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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산칼럼] 소설 ‘마음’- 이강주(창원대 교수·2020대한민국건축문화제 운영위원장)

  • 기사입력 : 2020-07-08 20: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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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강주 창원대 교수 2020대한민국건축문화제 운영위원장

    일본 근대문학의 최대 정전이며 발간 100년이 넘도록 변함없이 국민소설로 칭송받는다는 ‘마음’을 읽다 보면 일본인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한편,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불편해진다.

    주인공인 나와 이름을 밝히지 않는 선생님과의 얘기인 ‘마음’은 내밀하다. 주인공이 묘사하고 있는 선생님은 쓸쓸한 느낌마저 들만큼 말이 없다, 교제 범위가 지극히 한정되어 있고 외롭다, 집에서 사색하거나 책만 보고 세상에 나가서 일하지 않는다, 그리고 정신적 결벽주의자로 숙부에게 재산 문제로 큰 상처를 받은 이후에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불신하고 증오한다.

    ‘마음’이 그리는 미학은 국화와 칼이다. 소박하고 가냘프며 섬세한 한 송이 하얀 국화의 모습이 여기저기서 나타난다. 그러나 소설을 바닥부터 묵직하게 끌고 가는 힘은 칼의 비장함이다. ‘마음’에는 슬픔, 우울, 감춤, 허무, 염세, 의심, 염려, 불안, 소심, 허세, 허영, 형식, 후회, 한탄, 허망, 망상, 두려움, 불신과 같은 부정의 미학이 넘실댄다. 결국 ‘마음’이 그리는 삶은 덧없다. 부모형제가 있어도 벽 너머의 존재고, 친구는 스쳐지나가며 인사 정도 하는 사이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살아도 끝내 마음을 열지 못한다. ‘자네, 알고 있나, 사랑은 죄악이야. 그리고 신성한 것이지.’ 이것이 선생님이 내리는 사랑의 정의다.

    ‘마음’에는 천황을 대하는 일본인의 모습들도 나온다. 백성은 천황을 천자님으로 부른다, 천황이 죽자 집마다 시장에서 천을 구해 검은 리본을 만들어 단다, 천황의 장례식 때에는 전쟁영웅인 노기 대장은 물론 일반 대중도 순절을 택하여 자신의 단심을 기꺼이 표한다. 우리가 자주 목격하고 있는 짐(정권)이 곧 국가라는 일본식 정치 행태는 뿌리 깊은 나무였던 것이고, 이러한 차원에서 일본은 근대화(메이지유신) 이후 지금까지, 적어도 정권교체라는 측면에서 보면, 제대로 된 민주주의를 경험한 적이 없는 나라라는 생각도 들었다.

    ‘마음’은 죽음을 자주 다룬다. 선생님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장티푸스로 부모님을 잇따라 여읜다. 선생님이 대학 때 하숙했던 집주인의 남편은 군인으로 전쟁터에서 사라진다. 주인공 아버지와 선생님 장모의 목숨은 신장병이 앗아간다. 재앙, 전쟁, 신체로 야기되는 죽음의 모습들이다. 무엇보다도 ‘마음’은 자살을 큰 몫으로 다룬다. 첫 대상은 선생님과 무척 친하게 지냈던 대학친구 K다. K는 선생님의 오랜 하숙 동료이자 집주인 딸을 사이에 둔 연적이었다. 어느 날 K는 집주인 미망인으로부터 선생님이 자신의 딸과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그리고 이틀 후 늦은 밤, ‘자신은 의지가 약해 어려움을 이겨낼 자신도 없고 앞날에 대한 희망도 없기 때문에… 좀 더 일찍 죽어야 했는데 왜 지금까지 살아 있었던 것일까…’라는 글을 남기고 하숙방에서 동맥을 끊는다.

    자살의 절정은 바로 선생님이다. 자신의 사랑으로 인해 바로 옆방에서 친구가 죽었다는 죄책감으로 살아온 선생님은 유서에서 이렇게 절규한다. ‘하지만 내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곧바로 어디선가 엄청난 힘이 나타나, 내 마음을 꽉 움켜쥐고 꼼짝도 할 수 없게 만들지. 그리고 그 힘은 내게 억압적인 어조로, 너는 뭔가를 할 자격도 없는 인간이라고 소리친다네. 그러면 나는 그 한마디에 금방 주눅이 들어버리지. 얼마쯤 지나 다시 일어서려고 하면 또 나를 옥죄어오네. 나는 이를 악물고, 왜 나를 방해하느냐고 소리를 지르지. 그러면 그 불가사의한 힘은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그건 네가 잘 알고 있지 않느냐고 하네. 나는 또 움츠러들게 되지.’

    이같이 가련한 ‘마음’이 한 세기가 넘도록 일본인의 국민소설로 칭송받는다고 하니, 결국 내 마음의 불편함은 ‘자유케 하는 진리’가 고이기 힘든 일본인에 대한 연민의 마음이고, ‘무릇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는 잠언의 마음이었다.

    이강주(창원대 교수·2020대한민국건축문화제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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