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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03월 29일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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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6·25 격전지 여항지구 호국 교육장 조성을

  • 기사입력 : 2020-06-24 20: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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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늘은 6·25전쟁이 발발한 지 70주년이 되는 날이다. 70년이란 기나긴 세월이 흘렀지만 최근의 대북전단, 북측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으로 한반도는 여전히 긴장 국면이며 휴전 상태다. 우리에게 6·25전쟁이 슬픈 것은 같은 민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눈 동족상잔(同族相殘)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다. 동족상잔의 아픔은 이산가족을 발생시켰고, 이 문제는 지금껏 해결되지 못해 이산가족들이 부모 자식을 보지 못한 채 숨졌거나 통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한편으론 이념이 대립했던 6·25전쟁은 공산주의의 위협을 막고 민주주의를 바로 세웠으며, 나아가 역사적·세계적으로 공산주의의 패배를 보여주는 상징적 전쟁이다.

    한반도 전역에 아픈 흔적들이 산재하지만 ‘함안 여항지구 전투’를 잊어서는 안 된다. 전쟁 당시 여항지구 전투는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투와 함께 낙동강 방어선 사수를 위한 최대 격전지였다. 여항산(770m)과 서북산(739m) 일대를 최후의 보루로 삼고 1950년 8월 미군 제25사단과 함안군민이 힘을 합쳐 북한 인민군 2만명과 혈전을 치른 곳이다. 45일 동안 밤낮없이 전투가 계속되면서 서북산 정상의 주인이 19차례나 바뀌었다. 결국 미군과 함안군민이 북한군을 격퇴하면서 유엔군의 총반격을 가능케 했던 전투였으나 제대로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더 이상의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여항지구 전투의 흔적을 하나하나 찾아내 호국 교육장으로 만들어야 한다. 현재 여항지구의 전투 기록은 서북산 정산의 전적비에 새겨진 것이 전부다. 이 전적비는 서북산 전투에서 전사한 티몬스 대위의 아들이 미 8군 사령관이 되어 1995년 11월에 세웠다는 소식을 접하고 우리를 돌아보게 했다. 여항지구 전투는 영남지역 대표적인 격전지로서 충분한 의미를 지닌 만큼 함안군을 비롯한 경남도, 호국 관계 당국은 여항지구 전투의 기록화·기념화 작업을 서둘러 후세들이 기억토록 해야 한다. 최근 중·고생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6·25전쟁을 잘 알고 있다’는 응답은 39.4%에 불과했다. 소중한 진리를 재차 강조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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