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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포럼] ‘정의’를 다시 생각한다- 이이화(연구공간 파랗게날 대표연구원)

  • 기사입력 : 2020-06-29 20:4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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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그른가?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가?

    “穿雪野中去(천설야중거)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 今朝我行跡(금조아적행)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눈 덮인 들판을 뚫고 갈 때는 함부로 어지러이 걷지 마라. 이 아침 내가 디딘 발자국은 뒷사람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

    조선후기 학자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의 시로 알려진 〈野雪(야설)〉이다. “뒷사람들의 이정표”, 얼마나 간담이 서늘한가. 시공간을 초월하여 나의 행동거지가 누군가에겐 어느 순간 절대적인 지침이 된다는 것 아닌가. 우리는 매순간 이정표를 남기며 서 있다. 어떤 이정표를 따라 여기까지 왔고, 또 어떤 이정표를 남기고 있는지 잠시 멈춘다. 정의, 특히 ‘역사 정의’라는 이정표는 어떠한가?

    우리 공동체의 나아갈 지표로 삼는 삶은 국립묘지 안장 조건에서 잘 드러난다.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어떤 삶을 국립묘지에 모셔 그 살아온 길을 기려 따르고자 하는 것이니, 그 삶은 특별하고 명예롭다.

    그런데 이 법대로라면 올해로 만 100세의 천수를 누리는 예비역 대장 모씨는 국립묘지에 묻혀 우리 공동체의 빛나는 표본이 되게 된다. 그는 어떻게 살아왔는가?

    그는 민족간 동족상쟁인 한국전쟁에서 남쪽 군인으로 ‘낙동강 다부동 전투’, ‘평양전투’ 등에서 전공을 인정받아 무공훈장을 받는 등 한쪽에선 ‘구국의 영웅’으로 불린다. 그런 그가 우리 민족이 식민지로 절멸할 순간엔 식민주의자의 하수인을 선택했다.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해방직전까지 장교로 복무했는데, 간도특설대는 ‘조선인 독립군은 조선인으로 잡아야 한다.’라는 일제의 방침에 따라 조직된 특수부대로, 패망 조국을 되찾고자 시고도 매운 독립운동에 나선 조선인들의 토벌로 악명 높은 부대였다. 그는 토벌작전에서 ‘공’을 세워 일본군 여단장 상을 받기도 했다. 그가 말년에 자서전이란 걸 내면서도 ‘오류’에 회한을 비친 것을 보지 못했다.

    지구상에 모여 사는 인간이란 숱한 생물체 중 어떤 족속이 위기의 순간 동족에 총칼을 들이대고 재빨리 변신하여 부귀영화에 흡착한 한 생물을 자신들 공동체가 추앙할 표본으로 삼는가, 남한 빼고?

    이 엉클어진 풍경은 일제로부터 해방의 순간, 분명한 친일·반민족자를 분류·제거하여 만고의 교훈으로 남기지 않고 늑대에서 개로 돌변하여 발등만 핥으면 칼자루까지 쥐어준 몰역사의 모리배들에서 비롯된 일이다. 반민족자의 호의호식하는 절묘한 기교를 남긴 것이다.

    한반도엔 삼국시대, 남북국시대 등 분열의 시기가 있었지만, 이어 고려, 조선 등 하나로 된 나라로 이어졌다. 지금의 남북한 분열의 시대는 어떻게 될 것인가? 영원한 분열을 그리는가? 그렇다면 역사 정의가 뒤집어진 채로 되는 대로 살아가도 좋을 것이다.

    눈 밝은 후손들이 이 분열의 시대를 끝장내고 하나로 된 해맑은 나라를 만들었을 때, 앞서 살았던 이들이 ‘개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며 나뉘어 서로 저주하고 죽이고 했던 역사를 어떻게 바라보겠는가? 자본주의니 사회주의니 하며 분열된 지금은 멀지도 않은 조선시대의 “남인, 북인, 노론, 소론” 하던 당쟁기의 혈투보다도 보잘것없다. 때가 지나면 바람에 날려갈 먼지 같은 것들에 마치 운명이나 되는 것처럼 목매달고 있는 것이다.

    지금 선 이 눈밭에서 깊은 고뇌를 가진다. 순백의 역사에 딛고 선 내 발이 앞으로 헤쳐 갈 이 눈밭에 어떤 자국을 남길 것인가? 쭉정이는 무엇이고 알맹이는 무엇이며, 무엇이 정의이고 무엇이 불의인가? 어수선하고 무더운 날, 우두커니 눈밭에 서있을 내 발자국을 생각한다.

    이이화(연구공간 파랗게날 대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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