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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칼럼] 포스트코로나와 지역화 -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 기사입력 : 2020-06-19 07:4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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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얼마 전 필자가 일하고 있는 동네에서 지역문화생태계 차원에서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고 있는 문화예술인을 후원하는 일명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서울시 성북구에서 거주하거나 활동하는 것 외에 어떤 것도 ‘묻거나 따지지 않고’ 직접 신청하거나 추천 받은 이들에게 10만원을 입금하고, 필요 금액은 취지에 공감하는 이들이 별도로 개설된 계좌로 자유로운 입금을 통해 마련했다. 후원자와 후원금을 받는 이를 모두 익명으로 했다. 이 과정에서 청년예술가를 비롯해 약 60여명의 문화예술인들이 지원받았다.

    프로젝트명에 사용한 ‘크리킨디’는 남미 케추아 부족의 이야기로 숲에 불이 나서 다른 동물들이 도망치고 있을 때 작은 부리에 한 모금의 물을 담아 와서 산불을 끄려고 한 ‘벌새’ 이름이다. 어려운 상황에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것 뿐이야.”라고 답한 벌새 크리킨디의 생각을 담은 것이다.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의 출발은 ‘오아시스 딜러버리’에서 착안한 것이다. ‘오아시스 딜리버리’는 김선아 다큐멘터리 감독이 페이스북에서 자신의 통장 잔고에 있는 여윳돈을 주변 독립영화인들에게 흘려보내면서 시작되었고, 여기에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SNS를 통해 동참하면서 확산되었다. 또한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곁에서 지켜본 지역 청년들이 ‘갑자기 통장에 떡볶이가 입금됐다’라는 비슷한 프로젝트를 진행해서 폭넓은 공감을 일으켰고, ‘전통예술인긴급연대’에서도 이 아이디어를 통한 프로젝트를 통해 4000만원이 넘는 후원금을 모금하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은 단순히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넘어 우리가 같은 시대를 살아간다는 일종의 연대감과 공통의 감각을 경험하게 해준다. 공통 감각의 연결은 결국 ‘움직이는 소수’의 역할이다. 실제로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한 달 쯤 지났을 때 ‘11만원’이라는 낯선 액수가 입금되었다. 10만원을 신청해서 받은 예술가가 10%를 얹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후원한 것이었다. 이 사건은 일종의 지역공동체 차원의 새로운 실험을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다. 공동체은행이나 협동조합 등 그 이름이 무엇이든 경제적 상호부조의 사례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성북 크리킨디 프로젝트’는 지역 단위에서 공동으로 제안했다는 점에서 개인적 차원을 넘어 지역사회를 통한 커뮤니티의 성격을 더한 것이다. 이러한 프로젝트의 후원 과정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진행되는 것은 맞지만, 그 과정에서 연계된 선택과 영향력은 지극히 사회적이고 공동체적인 것이었다. 놀라운 것은 개인적으로 오프라인에서 만난 적 없는 다수의 페친들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우리 각자의 삶이 결코 개인적인 것이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근대 혹은 탈근대의 삶을 통째로 뒤흔드는 코로나19 사태는 근본적인 성찰과 대안을 요구한다. 섣불리 결론이나 방법을 제시하는 것은 문제겠지만, 치열한 고민을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누구와 함께 할 것인가 등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그 출발점은 ‘지역’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코로나19 이전부터 지금 시대의 궁극적 대안으로 ‘지역화’를 강조한 헬레나 노르베르 호지는 그러한 변화를 만들어 낼 결정적 다수를 만드는 것으로서 ‘큰 그림 행동주의(big picture activism)’을 제시한다. 이론만으로는 시민 의식을 높일 수 없으며, 새로운 지역화의 감동적인 사례를 끊임없이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지역화는 소규모 활동을 대규모로 하는 것“이라는 말은 그런 의미를 담고 있다.이 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치열한 고민과 싸움을 하고 있는 헬레나는 강조한다.

    “바로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희망적인 일은 이미 열정적으로 지속 가능한 삶을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의 지혜와 용기를 자신과 이웃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권경우 (성북문화재단 문화사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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