문화재단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장

    코로나로 두 달 정도 휴관에 돌입했던 많은 미술관들이 지금은 방역과 거리두기를 위한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관람객들을 기다리고 있지만,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이전에 비해 현저히 줄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요즘 미술관에 가면 호젓하게 작품을 마음껏 즐기면서 나만의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며칠 전 한가로운 전시장에서 만난 관람객 한 분이 작품 감상법에 대한 조언을 필자에게 구한 적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더 많은 분들에게 공유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음악이나 영화는 가슴만으로도 즐길 수 있지만, 미술은 상대적으로 머리로 즐겨야 하는 부분이 큽니다.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란 말도 그런 뜻에서 나온 것인데요.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미술 이론에 대한 관심은 상당히 커지고 있습니다. 미술 이론 강좌들에 많은 사람들이 몰리고, 미술 이론 관련 서적 판매가 계속 증가하는 것은 분명 미술에서 이론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기 때문이지요.

    위대한 예술 작품은 그것이 이전 작품과 갖는 관계 속에서 위대해 집니다. 다시 말해서 어떤 작품이 위대해지는 것은 그 이전 작품이 성취할 수 없었던 것을, 혹은 이전 작품들이 하지 않던 방식으로 전통을 뒤엎으면서 나타났기 때문인데요. 이렇게 위대한 작품은 그 작품이 놓인 맥락 속에서 의미를 갖게 됩니다. 맥락이란 바로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즉 이전 작품이나 고전들과의 관계를 말하지요. 추상미술의 포문을 열었던 피카소의 〈아비뇽의 처녀들〉(1907)이 걸작이 된 것은 원근법에 근거한 리얼리즘 예술과 단절하고 이후 오게 될 추상의 경향을 예시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그림이 그 전에 나왔거나 이후에 나왔더라면 전혀 주목받을 수 없었겠죠. 이 작품의 위대함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르네상스의 원근법적인 회화를 이해해야 하고 현대 추상회화를 알아야 합니다. 이와 같이 한 작품의 가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이 놓여있는 미술사적인 맥락,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의 관계 등 이론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미술에서 이론이 중요시되는 또 다른 이유는 현대 미술의 개념적인 경향 때문입니다. 과거에 미술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대상을 진짜처럼 그리는가?’와 같은 테크닉 혹은 기술적인 능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극단적으로 말해서, 그림을 전혀 그리지 못해도 미술가가 될 수 있지요. 독창적인 아이디어, 즉 개념만 있으면 미술가가 될 수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미술은 연습을 통해 발전시킬 수 있는 기술적인 부분과 독창적인 영감으로 구성되는 것이었는데, 현대 미술에서 작가들은 그 독창적인 영감을 이론으로부터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미술작품과의 만남에서 더 중요한 것은 머리로 즐기는 부분이 아니라 가슴으로 받아들이는 부분입니다. 미술에 대한 이론적인 지식은 한편으로는 우리의 작품 보는 안목을 키워줄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작품에 대한 순수한 우리의 감성을 마비시키기도 합니다. 그래서, 미술관에서 작품을 관람할 때, 다음과 같은 방법을 사용한다면 훨씬 더 효과적일 수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첫 만남은 작품이나 작가에 대한 사전 정보 없이 먼저 가슴으로 만나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작품이 내게 건네는 말을 들을 수가 있으니까요. 미리 작품에 대한 사전 정보로 무장된 눈앞에서 미술작품은 한갓 내 지식을 확인시켜주는 사례로 전락하고 말지도 모릅니다. 작품과의 설레는 첫 만남을 가진 후에 그 작품과 작가에 대한 여러 이론적인 지식들을 정리하십시오. 그것은 이후 다른 새로운 작품을 대면할 때에도 작품에 대한 경험을 더욱 풍부하게 해줄 것입니다.

    최정은(김해문화재단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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