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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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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파] 체벌- 이상권(정치팀 서울본부장)

  • 기사입력 : 2020-06-17 20: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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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과거시험에서 뛰어난 문장을 ‘삼십절초(三十折楚)’ 또는 ‘오십절초(五十折楚)’라고 했다. 회초리가 30개나 50개 부러지도록 종아리를 맞아가며 익힌 뛰어난 글이란 뜻이다. 가르쳐 바른길로 인도한다는 지도편달의 편달(鞭撻)은 회초리, 매질이란 의미다. 서당에 아이를 맡긴 부모는 싸리나무 회초리를 훈장에게 바치며 매질을 아끼지 말 것을 청했다. 회초리가 부러지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오히려 섭섭해할 정도였다. 전통적 교육관은 체벌을 통해 제대로 된 사람됨을 이룰 수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서양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국 왕실에서 왕자를 가르칠 때 체벌은 필수였다. 다만 왕세자 신분을 고려해 대신 매 맞는 아이인 태동(笞童. Whipping Boy)을 두었다. ‘교육론’을 쓴 버트런드 러셀도 대영제국의 번영과 영광은 퍼블릭 스쿨(명문 사립고)의 회초리 끝에서 시작됐다고 할 정도였다. 아직도 영국 생필품 가게에선 아이 엉덩이를 때리는 패들(Paddle)이란 회초리를 볼 수 있다.

    ▼1979년 스웨덴이 아동학대법을 만든 이후 54개국에서 부모의 자녀 체벌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엔 ‘미운 자식 떡하나 더 주고 예쁜 자식 매 한대 더 때리라’는 체벌에 관대한 인식이 내재한다. 훈육이란 명분으로 나약한 아동을 무차별 폭행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다. 자녀를 부모의 소유물 정도로 인식하는 건 오산이다. 최근 창녕에서 아홉 살 딸을 차마 입에 담기조차 어려울 정도로 학대한 계부의 잔인한 범행이 드러나 공분을 샀다.

    ▼보건복지부의 ‘2018 아동학대 주요 통계’에 따르면 국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3만여 건이 넘는다. 최근 5년간 학대로 숨진 아동은 134명이나 된다. 가해자의 약 80%는 부모다. 현행법상 아동학대 치사죄 형량은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다. 학대 아동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너무 가볍다. 뒤늦게나마 법무부가 부모의 자녀 체벌을 법률로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더는 가냘픈 어린 생명이 학대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사랑의 매’란건 없다.

    이상권(정치팀 서울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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