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  |   유튜브  |   facebook  |   newsstand  |   지면보기   |  
2024년 03월 28일 (목)
전체메뉴

한국건강관리협회 메디체크 (152) 기생충 폐포자충

  • 기사입력 : 2020-06-22 08:11:21
  •   
  • 폐포자충이 의사들에게 처음 알려진 것은 2차 세계대전 때였다. 심장질환이 있던 미숙아에게 폐렴이 생겼는데, 처음 보는 미생물이 폐포 벽에 붙어서 염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폐포자충’이었다.

    A(45)씨는 열이 나고 기침이 나는데, 이전에 타 놓은 해열제를 먹어도 나아지는 기색이 없었다. 결국 병원을 찾았는데, 의사는 폐렴이 의심된다며 항생제를 처방했다. 하지만 A씨의 증세는 갈수록 악화됐고, 폐포자충이란 진단을 받았다.


    ◇약해진 면역력을 파고드는 폐포자충

    폐포는 폐에 있는 수많은 ‘방’들을 일컫는다. 우리가 숨을 쉬면 공기가 기도를 타고 폐포 안에 들어간다. 이 폐포 하나하나의 경계를 이루는 폐포 벽의 모세혈관을 통해 적혈구가 산소와 결합한다. 적혈구는 심장으로 갔다가 다시 우리 몸 전체에 산소를 가져다주는데, 폐포 벽에 미생물이 붙어 있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리 몸이 그 미생물을 ‘악’으로 규정짓고 총공격을 하는 것이다. 이걸 의학적으로 ‘폐포 벽에 염증이 생겼다’라고 말한다. 이 경우 폐포 벽에 있는 모세 혈관과 폐포 사이에 산소를 교환하는 게 힘들어진다. 산소가 모세 혈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는데 백날 숨을 쉬면 뭐 하겠는가? 그 결과 호흡곤란, 열, 기침 등의 증상이 있을 수 있고, 더 진행하면 손끝이 파래지는 청색증이 찾아온다. 청색증은 몸 안의 산소와 결합 하지 않은 적혈구가 많아질 때 생긴다.

    처음 발견했을 때만 해도 ‘이런 미생물이 있더라’ 정도로 넘어갔지만, 폐포자충은 1980년대 들어 갑자기 주목을 받는다. 1980년대는 후천성면역결핍증, 일명 에이즈라는 질병이 폭발적으로 발생했던 시기다. 에이즈 환자들은 면역이 약해 각종 감염에 시달렸지만, 그들을 가장 괴롭히고 또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바로 폐포자충이어서, 에이즈 환자의 절반 이상이 폐포자충으로 죽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였다. 그때 비로소 이 미생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폐포자충은 곰팡이의 특성과 기생충의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그 정체가 무엇인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기생충 학자에겐 안타깝게도 곰팡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이겼다. 또 전파 경로가 관심사항이었는데, 호흡기를 침범하는 녀석이다 보니 아무래도 공기를 통해 전파될 것이란 추측이 우세했다. 특히 감염대상이 관건이었는데, 폐포자충은 매우 흔해서 살아가는 동안 한 번 안 만나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렇다면 ‘다들 폐포자충에 걸리는 거겠네’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건 아니다. 처음 발생한 이가 심장질환이 있는 미숙아였고, 그 후 에이즈 환자에서 대량 발생한 것에서 보듯이, 폐포자충은 면역이 약한 사람만 괴롭힌다. 건강한 사람의 몸속에 폐포자충이 들어가 봤자 숫자를 늘리지도 못한 채 도망쳐 나오는 게 고작이다.

    ◇폐포자충 치료, 그 후

    A씨가 폐포자충에 걸린 것도 그가 신장이식 수술을 한 뒤 면역억제 치료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요즘에는 면역질환 등의 이유로 스테로이드를 쓰는 이가 많다 보니 그들에게 폐포자충 감염이 빈번한데, 한 연구에 의하면 폐포자충 환자의 91%가 최근 한 달 안에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치료약은 있을까? 다행히 있다. 박트림(Bactrim)이라고, 폐포자충의 DNA 합성을 억제하는 약제가 제법 효과적이다. 꾸준히 박트림을 쓰자 A씨의 상태는 점차 회복됐다. 하지만 그의 앞날이 그리 밝은 것만은 아니다. A씨의 몸속에 있는 남동생의 신장은 A씨의 면역계로부터 계속 공격을 받을 것이고, 이 현상을 막기 위해 면역억제제를 쓰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폐포자충이 침투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약한 이를 괴롭히는 이를 기회주의자라고 부른다. 그런 면에서 폐포자충은 가장 악질적인 기회주의자, 기생충학자 입장에서 본다면 폐포자충이 기생충이 아니라고 판명된 게 다행일 듯싶다.

    건강관리협회 건강소식 6월호 단국대의대 기생충학과 서민 교수 글에서 발췌

  • < 경남신문의 콘텐츠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전재·크롤링·복사·재배포를 금합니다. >
  •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플러스 카카오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